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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잃어버렸던 장갑이 석달만에 다시 내손에 돌아왔다

by 깜쌤 2013. 2. 18.

7080 세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제법 많다. <4월과 5월>이라는 남자 듀엣이 부른 <장미>를 알 정도면 대중가요에 대해 제법 정통한 분이겠다. 앞부분 가사를 잠시 소개해보자면 대강 이렇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위에 올린 사진은 물론 장미가 아니고 매화다. 장미 향기도 대단하지만 매화 향기는 그보다 한 수 위다. 매화 향기에 반하기 시작했다면 어지간한 향기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장미향기나 매화향기처럼 몸에서 향기를 발산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드물다. 

 

 

내게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지난 2월 10일 아침의 일이다. 음력 설날 아침에 경주시내에서 60번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 아줌마가 말을 걸어 오셨다.

 

"손님, 혹시 지난 12월 아침에 이 버스에서 내릴때 가죽장갑 한켤레를 두고 내리시지나 않으셨는지요?"

 

나는 깜짝 놀랐다. 12월 초순에 내가 아끼던 갈색 가죽장갑을 시내버스 좌석에 놓아두고 내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날이 아주 추워서 처음으로 내가 아끼던 가죽 장갑을 끼고 나왔던 것인데 내리고 난 뒤에야 장갑을 버스 안에 남겨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잃어버린 장갑이 너무 아깝고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요즘 세태를 모르는 바가 아니므로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제 장갑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이 추운 날 장갑이 꼭 필요한 분에게 그 장갑이 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는 장갑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 장갑에는 나름대로의 작은 사연이 있었기에 잃어버리고 나서는 섭섭함이 제법 큰 무게로 다가왔지만 꼭 필요한 누가 가져갔으리라 믿고 아낌없이 포기했던 것이다.

 

'20세기의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기차를 급하게 타려다가 그의 신발 한짝이 벗겨지면서 플랫폼에 떨어지게 되었다. 아쉽고 아까운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간디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잠시 뒤 그는 출발하여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열차 창문을 열고 나머지 한짝을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수행원이 물었다.

 

"선생님, 왜 나머지 신발 한짝을 창밖에 던지십니까?"

"한짝 밖에 없는 신발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만약 신발이 꼭 필요한 누가 내가 떨어뜨린 신발 한짝을 주웠다면 그 사람에게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러니 나머지 한짝을 밖에 던져버리면 혹시 신발 한짝을 주운 그 사람에게 더 소용되지 않겠소? 

 

   

나같이 어설픈 인간이 간디같은 위대한 분의 마음씨를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만 솔직히 그때 심정은 그랬다. 추운 겨울날에 장갑을 꼭 필요로 하는 분이 내가 남기고 내린 그 장갑을 주워가지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원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그리고는 석달이나 지나 겨울 추위가 한결 누그러진 2월이 되었는데, 60번 시내버스 운전기사분께서 느닷없이 장갑 이야기를 꺼낸 것이니 내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그 장갑을 비닐 주머니에 넣어 지금껏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출근하면서 제 차에 남겨두고 왔으므로 전해드릴 길이 없습니다만 꼭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정직한 분이 어찌 있을 수 있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두달 이상이나 장갑을 보관하고 계셨다니....   목적지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나는 기사 아주머니께 내 명함을 전해드리고 내려야만 했다. 그 다음날 다시 문자 연락이 왔다. 기사 아줌마와 통화를 하고 시간 약속을 잡은 나는 감사의 표시로 아주 작은 선물을 준비한 뒤 내가 버스를 타는 승강장에 가서 60번 시내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하여 잃어버린 장갑을 돌려받았다. 비닐에 꼭꼭 싸서 보관하고 계셨다더니 정말이었다. 그 분의 선행을 널리 알려드려야겠다 싶어서 얼굴 모습이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었는데 한장은 바르게 나오지 못했다. 그 분이 운전하는 시내버스 홈페이지에 글이라도 남겨야겠다 싶어서 천년미 버스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내 블로그에라도 글을 남겨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60번 버스는 경주고속철도 역에서 출발하여 시내로 들어온 뒤 용강공단을 돌아나오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혹시 KTX를 타고 경주에 오는 분이라면 한번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얼굴표정이 아주 밝고 환한 아주머니께서 운전하는 버스이므로 마주치면 쉽게 알아볼 수 있지 싶다.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기사 아줌마가 있어요. 손님에게 항상 친절하시고 싹싹하게 대해주는 분이어서 그 버스를 타면 기분이 좋아져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느끼고 계실겁니다."

 

 

가죽장갑을 잃어버리고 나서는 겨울 내내 선친이 물려주고 가신 장갑을 끼고 살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가 벌써 5년 반 정도의 세월이 지났는데 지난 연초에 시골 가서 어머니를 뵈었더니 내가 맨손으로 다니는 것을 보고 장갑 이야기를 꺼내셨던 것이다.

 

"이 추운 겨울에 왜 그렇게 맨손으로 다니느냐? 장갑이 없으면 아버지께서 끼시던 장갑이라도 끼고 다니려무나."

 

어머니께서는 장롱 서랍에 넣어두신 검은색 장갑을 한켤레 꺼내주셨다. 낡은 장갑이었지만 나는 지난 두세달 동안 이 장갑을 아껴아껴 끼면서 중국까지 다녀왔다. 결국 올해 겨울은 두켤레의 장갑때문에 유난히 따뜻하게 보낸 셈이다.

 

 

60번 시내버스 기사분께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감사드리고 싶다. 정직과 친절만큼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이 어찌 또 있으랴? 세상살이가 너무 각박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선하고 진실한 분들 때문에 아직까지는 우리 세상이 살만한가 보다. 향기를 뿜어내면서 사는 분들은 진정 아름답기만 하다. 경주 시내버스 기사분들 중에 이런 분이 계신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

 

 

"60번 기사 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