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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선생이 배가 아플 때

by 깜쌤 2012. 12. 12.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었다. 우연이긴 해도 잘 따지고 보면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 만날 수밖에 없도록 일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내가 자주 드나드는 가게의 사장님이 어떤 고객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한번 만나보면 좋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져서 만나본 것인데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섞어보니 영 남남이 아니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내가 수십년전에 근무했던 학교에 다녔던 학생이었다. 내가 직접 데리고 가르친 제자는 아니었지만 옆반에 있었으니 굳이 따진다면 제자였던 셈이다. 그녀도 내 이름을 듣고나서 옛생각이 떠올라 확인을 해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세번째로 만난 것이 지난 가을날의 일이었다. 불국사로 가는 기차역 부근의 광장 벤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뒤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여를 달린 끝에 약속장소에 가서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차림새와 말투로 보아 결혼을 하지 않은 하이미스(=우리식 엉터리 영어로는 올드미스)인줄로만 알았다.

 

내 주위에 참한 노총각이 있었던지라 나는 그 생각을 바탕에 깔고 결혼여부를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나를 충격속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녀는 20대에 비교적 일찍 결혼을 했었는데 좋지 않은 모습으로 끝나고 말았다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랑이 결혼 삼년만에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는데 그 과정과 결말이 너무 비극적이었기에 한없이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물어보지나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여성이었다. 마음씨도 참하고 행동가짐도 단정한데다가 말씨도 조곤조곤하게 하는 사려깊은 여성이어서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두고두고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개인적인 사연을 여기에서 밝히는 것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되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도리이리라. 선생을 오래 해보면서 느낀 것인데 제자가 잘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는 법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가르친 제자가 잘되는 것을 보고 배아파 하는 선생이 있을 수 있으랴? 

 

 

내가 가르쳐서 떠나 보낸 제자가 불행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선생 직업을 가진 사람치고 제자가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날 나는 마음이 아픔과 동시에 배까지 아파왔다. 괜히 세상살이가 미워지며 짜증이 났다.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그런 이상향은 어떻게 만들어나가며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다행히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슬기롭게 극복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직접 들어가보지 않았기에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느낌상으로는 그랬다. 그녀가 지금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아름답고 슬기롭게 세상의 어려움을 헤치며 잘 살아나갈 수 있기를 거듭거듭 빌어 본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