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20분경에 도착을 했으니 점심을 먹어야했습니다. 시내로 들어가서 호텔을 구한 뒤에 밥을 먹으려면 늦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버스터미널 대합실과 붙어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국수로 한끼를 때웠습니다. 한그릇에 12원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서 살펴본 결과 시외버스 터미널과 시내버스 터미널이 같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광안내판을 보니 우리가 탈 수 있는 시내버스 번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단 노신고리(魯迅古里)부근에 가서 내리기로 했습니다. 노신은 사람이름이고 고리라 함은 예전에 살던 동네를 의미할 것이니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우리는 시내버스 106번을 타고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해방북로(제팡베이루)부근에서 내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소흥시내 최고의 번화가였습니다. 이제는 호텔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길가에 보이는 호텔이 드물었습니다. 숙소가 밀집되어 있는 노신고리 부근에 가서 찾았어야 하는데 중심가를 헤매고 다녔으니 눈에 잘 뜨일리가 없었던 것이죠.
몇번이나 시내를 뱅글뱅글 돌다가 마침내 다다른 곳이 노원빈관이었습니다. 해방남로 51번지에 있는 곳입니다. 188원짜리니까 1인당 63원만 내면 묵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대형 더블 침대 하나에다가 싱글 침대 하나로 이루어진 방이었지만 인터넷도 잘 터지고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그런대로 묵을만한 곳이었습니다. 벌써 오후 4시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내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기도 뭐하고해서 부근 분위기나 한번 살펴보기로 했던 것이죠.
날이 흐리고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게마다 일찍 불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분위기가 슬며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에 고전풍이 묻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작은 도랑에는 물이 가득했습니다. 자연그대로 아무렇게나 가만 놓아둔 그런 물길이 아니라 치밀하게 손을 본 그런 물길이었습니다.
길 모퉁이 작은 공원에는 어디서 본듯한 노인이 대좌에 올라서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안가보는게 이상한 것 아닐까요?
중국 전통복장을 하고 앞을 보고 있는 저 노인..... 그렇습니다. 루쉰이었습니다.
가비서찬이라는 간판글자를 뒤로 하고 우뚝선 이 분이야말로 중국 근대사에 빛나는 인물가운데 한분입니다. 가비서찬이라 할때 가비는 커피를 의미하고 서찬은 서양음식을 의미하니 커피를 파는 레스토랑이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소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고향집을 들어갈 때 말입니다.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 횡단보도를 건너기로 했습니다.
파란색 휘장을 친 인력거가 나타났습니다.
어찌 거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돈 사실인데 여기가 바로 소흥관광의 핵심지대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는 일이 워낙 술술 잘 풀리는 팀이어서 소흥의 핵심 관광지가 가까운 곳에 있는 기막힌 곳에 멋진 여관을 택한 것입니다.
도시 한가운데로 흐르는 물길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모릅니다.
소흥도 참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이 찬찬히 봐야하는데 괜히 마음이 급해지고 맙니다.
관광기념품이 가득한 곳이 나타났습니다.
대강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태극무늬가 들어있는 조형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은 모습으로 된 같은 색깔을 칠한 자전거들이 줄을 맞추어 서 있었습니다.
대여용 자전거였던 것입니다.
카드를 대고 자전거를 빼내서 타더군요.
소흥시 공공 자행거 계통이라..... 샤오싱 퍼블릭 바이시클 시스템이라고 영어로 함께 표기해두었으니 이해하기가 편합니다.
이런 시스템을 갖춘 곳의 위치를 나타내는 안내표지판 같습니다. 나는 이런 시스템을 보고 깊이 감탄을 했습니다. 경주보다 한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카드만 구하면 누구든지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 도로를 따라 갑니다. 회계산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니 역사의 현장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흥이라는 도시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양버들에 아직까지도 잎이 달려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내 카메라 앞으로 몰려들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이 세상 어디든지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지금까지 중국이라면 지저분한 것을 먼저 생각했는데 난계와 온주, 소흥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가에도 물길이 따라 흐르고 있었습니다.
배를 탈 수 있는 곳인가 봅니다.
여기가 함형부두인 모양입니다. 가격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오봉선이라는 배를 탈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인력거도 보였습니다.
오봉선과 인력거.....
확실히 여기는 낭만이 흐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흥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황주라는 술이 유명하다고 하지않았습니까?
슬슬 호기심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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