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학교에 수십년을 몸바치고 헛웃음이 나오는 이유

by 깜쌤 2012. 12. 7.

 

그동안 근무했던 학교를 가만히 손꼽아 보았더니 11개 학교가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이미 폐교된 학교도 세군데나 되었다. 둥지를 틀고 살았던 학교들의 위치를 따져보았더니 제법 큰 산밑에 자리잡은 산골학교가 한군데, 바닷가 학교가 한군데, 공업단지 부근에 위치한 학교가 한군데, 나머지는 모두 도심이거나 도시 변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까탈스러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환경이 딱 마음에 와닿는 학교는 한군데도 없었다.

 

 

근무를 했던 학교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소에 꿈꾸었던 그런 환경과 시설을 갖춘 학교도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내가 평소에 그리던 학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학교가 아니다. 모든 시설이 최신식으로 되어 첨단을 달리는 그런 학교도 아니다. 아이들의 개성을 살리고 감성을 살려 인간다운 인간을 키워낼 수 있는 푸근한 환경을 가진 학교가 내가 원하는 학교이다.

 

 

나무가 많은 학교에서 근무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무가 조금 있었다고 해도 본관건물 앞 화단에 심어둔 향나무나 전나무 같은 나무들이 심겨진 학교가 고작이었다. 학교장이 바뀔때마다 몸살을 앓았던 수목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어설픈 철학을 가진 교장이 자기취향에 따라 나무를 이리저리 옮기는 바람에 학교환경을 엉터리로 만든 학교가 얼마나 많았던가?

 

운동장에 심겨진 나무들은 지금 생각하니 플라타너스 나무가 대부분이었다. 플라타너스 나무는 잎이 크고 성장속도도 빨라서 예전에 참 많이 심었다. 더구나 낙엽지는 가을에는 청소하기도 좋았고 여름철에는 제법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했으니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본관 건물앞에 향나무같은 침엽수를 심는 전통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곧은 절개와 푸른 기개와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전통이 학교환경에까지 스며든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침엽수의 특성상 겨울에도 잎이 푸른 것은 좋은데 교실 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시야를 가린다는 단점이 있다.

 

일년 사시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으므로 곧은 기상을 가르치기에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감성이 극도로 메말라가는 요즘 같은 학교분위기 속에서는 단풍이 곱게 들고 그늘이 지는 나무들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에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혹은 단풍나무 같은 수종들이 좋지 않을까 싶다. 봄에는 돋아나는 신록들이 예쁘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해서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되 가을에는 알록달록하게 단풍이 들어서 학교 경관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그런 나무를 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겨울에는 잎들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서 햇살이 건물 곳곳에 스며들 수 있는 종류가 좋겠다.

 

가을이면 낙엽이 곱게 떨어져 나무밑에 소복하게 쌓이는 그런 아름다운 교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무 밑에 벤치라도 있으면 더 좋겠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나뭇잎 관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지어보게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미술실이나 음악실 실과실습실이 있는 학교는 한번도 만나질 못했다. 기껏해야 과학실험실 한칸있는게 고작이었다.    

 

 

최근 몇년동안 일부 학교의 외관은 제법 많이 변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보강하는 공사를 하면서 외관치장도 바꾸었다. 겉은 그런대로 멀쩡하지만 속은 외관처럼 그렇게 깔끔하지 못하다. 겉모양이 멋진 학교보다 내실있는 교실을 갖춘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싶은게 요즘 내가 가진 작은 소망이다. 이웃에 있는 어떤 학교가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몇날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요즘 어지간한 아파트에는 화장실이 두개씩 배치되어 있다. 아이들 수백명이 한개층을 사용하면서도 화장실은 고작 한두칸 정도 설치해두었다. 그렇게 학교를 설계하고 만들어도 그게 잘못된 일이고 부끄러운 일인 줄을 모른다. 복도와 운동장으로 면한 창이 이중창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옆교실에서 나는 소리와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그대로 교실로 다 쏟아지는 학교도 많다.

 

 

둥근 원형극장식으로 좌석이 배치된 그런 멋진 음악실이 있는 초등학교는 없을까? 멋진 오디오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다양한 악기가 항상 차려져 있어서 아이들이 언제든지 관심있는 악기를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첨단시설을 골고루 갖춘 학교에는 근무도 못해보고 교직생활을 마감하게 생겼다. 그게 마음 아프다. 지금으로서는 멋진 교실과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학교에 근무해보고 은퇴를 하는 것은 헛된 꿈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마냥 헛웃음이 나온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