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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중국 서원에 들어가 보았다 - 수정사

by 깜쌤 2013. 2. 14.

 

문봉탑에서 내려온 우리들을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아가씨들이었습니다. 아가씨들이 입은 옷들가운데 내복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복을 입고 외출한 것 같은 패션같은데 여기서는 꽤나 인기있는 차림같이 보입니다.

 

 

우리들은 수정사(水亭祠)를 향해 걸었습니다. 물레방아가 있는 빨래터에서 멀지 않습니다.

 

 

수정사쪽 건물들은 귀티가 흐릅니다. 중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동네를 만든 사람들은 남계강물을 마을로 끌어들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계획적으로 설계를 해서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반드시 마을 주변과 골목을 감돌아나가도록 한 것이죠.

 

 

곳곳에 빨래터를 만들어서 생활에 편리하도록 설계를 했습니다. 수백년전에 이런 발상을 한 것이 그저 놀라울뿐입니다. 나는 이런 마을을 볼때마다 신도시구역을 개발하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도시구역들을 떠올려봅니다. 내가 사는 어디어디에도 그런 사례가 버젓이 살아있습니다. 문제는 엉망으로 해놓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것이죠. 

 

 

물길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마을이나 도시 안에 물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정서를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수정사가 있는 골목까지 왔습니다. 수정사는 원래 중국식 서원이었다고 합니다.

 

 

벽돌집과 돌로 포장된 골목길.....  온통 돌천지같이 보이지만 의외로 단정합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연행사로 중국에 가면서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벽돌집들을 보며 감탄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는군요. 흙벽돌로 집을 만들어살던 조선의 서민들을 생각하며 이런 골목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여기가 수정사입구입니다. 입구는 동쪽을 보고 있습니다.

 

 

정문 좌우에 돌사자 두마리가 위용을 자랑하며 턱 버티고 앉았습니다.

 

 

조각 솜씨가 범상치 않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골목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아까 우리가 걸어왔던 골목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반듯하고 깨끗해서 지체높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층집을 짓고 사는데 우리 조상들에게는 왜 2층집이 그렇게 귀했던 것일까요? 이는 건축술이나 건축재료, 그리고 기후풍토나 생활수준과도 관련이 있었겠습니다만 그만큼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난한 생활을 했던게 아닐까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앞을 가로막는 담장이 보입니다. 담장 옆으로 돌아가면 시야가 트이게 되어 있습니다. 밖에서 한눈에 안을 볼 수 없도록 만든 것도 특이합니다.

 

 

수양매인지 수양버들인지 구별이 안되는 나무 한그루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수정사 바로 남쪽에 탕산이 있습니다. 탕산에는 우리가 조금전에 가본 문봉탑이 있습니다. 담장너머 대나무숲 뒤로 문봉탑이 보입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작은 못이 보입니다. 그 끝에는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터가 보였습니다.

 

 

민가와 붙은 하얀색 담장 밑에는 백년초라는 이름을 가진 선인장 거목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크려면 적지않은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안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정문에서부터 안이 휑하게 다 보이는 것을 가로막는 구실을 하는 담장이 보입니다.

 

 

먹거리를 널어놓은 저 터위에 혹시 정자가 있었던 것을 아닐까요?

 

 

무말랭이 비슷한 것과 또 다른 먹거리들이 잘 나타나지도 않는 겨울햇볕을 기다리며 조금씩이나마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니 박고지같기도 합니다.

 

 

다시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봅니다. 예전에는 서원이었다는 해도 지금은 이름이 의미하는대로 사당분위기가 더 진하게 뿜어져나오는 것 같습니다.

 

 

속으로 들어가니 작은 못이 또 나오는데 거기 중간에 정자가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좁은 형상입니다. 동서의 길이만해도 65미터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중간 통로 좌우로 물이 있습니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연당이라고나 해야할까요? 연당이라면 연(蓮)이 자라나야하는데......

 

 

물속에는 흔하게 키우는 잉어들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정사에는 단정한 맛이 배어있습니다. 

 

 

참 묘하게도 담장 한구석에 쪽문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쪽문을 통해 밖을 보았더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바로 부근에 있었습니다.

 

 

비상시에 밖으로 피신하는 역할도 겸한 것 같습니다.

 

 

쪽문 앞에는 동백나무 한그루가 보였습니다.

 

 

꽃봉오리를 소담스럽게 달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확실히 남국입니다.

 

 

담장 한쪽은 입구쪽을 쉽게 살필 수 있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십자모양으로 생긴 틈너머로 보이는 하얀색 벽 너머가 수정사의 입구입니다.

 

 

중간에 있는 정자로 가보았습니다. 기둥 좌우로 붙은 글씨와 현판 글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한자의 예술성을 느꼈습니다.

 

 

정자너머로 가봅니다. 현판의 글씨로 보아서는 서원이 확실합니다.

 

 

첫글자를 '취'로 보아야할지 아니면 다른 글자로 보아야할지 자신이 없습니다.  

 

 

제일 서쪽에 자리잡은 중심건물은 수리중이었습니다.

 

 

세밀하게 살펴보았으니 돌아나가기로 했습니다.

 

 

관광객이 적어서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골목으로 나왔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찾아 떠날 차례입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