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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나라 말을 술술 할 줄 아는 사나이와 다시 만났다

by 깜쌤 2013. 3. 31.

 

1982년 12월 30일경으로 기억한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기 위해 경주역에 갔다가 컴컴한 거리를 이리저리 방황하는 백인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어떤 장소를 찾고 있는듯 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물어본 결과 노먼 도프먼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경주우체국의 위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곁에 가서 작은 도움을 준 것이 오늘날과 같은 인연을 만들었다.

 

다음날 다시 만난 우리는 경주국립박물관 구경을 갔었지만 공교롭게도 휴관이었다. 연말이어서 그랬던가보다. 그는 경주에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갔다. 그 이후 그로부터 엽서가 오기 시작했다.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던 그는 어떤 나라를 방문할때마다 나에게 엽서를 한장씩 보내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내준 엽서가 수십장이 되었다. 나는 그가 보내준 엽서를 하나하나 정리해서 사진첩으로 만들어두었다. 그런데 1998년경부터 그로부터 전해지던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예전에 가르쳐준 주소로 편지를 보내보았는데 수취인 주소불명으로 돌아왔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 안에다가 공개적으로 영어 편지를 써두었다. 그가 자기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았으면 내 주소를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을테니 귀한 친구를 잃어버린 것으로 치고 살았다.

 

 

지난 달 어느날 퇴근해서 집에 가보았더니 대문에 엽서한장이 끼워져 있었다. 그 엽서를 보는 순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보내온 엽서였는데 그 양반이 보낸 것이었다. 자그마치 15년만이었다. 나는 그가 엽서에 남겨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서울의 어떤 게스트하우스였다.

 

그가 엽서로 알려준 통화가능하다는 시간에 다시 전화를 해보았더니 전화기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6주일간의 계획으로 한국여행을 왔는데 경주에도 한번 가볼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현재도 변호사 일을 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목사로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번 더 놀랐다.

 

 

전국을 돌아다니던 그가 지난 3월 21일 목요일 경주에 도착했다. 퇴근후 만나러 가보았는데 그는 경주역 광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려 32년만에 재회를 했던 것이다. 예전에 처음 만났을때 그는 나에게 자기는 일곱나라말을 구사할 수 있다고 얘기를 했었다.  

 

이번에 확인을 해본 결과 그게 사실이었다. 그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독일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였다. 일본에서 국제변호사 일을 하며 오래 살아서 그런지 일본어는 모국어처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를 모시고 우리집으로 왔다. 다른데 가서 돈을 내고 묵을 필요가 뭐있겠는가 싶었다. 내 서재에 그냥 머물면 된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며 나는 백인 친구가 저명인사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일본에서 그는 로비스트로서 국제변호사로서 꽤나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정리해놓은 사진첩을 보고 감동하는 눈치였다. 세계 여러나라 언론에 소개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전형적인 서양수재였다. 정말이지 그는 인문학과 법학쪽으로 뛰어난 소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국제변호사 일을 하고 주말에는 목사일을 하는 전형적인 투잡(Two Job)맨이었다. 신학공부는 미국 텍사스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했단다. 그는 나에게 존 해기 목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안다고 했다. 존 해기 목사가 쓴 책을 읽어보았기에 안다는 증거로 책을 보여주었더니 그는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나도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인간이다. 책을 끼고 산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닐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인간이지만 이제는 나의 기억력이 너무 떨어져 자세한 내용을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그와 대화하는게 너무 재미있었다. 호흡이 맞고 죽이 맞는다는 느낌이랄까?

  

 

그가 만나본 저명인사로는 공산정권하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쵸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수많은 각국 대사들은 물론이고 일본의 어지간한 총리는 모두 만나본듯 했다. 저 위에 등장하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그와 친분이 있는듯 했다. 심지어는 티벳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한국의 반기문 총장도 만나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살면서 만나본 최고의 수재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다가 만난 독일인 신문기자가 여섯나라 말을 구사할 수 있다며 자랑을 했는데 그는 그 기자 이상으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독일의 저명한 신문사인 디 벨트 신문사의 기자였는지 자이퉁지의 기자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독일인 기자도 보통은 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번에 그가 러시아 유학생과 러시아어로 술술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고, 페루 출신의 목사와는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았으며, 독일에서 공부한 교수님과는 독일어로 능숙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일본어 실력은 이미 아는 바이므로 안봐도 안다. 인간은 꾸준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깊이 깨달아본 좋은 기회였다. 참된 실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고나 할까?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