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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시간이 멈추어 서버린 암두촌 골목

by 깜쌤 2013. 2. 11.

 

암두촌의 매력은 도심 바로 부근에 중세(中世)가 존재한다는 사실일 것 같습니다. 

 

 

마을의 설계자들은 참으로 교묘한 솜씨를 지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여기가 산골동네였지 싶은데 여기에 기독교 신앙이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건너편에 있는 집의 난간 모습이 어떻습니까?

 

 

건성으로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숨어있는 아름다움이 굉장합니다. 려수호를 가로지른 다리위에는 누각비슷한 건물이 앉았습니다.

 

 

누각은 3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려수가의 집들 가운데 공방 비슷한 공간이 보이길래 잠시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가씨 셋이 모여서 갖가지 구슬로 공예품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중국인 특유의 끈기가 묻어있는 작품들입니다.

 

 

그녀들은 우리가 구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듯 했습니다.

 

 

작업공간 맞은편에 놓여있는 보면대를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신디사이저 한대도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엇으로 쓰는 공간일까요?

 

 

조롱박으로 만든 공예품도 보였습니다.

 

 

연주도 하고 감상도 하는 그런 공간인가 봅니다.

 

 

참으로 신기한 동네였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던 아이들이 누각 아래 공간을 점령했습니다.

 

 

지붕 너머로 보이는 뾰족탑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더 눈을 의심했습니다.

 

 

누가 봐도 교회나 성당의 종탑이었기때문입니다. 여기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언제였을까요?

 

 

다리위에 정자가 걸려있는 지점 바로 앞은 문방구가게였습니다. 

 

 

려수가의 매력은 이런데 있는듯 합니다.

 

 

인공으로 만든 호수 한쪽은 상업구역이었고 그 맞은편 다른 한쪽은 주택가였던 것입니다.

 

 

상업구역은 2층 건물로 되어 있었습니다.

 

 

려수는 상인들이 반드시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였다고 합니다. 옛날에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던 대표적인 업종은 소금과 철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금과 철은 보통 국가에서 독점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려수는 소금상인들이 반드시 경유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상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함께 발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물자와 돈이 함께 존재하는 법이니 사람살이에 윤기가 돌게 됩니다. 궁핍한 벽촌 사람들이 상업에 눈을 뜬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갈 때만큼 아이들의 발걸음만큼 가벼운 시간이 또 있을까요?

 

 

려수호를 건넌 우리들은 마을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집들은 거의 다 이층이었습니다. 벽에는 회를 바르고 지붕 처마가 짧은 것으로 보아 휘파건축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듯 합니다. 

 

 

마을 군데군데에는 최근에 지은듯한 건물들도 보였습니다.

 

 

 집들 규모가 하나같이 크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는 골목을 따라 걸었습니다. 아까 본 십자가가 달린 뾰족탑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돌담 밑으로는 물이 흐르는 도랑이 있었는데 쓰레기들이 가득하게 쌓여있었습니다. 도랑물이 흘러야함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로 인해 막혀있는 모습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돌담 너머에는 돌로 만든 낡은 성당 건물이 보였습니다.

 

 

 천주당! 그렇습니다. 개신교회가 아니라 구교 성당이었던 것입니다.

 

 

 천주당을 둘러싼 담은 시멘트로 보수한듯 합니다. 

 

 

 내외부 여러 곳에 수리를 하는 중인것 같습니다. 입구 앞에는 붉은 벽돌무더기가 쌓여있었습니다. 

 

 

 언제 지어진 건물일까요?

 

 

절강성 온주만큼 교회나 성당이 자주 눈에 띄는 곳도 드물지 싶습니다. 적에도 중국 안에서만큼은 말입니다.

 

 

천주당을 나온 우리들은 마을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보았습니다.

 

 

모든 골목에는 작은 도랑이 반드시 존재했습니다. 마을을 처음 설계했을때는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시설이었겠지만 지금은 하수도로 전락한듯 합니다.

 

 

우리네 옛날의 시골동네를 연상시킵니다.

 

 

돌로된 축대위에 시멘트 블록으로 쌓아올린 블록담이 경관을 망쳐버렸습니다. 골목으로는 인력거가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골목에 있는 집에 들어섰더니 국수를 말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마당에는 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또 한쪽에는 오리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지요.....

 

 

또 다른 집에 가보았습니다.

 

 

골목에는 잠시 영업을 중단한 인력거 한대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담장위에 올려둔 광주리에는 닭고기들이 날려져 있었습니다.

 

 

온갖 먹거리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처마 밑에는 빨래, 마당에는 국수, 담장 위에는 닭고기......

 

 

국수를 널고있던 동네 아줌마가 우리를 보고 밝은 웃음을 날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닭모래주머니들! 제법 많은 닭들이 목숨을 다한 것 같습니다.

 

 

후줄근한 자전거.....

 

 

갈라진 시멘트 포장길......

 

 

그래도 어떤 집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에어컨과 승용차가 있기도 했고, 이중창으로 수리한 집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사당인가 봅니다.

 

 

어떤 집에는 낡은 지붕 위에 잡초가 수북하게 자라나기도 했습니다.

 

 

이발소 주인어른은 차한잔을 마시며 졸고 있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는 휴대전화기를 꺼내 통화를 했습니다.

 

 

유모차에 올라앉은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마당 한켠에는 펌프가 보였습니다. 빨래터로 쓰는가 봅니다.

 

 

담장 위에 올려둔 세수대야에서는 쪽파 몇뿌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 여기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1950년대에서 멈춘듯 합니다.

 

 

굳게 닫힌 나무문에는 교회에서 나누어준듯한 달력 한장이 달랑 붙어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달력을 보고서는 퍼뜩 정신이 들어 우리가 2013년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점점 더 마을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던 것입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