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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탑호묘 부근에는 섬과 반도까지 존재했다

by 깜쌤 2013. 2. 15.

 

수정사를 나온 우리는 탑호묘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호수 앞쪽으로 돌로 쌓은 작은 돌방죽이 보일 것입니다. 오른쪽 나무 뒤편으로 하얀 벽을 가진 건물이 탑호묘입니다. 그 앞으로 보이는 물이 고인 작은 호수가 려수호가 되는 것이죠.

  

 

이제 탑호묘의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탑호묘는 이름 그대로 사당입니다.

 

 

마을을 한바퀴 감돌아 흐른 물은 여기에 와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려수호에 가득한 물은 마을 전체를 골고루 감돌며 흘러온 물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하얗게 칠한 회벽으로 인해 한결 단정하게 보이는 저런 건축물 양식은 안휘성 휘주스타일입니다. 이른바 휘파건축물인 셈이죠.

 

 

려수호의 끝자락 모습입니다. 려수호를 끼고 회랑으로 이어진 길이 너무나 유명한 려수가인 셈이죠.

 

 

우리는 이 길을 따라 탑호묘로 가는 길입니다. 도랑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보입니다.

 

 

예전에 이런 마을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긴 분들의 선견지명과 심모원려가 정말 감동적입니다.

 

 

돌을 날라다가 둑길을 만들고 제방을 만든 이마을 사람들의 조상들은 대단한 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탑이 있는 산자락 밑에는 문창각(文昌閣)이라는 건물이 붙어있습니다. 마을 구조의 전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마을의 구조도를 다시 올려드립니다.

 

 

 

 

가공하지 않은 원판 사진을 올렸으므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보고자 하는 분들은 사진을 클릭하면 됩니다. 그러면 커다란 사진으로 뜨게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은 그림 지도의 제일 왼쪽 하단부에 와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자를 아는 분이라면 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창각 건물의 일부분입니다. 중국역사서를 꺼내서 새로 읽어보았더니 복건성과 절강성은 예로부터 과거급제자를 많이 배출하기로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복건성에는 우리가 가고자했다가 포기한 그 유명한 무이산이 있는데 주희가 제자를 양성한 곳이어서 그런지 그쪽에서는 학문연구가 제법 왕성했던 모양입니다.

 

 

절강성은 우리나라 남한 정도의 크기입니다. 인구는 4천5백만 정도가 된다고 하니 남한 전체 인구보다는 약 5백만명 정도가 적은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산이 풍부하고 일찍부터 개발이 잘된 곳이어서 그런지 부유층도 많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관료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절강성 온주도 그런 배경에서 이해하면 흔히 만나는 시시한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탑호묘를 향해 걸어갑니다. 정문을 찾아 가는 것이죠.

 

 

탑호묘 양쪽은 물길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정자는 탑호묘 바로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호수와 건물의 배치 구조를 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이런 마을을 구상했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지금까지 잘 보존해왔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려수호 곳곳에 빨래터가 마련되어 있기에 누구나 쉽게 찾아와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그런 사실에서 나는 인간미를 느꼈습니다.

 

 

탑호묘 앞쪽 빈터에 휴식공간을 만들어 두어서 사람들이 모여 쉴 수 있도록 한것도 좋았습니다.

 

 

돌을 반듯하게 쌓아 골목을 구획지은 이런 모습이 어찌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9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시골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될때 많은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려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시골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게 그리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만 그런 흐름에서 용케도 벗어난 곳이 암두촌 같습니다. 려수호 너머로 문창각과 문봉탑이 보입니다. 사진의 왼쪽편 하얀 벽을 가진 건물이 탑호묘입니다.

 

 

문창각과 문봉탑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작은 정자 아래부분에도 빈틈없이 돌을 깔았습니다. 생김새로 보아 강돌같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탑호묘 정문으로 들어가봅니다.

 

 

정문 위에는 탑호묘라고 쓴 빨간색 현판이 보입니다. 현판이 있는 출입문 양쪽으로 그림들이 보입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양쪽 벽에는 화려하게 채색한 그림들이 보였습니다.

 

 

첫눈에 누구라고 알아보는 분들은 중국사에 관한한 대단한 실력을 갖춘 분일 것입니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지연의에 약간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를 묘사한 그림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운데 흰말을 탄 사람은 자룡 조운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다리 위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장비입니다. 사건의 현장은 장판교 부근이 되겠지요.

 

 

이것은 도원결의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왜 이런 그림들이 탑호묘 벽면에 즐비한 것일까요?

 

 

이 그림의 내용을 맞출 수 있다면 대단한 고수입니다. 그림 속에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등장인물 네명은 각각 누구일까요? 정답은 이 글 제일 밑에 있습니다.

 

 

시커먼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눈에는 어딘가 조금 음산해보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돌아나왔습니다.

 

 

탑호묘 좌우로 물길이 나있다는 것이 이제 이해가 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섬이 되는 것이겠지요. 보기에 따라서는 반도라고 해도 되겠지만 말입니다.

 

 

작은 호수 위에 뜬 섬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골고루 배치를 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정자가 접관정(接官亭)입니다. 서기 1556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明)나라 시대의 건물이라는 말이 됩니다.

 

 

려수호의 끝부분이죠. 물이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허술히 보고 지나칠 마을은 아닌듯 합니다.

 

 

우리는 접관정으로 가기 위해 려수호 끝부분의 길을 건넜습니다.

 

 

하늘이 흐려서 그런지 사진조차도 흐리게만 나왔습니다.

 

 

접관정 부근의 옛집 뜰에는 촌닭들이 마음껏 활개를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마을 건축때 함께 만들어진 려수교 다리조차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한겨울에도 이런 푸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부럽기만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냥 걸어서 건너기도 합니다.

 

 

다리 너머로는 려수호와 려수가가 이어집니다.

 

 

나는 앞으로 나가야만하는 발걸음을 떼기조차 싫어졌습니다.

 

 

저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모습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마을이었습니다. 려수교 부근에 자리잡은 콧구멍만한 구멍가게가 낡아가는 세월 한자락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나이는?

       답 : 제일 오른쪽 잘생긴 사나이가 여포. 나머지는 유비, 장비, 그리고 관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