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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회계산에 숨어든 사나이

by 깜쌤 2013. 3. 9.

 

이제 산으로 올라갑니다. 우리가 올라가는 산은 회계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흥에서 항주까지는 고속버스로 한시간 거리이고 전당강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항주에서는 양자강 하류도 아주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우왕이 치수에 성공했다는 지역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우왕은 치수에 성공하여 하나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에서 (은)으로, 에서 (周)로 이어지는 것이 중국고대사의 흐름입니다. 

 

 

는 전설상에 등장하는 나라이니 그렇다치고 은나라의 유적은 하남성 정주에서 발굴된 유적으로 보아 실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작 문제는 하나라의 시조가 라고 하는데 있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올라가는 여기에 우왕의 엄청난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믿어야할까요? 그가 치수에 성공했다고 하는 지방은 어디일까요?

 

 

우리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있지만 중국인들은 그렇게 다가설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조각상을 보는 그 자체로 중화민족으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치졸스런 작품이지만 중국인들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설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 도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치수와 관계있는 연장일 것이라는 생각은 가능합니다만....

 

 

조각상밑에는 '회계산대우상기'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 새겨진 기록에는 우가 왕위를 선양받아서 화하의 터를 닦고 민족의 시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중국민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죠. 화하는 중국을 나타내는 또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믿어야하는 것이 각 나라의 역사기록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왕의 출생도 신화에 가까울 정도로 허황합니다. 하기사 우리나라 고대사에도 그런 이야기가 수두룩하니 누가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정작 회계산에 얽힌 역사적 사실 가운데 상당한 근거를 가진 것은 나라의 왕이었던 구천에 관계된 이야기일 것입니다. 월 구천과  오 부차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니던가요?

 

 

항주소흥 일대는 월나라의 근거지였던 곳입니다. 나라의 근거지는 소주라는 곳이죠. 중국인들은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항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소항이라는 말은 소주와 항주를 묶어서 칭할때 쓰는 용어입니다.

 

 

 오월이라는 말도 한자로 吳越로 쓰게되면 의미가 사뭇 달라집니다. 다음사전에서는 '오월'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풀어주고 있습니다.

 

(1) 춘추 전국 시대, 중국 있었던 ()나라 ()나라.

(2) ()나라 ()나라 오랫동안 적대 관계 있었던 에서 유래한 말로, 원수 같은 사이 비유적으로 이르는 .

 

 

우리가 잘 아는 오월동주()라는 말도 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① 서로 나쁜 관계 있는 사람들 같은 처지 놓여 어쩔 없이 협력해야 하는 상태 되거나 원수끼리 서로 마주치게 이르는  

 

서로 나쁜 관계 있는 사람들 같은 처지 놓여 어쩔 없이 협력해야 하는 상태 되거나 원수끼리 서로 마주치게 이르는 .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나라 부차() ()나라 구천() 원수지간으로 항상 싸운 에서 유래되었다. 

 

 

 

 

 

소주는 오늘날의 강소성(강서성이 아닙니다)에 있고 소흥과 항주는 절강성에 있습니다. 강소성 남부를 근거지로 하는 오나라와 절강성의 항주와 소흥 일대를 근거지로 하는 월나라는 줄기차게 다투어왔습니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 왕이었던 합려가 월나라를 치러 갑니다. 합려는 나중에 오의 임금이 되는 부차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입니다. 당시 월나라의 통치자는 구천이었습니다. 구천의 아버지가 되는 윤상(允常)이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 구천이 금방 즉위를 했기에 월을 치기에 좋은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죠.

 

 

하지만 오나라의 군대는 절강성 가흥현 부근인 취이라는 곳에서 패배를 당하고 오왕 합려는 부상을 입고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합려의 아들인 부차는 아버지의 사망원인을 부차에게서 찾습니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치밀하게 전쟁준비를 해나갑니다.

 

 

위에 올린 사진들은 산에서 내려와서 입구로 나가는 과정에서 본 여러가지 모습들을 찍은 것입니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월왕 구천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합니다. 하지만 월의 군대는 소주의 태호(太湖) 부근에 있는 부초(夫椒)라는 곳에서 오나라의 군사에게 패배하여 월나라로 도망쳐옵니다.

