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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갔다

by 깜쌤 2013. 2. 7.

 

거의 한시간을 달려서야 마침내 암두(岩头, 巖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읍정도의 크기가 되는 마을인데 크게 깨끗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중국냄새가 나는 마을이라는 인상이 들더군요.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심도로 좌우로 가게들이 즐비했습니다.

 

우리는 도착해서 제일 먼저 온주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했습니다만 어디에도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막차 시간을 알아두어야 행동하기가 편한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론리플래닛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아마 오후5시경이 마지막 차가 출발하는 시각같았습니다.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까 암두촌이라는 글씨가 들어있는 도로표지판이 있는 것 같았기에 일단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습니다.

 

   

시내에서 오우뻬이까지 가는데 한시간을 썼고, 오우뻬이에서 암두(안토우)까지 또 한시간이나 걸렸으니 도합 두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셈입니다. 일정이 넉넉하다면 여기서 머무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확실히 안토우(=암두)는 시골동네 같습니다. 오토바이 엔진을 탑재한 삼륜차들이 보였습니다.

 

 

마을은 크게 구경할 것이 없었습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부용고촌이라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시간이 되면 그 마을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드디어 암두고진(岩头古鎭), 홍십삼군구지(紅十三軍舊地)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찾았습니다. 암두촌 가는 길을 찾았으니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이 부근에 있다는 말도 되겠지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시장통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가도 되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안내판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길가로는 국수를 만드는 집들이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기계로 뽑아내는 국수같습니다.

 

 

그런데 밑에 말려둔 국수들은 모양이 특이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한번은 본 기억이 있는 국수가락들입니다.

 

 

소면(素面)입니다. 원래 국수를 한자로 '면'이라고 합니다. 원래 글자로 하자면 '면'자는 (국수 면)으로 써야할 것이지만 요즘은 현지에서도 面으로 쓰는 것 같더군요.

 

 

8자로 감아서 말린 면도 보입니다. 생긴 모습을 따서 8자면이라고 한다는군요.

 

 

나중에 우리들은 점심으로 국수를 먹게됩니다.

 

 

중국에서 오징어 피데기를 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피데기의 역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구별이 안됩니다.

 

 

우리들은 골목을 따라 걸었습니다. 어디쯤에서 암두촌이 갑자기 툭 튀어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세련되지 못한 볼품없는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이런 것을 구경하고자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삼륜인력거가 길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사실 가운데 하나는 후진국의 특징으로 운송수단에 많은 사람들이 종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힘은 들고 수입은 적은 일이죠. 경쟁은 한없이 치열하고.....

 

 

자전거 인력거를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빙허 현진건 선생의 작품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다가 후줄근하게 낡은 멋없는 경치가 끝나더니 갑자기 주위 풍경이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낡은 현대식 건물들 수가 뜸해지더니 주위 견물들이 모두들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구글 위성지도를 가공한 것인데 붉은 점이 찍힌 장소로 우리들은 접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방에 가득한 것은 명나라나 청나라 시대의 옛건물들입니다. 명나라 시대라면 우리나라 역사를 기준으로 할 경우 고려말기부터 조선 중기에 해당되고, 청나라는 조선후기에 해당된다고 여기면 틀림없습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주위모습이 돌변한 것이죠. 그러니까 암두고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암두촌은 암두 마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른 공터엔 자동차들이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 지은듯한 낡은 건물들이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공터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가난에 찌든듯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 한쪽편에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무에 칠한 페인트가 다 벗겨져버린 낡은 매표소가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입장료는 1인당 15원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다른 곳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표를 끊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굽니까? 양심바르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니 기꺼이 표를 샀습니다. 입장권을 중국인들은 문표라고 합니다.

 

 

마을의 대부분을 물길이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있는 마을은 풍광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것에 재빨리 눈을 뜬 도시설계자들은 도시 한가운데로 크고 작은 물길을 끌어넣습니다만 눈을 뜨지 못한 설계자들은 도로와 건물로만 채웁니다. 그런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세계적인 역사관광도시라고 주구장창 읊어대는 무슨무슨 도시라고 봅니다. 바로 제가 사는 곳이죠.  

 

 

암두고진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오대말기부터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니 적어도 천년은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여기가 (金)씨들의 집성촌이라는 사실이죠. 중국에도 김씨가 있느냐고요? 당연히 있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마을모습을 살짝 공개하면 바로 위 사진처럼 됩니다. 무엇인가 볼거리가 가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문표를 사서 입장하며 뒤를 돌아다본 모습입니다. 후줄근한 현대와 고색창연한 중세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곳! 거기가 바로 암두고진, 즉 암두촌이라는 말입니다.  

 

 

그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중국 공산을 주도한 홍군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모택동이 주도한 투쟁에서 홍군의 활약이 눈부셨는데 홍군의 일부세력이 이 부근을 거점으로 하여 저항을 했다는 것이죠. 러시아 공산혁명에 등장하는 군대는 적군이라고 해서 홍군과 구별합니다. 적군이라니까 아군 적군할 때 쓰는 그런 적군이 아니고 '붉을 적'자를 써서 적군(赤軍)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혁명에서 그 반대세력은 백군(白軍)이 되죠.

 

중국 공산혁명을 이끌어낸 군대는 같은 러시아의 적군처럼 붉음을 상징 색으로 쓰지만 밝은 느낌이 드는 홍군(紅軍)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용어들을 알고 있으면 러시아 혁명사나 중국근대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닥터 지바고>같은 영화를 감상할 때도 이해하기에 너무 편하고요.....

 

 

경치를 보는 순간 갑자기 암두촌에 대해 기대가 만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차근차근하게 동네를 훑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잘근잘근 고기를 씹어먹듯이 하나하나 세밀하게 볼 생각입니다.

 

 

우리들은 정문 부근에 있는 전시실부터 훑어보기로 했습니다. 암두촌이 어떤 마을이라는 것쯤은 이해하고 들어가야  될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합원 구조를 지닌 전시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방으로 돌아가며 건물이 모여있고 난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합원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 화북지방을 대표하는 건축양식으로 사각형 모습의 밀폐된 공간을 지닌 건축양식을 말합니다.

 

 

전시실 벽에는 영가지방, 그러니까 오늘날의 온주에 대한 자랑을 늘어지게 해두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와서 비로소 영가화파영가시파니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영가(永嘉)라고 하면 경북 안동지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안동의 옛이름 가운데 하나가 영가입니다. 안동을 나타내는 영가와 중국 영가는 한자로 써도 같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고장의 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은 사람살이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그렇게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구경하고 다니는 온주가 예로부터 이름난 장수(長壽)고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영가의 자랑거리를 쭉 훑어보았더니 중국 정부에서 공인한 AAAA급 경관을 가진 곳에다가 온갖 고급문화와 풍부한 물산이가득한 고장이라는 것이죠.

 

 

그럴만도 하겠습니다. 온화한 기후에다가 풍부한 물산, 그리고 높은 문화적 수준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장수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자기 고장에 대한 자랑이 아주 늘어졌습니다.

 

 

이 사진 속에 나타난 곳은 어디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온주 부근 남계강 기슭 어디인듯 한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그렇게 전시실을 둘러본 뒤에 본격적인 마을 탐방을 위해 전시실을 나섰던 것입니다.

 

 

분위기를 잡아주는 작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선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할만한 유명한 풍경을 보게 되었던 것이죠.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바로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500여년 전으로 돌아가버렸던 것입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