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촌은 암두촌에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온주 시내로 돌아나가는 길목에 터를 잡고 있으므로 굳이 버스를 탈 일도 없고 택시를 탈 일도 없습니다. 걸어가도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합니다. 마을로 가는 도로가에 가축시장이 서있었습니다.
도로가 빈터에다가 천막을 치고는 잡아온 가축의 생고기를 그냥 팔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위생상태가 걱정스러웠지만 워낙 요리의 대가들이 득시글거리는 중국인지라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될 터였습니다. 행정당국의 지도가 있으면 더 좋으련만.....
위 사진지도는 구글 위성사진을 가공한 것입니다. 두개의 빨간점 가운데 밑에 표시된 점이 부용고촌을 나타냅니다. 위의 점은 암두촌의 위치를 나타내고요.
암두촌에서 온주로 나가는 도로를 따라 걸을 경우 오른쪽편에 마을 입구가 나타납니다.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 문표 파는 곳부터 찾았습니다.
도로가에는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중국인들도 요즘은 워낙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관광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어디든지 주차장부터 확보해두는듯 했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매표소가 보였습니다.
암두촌 입구처럼 여기도 나무로 만든 입장권 매표소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한사람당 20원이었습니다. 그 마을이 그 마을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해서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미 큰 실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마을은 암두촌과 분위기 자체가 달랐습니다.
자꾸 부용 부용이라고 해대니 혹시 부엉이 울음소리로 착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용이라는 말은 꽃의 한 종류를 나타냅니다. 어떤 꽃인지 잘 모르겠다면 아래 글상자의 글을 아무것이나 한편 읽어보기 바랍니다. 보라색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한번만 눌러보면 부용이 어떤 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마을의 구조도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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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용이 어떤 꽃인지 확인하셨는지요? 무엇이든지 알고보면 이해하기가 편합니다. 현존하는 한국 3대 입담꾼 가운데 한분으로 통하는 유홍준 교수의 글에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여행에서는 자기 지식의 분량만큼만 보고 듣고 즐기고 돌아옵니다.
문표를 파는 매표소 부근에 있는 안내판에는 부용촌의 전체 구조도를 그림으로 그려두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마을은 사방이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서남북 네방향에는 성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문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문은 지금까지 남아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문표를 사서 정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문이 정문입니다. 하나의 작은 마을이지만 정문의 위용이 그런대로 웅장하지 않습니까?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길바닥을 납닥한 돌로 포장한 큰길부터 눈에 확 뜨입니다.
암두촌보다는 확실히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용촌의 시작은 일찍이 당나라 때부터였다고 전해지는데 본격적인 마을 조성사업이 이루어진 것은 원나라 시대부터라고 합니다.
암두촌이 김씨들의 집성촌이라면 여기는 진(陣)씨들의 집성촌입니다.
우리들은 진씨 대종사(大宗祀)로 들어갔습니다.
진씨대종사는 부용촌을 일구어낸 진씨들의 사당이 되겠지요.
진씨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대성(大姓)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당입구에 턱 버티고 선 돌사자들에게서는 위엄이 떨쳐나는 것 같습니다.
크게 볼것은 없었지만 명문대가의 사당이니 그래도 어설프지는 않습니다.
특이한 것은 벽에 그림들이 걸려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법으로 보아서는 근래 화가들이 그린 작품같았습니다만......
사당내부는 정결하고 깔끔했습니다.
건물을 이루는 기둥 하나하나에서 고색(古色)이 창연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 제각각 흩어져서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목조건물들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왔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사당 내부 바닥에 깔린 돌에 이끼가 묻어있었습니다.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는듯 합니다.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와 마당에 섰습니다. 여기가 이 마을의 공적인 공간같습니다.
사당 맞은편 구석에는 문물진열관이 있습니다.
온김에 들어가보기로 합니다.
마을 기념관치고는 자료가 제법 많았습니다.
진열관을 나오면 그 마당은 문을 통해 다시 마을 골목과 이어집니다.
진씨대종사와 문물진열관, 그리고 작은 못과 돌을 깐 마당들... 이 자체만으로도 좋은 구경거리가 됩니다.
문물진열관 앞으로 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을 모형을 다시 한번 더 촬영해두었습니다. 이 마을의 구조를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원래 들어왔던 문을 통해 중심거리로 나갔습니다. 저쪽 문이 이 마을의 공식 입구입니다. 우리는 방금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문을 통해 사당과 진열관을 돌아본 뒤 다시 중심도로로 나온 것입니다. 아까 우리가 문표를 사서 들어온 곳이 사진 속의 큰 대문입니다. 위의 사진은 마을로 들어온 상태에서 밖을 본 모습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이런 식으로 마을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로 포장된 길과 길 한쪽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가득한 도랑, 그리고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집들..... 옆으로 뻗어나간 골목조차도 곧게 나 있어서 거침없이 탁 트인 길하며 깔끔한 돌담장들.....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진 옛날 마을이 존재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골목길은 특이하게도 양쪽으로 도랑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도랑에는 아직도 맑은 물이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길의 중심부는 벽돌로 포장을 하고 가장자리로는 반듯하게 자른 돌을 길게 이어가면서 깔아두어 단정함을 더했습니다. 나는 로마시대의 가도(街道)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왼쪽으로 부용각반점이라고 써붙여둔 간판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집은 숙박시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마당으로 슬며시 발을 넣었습니다. 벽면이 거리의 담장으로 된 특이한 구조입니다. 2층 건물인데 위쪽이 객실인듯 합니다. 마당에는 중소형 분재가 가득했습니다. 나는 좀더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층짜리 옛날 건물입니다. 이런집에서 하루를 묵어가야 하는데..... 일정이 짧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나는 다시 골목으로 나왔습니다. 마을 주민 한사람이 작은 트랙터를 몰고 오고 있었습니다. 트랙터를 보면 이 길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 싶습니다. 중심부 마을길에서 골목으로 이어진 길에도 하나같이 모두들 돌로 포장을 해두었습니다. 중간에는 비슷한 크기의 돌을 한줄로 깔아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대문도 패방 비슷한 모습이 되도록 돌로 만들어 단단함을 더했습니다. 이 많은 돌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구해왔을까요? 조금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네모 반듯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호수와, 이층으로 만들어졌으나 날아갈듯 날렵한 자태를 지닌 정자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자 뒤로 보이는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진 직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들....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이었습니다. 물이 흐리다는 것이 유일한 약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사용하는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드는 모양입니다. 부용지 옆에 자리잡은 구멍가게에서는 신선놀음에 빠진 사람들이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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