 

 

오나라 군대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습니다. 오나라의 군대는 절강성 소흥현까지 추격하여 회계산으로 숨어들어간 월왕 구천의 군사를 포위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 된 구천은 충직한 신하였던 범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항복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범려와 범증이라는 인물에 대해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범려는 구천의 신하였고 범증은 진나라 말기에 등장하는 항우의 신하 겸 스승이었습니다. 범수라는 인물도 중국사에 등장하는데 그는 전국시대 때 위나라 사람이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어서 사마천이 쓴 사기에 범수에 관한 열전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범증에 대해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범증(范增, 기원전 277년 ~ 기원전 204년)은 중국 초나라의 책사·정치가이다. 진승오광의 난때 나이 70세에 항량을 섬겼다. 초 회왕의 자손을 왕으로 옹립해 신망을 받을 것을 진언하였다. 항우에게 아부(亜父)라는 존칭을 받는다. 유방항우초나라를 위험하게 할 것을 예상하며 홍문의 회에서 유방을 죽이려고 했지만 항백의 배반(또는 변심)으로 실패하였다.

 

초한 전쟁이 격렬해지자 유방의 모사 진평반간계에 빠진 항우에 의해 쫓겨난다. 항우에게 퇴출당하고 천하를 떠돌다가 악성 등창이 생겨 실의 속에 죽었다. 범증 없이 뒤늦게 전쟁에서 패배한 후 반간계에 빠졌던 사실을 알게된 항우는 크게 후회하게 된다.

 

출전 : 위키백과 

 

 

 

범려에다가 범증, 그리고 범수까지 등장하니 이야기가 꽤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괜히 아는척 했습니다. 깜쌤이 가지고 있는 못된 버릇 가운데 하나가 도진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구천은 부차에게 항복하고 목숨만을 살려줄 것은 간청합니다. 구천이 신하의 예로서 부차를 섬길것을 굳게 다짐한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다짐만 했겠습니까? 미녀를 바치고 보물을 바친 것도 당연지사였습니다. 오 부차의 신하였던 오자서는 구천을 살려두지 말라고 간언하지만 어쩐 일인지 부차는 구천을 살려주고 맙니다. 기원전 494년의 일로 전해집니다.  

 

 

이로써 부차는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는데 성공합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부터 3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고만장해진 부차는 이후로도 승승장구하여 결국 전국시대에 패권을 틀어진 패자(覇者)가 됩니다.  

 

 

이후 월 구천은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됩니다. 부차에게는 서시라는 당대 최고의 미녀를 보내어 나랏일 돌보는 것을 게을리하게 만들고, 자기가 당한 치욕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옆에 쓸개를 두고 핥으며 살았습니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 연유입니다.  

 

와신상담(

 

① 거북한 누워 자고 쓸개 맛본다는 으로, 원수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 하고 어려움 참고 견디는 이르는  

 

② 원수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 하고 어려움 참고 견디다 

 

 

거북한 누워 자고 쓸개 맛본다는 으로, 원수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 하고 어려움 참고 견디는 이르는 . 중국 춘추() 시대 ()나라 부차() 아버지 원수 갚고자 누워 자며 복수 꾀하여 ()나라 구천() 항복시켰고, 패한 구천 쓸개 맛보며 복수 꾀하여 다시 부차 패배시킨 고사에서 유래한 이다.

 

'와신'이라고 할때 '신'은 거친 장작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드디어 우리는 회계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차라리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회계산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게 아닐까요?

 

 

구천은 자그마치 22년 세월을 참고 견딘 후에 복수전을 펼쳐 성공합니다. 부차곁에서 오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충신 오자서가 죽기를 기다렸던 것이죠. 결국 기회를 잡은 구천은 오를 공격하게 되고 삼년간의 줄기찬 포위 공격끝에 고소산에서 부차를 자살하게 만들고 맙니다. 기원전 473년의 일이었습니다.

 

 

구천의 6대 자손인 무강의 시대때 월나라는 기울어지게 되고 나라에 굴복하고 맙니다.

 

 

나중 진시황 영정이 중국을 통일한 뒤 이 부근의 땅을 회계군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됩니다. 그 후로도 오군, 전당, 오흥 등등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죠.

 

 

절세미인 서시는 월나라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저번에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서시의 고향 곁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서시는 절강성 저라산 부근에서 땔나무를 팔아 삶을 이어가던 여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호수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이 회계산입니다.

 

 

우리는 그렇게해서 대우릉을 나왔습니다.

 

 

세월은 흘러, 사건이 있었던 해로부터 거의 2500여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런 사실을 꿈에도 알리없는 오리들은 평화롭게 삶을 유지해나가는듯 합니다.

 

 

사실 언제 주인에게 잡혀먹힐지도 모르는 운명이겠지요.

 

 

그런 것을 생각하니 너무 허망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