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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노신의 옛집터에서 그의 흔적을 살폈다 1

by 깜쌤 2013. 3. 20.

 

심원을 나온 우리들은 다음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오전에는 대우릉을 보았으니 오후에는 이제 노신의 흔적을 찾아 다닐 생각입니다.

 

 

도시 곳곳을 누비며 실핏줄같은 역할을 하는 물길을 볼때마다 부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4차선 도로보다 이런 작은 물길 하나가 더 부러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경제적인 가치만을 따지고보면 사통팔달하는 도로가 모든 면에서 더 효율적이지만 인간의 감성을 개발하고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데는 이런 작은 수로 하나가 주는 감흥을 어찌 고속도로와 단순비교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노신로를 걸었습니다.

 

 

심원에서 노신로는 가깝습니다. 도로를 따라 한 이백여미터 정도만 걸으면 되니 바로 옆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제 저녁에 보았던 삼기취두부 가게 앞을 지났습니다.

 

 

물길 옆에 자리잡은 취두부행상의 작은 난전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이 부근은 노신의 흔적을 우려먹고 사는 가게들로 가득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노신의 옛집으로 들어갑니다. 대우릉 티켓 속에는 노신고거의 입장권까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따로 입장권을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첫번째 건물이 등장하고 덕수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창문틀이 세월의 흐름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정성들여 기른 소철이 화분 속에서 모진 목숨을 이어갑니다.

 

 

노신의 원래 성은 (周)씨였습니다. '노신'이라는 이름은 글을 쓸때 사용했던 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신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나타나 있습니다. 노신은 1881년생이니 청나라 말기에 출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로 말하자면 조선시대 고종이 통치하던 시대로서 개화기 초기에 해당합니다. 노신의 집은 청나라 가경연간에 세워졌다고 했으니 청의 7대 황제인 인종시대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1796년에 즉위해서 1820년에 사망할때까지 집권을 했습니다.

 

 

옛집의 전체 배치도를 보면 상당히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집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해서 생각해본다면 대지만해도 거의 일이천평 정도가 되는 엄청나게 큰 집입니다.

 

 

안내도에 나와있는대로 덕수당에서는 주씨 집안의 대소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봅니다. 워낙 미로처럼 얽혀있어서 처음에는 방향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한집을 통과하면 다른 건물이 연이어 나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검은색 지붕에 하얀 벽면이 산뜻하게 잘 어울립니다.

 

 

오른쪽 사진이 노신의 젊었던날 모습입니다. 그의 필적도 보입니다.

 

 

조상들의 모습도 함께 전시해두었습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화살표만 따라가면 알 수 있게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는 팔각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팔각문 안쪽 건물에서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노신의 문학작품속에 등장하는 삽화들을 모아놓은 듯 합니다. 조연년이라는 분이 만든 작품인 모양입니다.

 

 

목도리를 두른 노신이 나같은 어설픈 관람객을 쏘아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삽화를 모아놓은 공간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노신 일가족의 실제 주거 공간은 여기인듯 합니다.

 

 

돌을 깎아 반듯하게 만든 돌받침대위에 놓여진 작은 화분들이 답답한 공간을 그나마 생기있게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안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가봅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돌로 바닥을 포장했습니다.

 

 

한곳에는 생활도구들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농구들과 닮은 것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건물을 빠져나와 담을 따라 다시 안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담과 건물벽끝에 이르자 사방이 툭 터지며 갑자기 너른 채소밭이 나타났습니다. 

 

 

 여기가 바로 노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백초원입니다. 집안에서 필요로 했던 온갖 채소를 기르던 그런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텃밭치고는 규모가 아주 컸습니다.

 

 

 다른 쪽으로 통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나갈때는 반대쪽 문을 이용하는가 봅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밭에는 푸른 채소들이 그득했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모양으로 생긴 채소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끝없이 안쪽으로만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