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골목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도저히 길이 나있지 않을것만 같은 좁은 골목이었습니다.
회를 바르지 않은 돌담에는 이끼들이 푸릇푸릇하게 묻어있었습니다. 담벼락 틈바구니에서는 작은 나무들이 붙어 모진 생명을 이어가기도 했고요.
어떤 가정집은 문이 있지 않을것 같은 위치에 작은 문이 붙어있기도 했습니다. 대문인지 쪽문인지 구별이 안될 지경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또다른 계단이 이어지는 식으로 길은 끊임없이 위로 위로만 꼬불꼬불하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대문은 거의 다 닫혀있었습니다. 자기보호본능이 특별히 발달한 동네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골목길을 오르면서 한번씩은 뒤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일행을 놓쳐버리면 찾을 길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우리는 지금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폐허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담벼락에 뚫린 길의 좌우 분위기가 너무 휑해서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만 다시 돌아나갈 수도 없어서 그대로 직진하여 통과하기로 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참으로 기묘한 동네요 요상한 골목입니다.
저 앞에 표를 검사하는듯한 시설이 보였습니다. 입장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단번에 걸리게 되어있는 이 교묘한 시스템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젠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요?
검표원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섰더니 정원이었습니다.
중간 글자를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어찌보니 풀 초(艸)자 같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딸리는 한자실력인데 이렇게 써놓으면 긴가민가해집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비밀스런 정원! 정원도 정원이지만 여기서 내려다본 경치도 아주 멋집니다. 마을구조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라도 반드시 한번은 올라오도록 되어 있는 곳이죠.
처마 끝 선이 하늘로 치솟은 중국 정자가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뿐이었으니 정원을 우리가 오로지한 셈이 되었습니다.
봄에 오면 사방천지가 꽃으로 덮일 것 같습니다.
하얀 담을 따라 심어놓은 푸른 대나무 줄기가 선비의 기개를 나타내는듯 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약초를 심어놓은듯 합니다. 제갈씨 문중에는 선조들이 남긴 이런 유훈이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재상을 할 수 없다면 의사가 되어라"
멋진 정치가가 되어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의사가 되어 뭇사람의 생명을 구하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제갈씨들은 약초재배에 나서기도 하고 한의사가 되어 치료를 해주기도 하고 약재도매업에 뛰어들어 약초판매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안휘성을 대표하는 휘주상인들의 솜씨를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고 물려받은 사람들인지라 후예들은 곧 명성과 부를 거머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획득한 부를 바탕으로 해서 이런 멋진 동네를 건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도적들로부터는 약탈의 대상이 되고 탐관오리들로부터는 수탈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 역사가 항상 그랬지 않았습니까? 썩어빠진 사회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지만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올라선 신흥세력도 곧 이어 부패하면서 민초들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다시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 새로운 왕조를 만들고......
권력을 가진 자가 황금을 가진 자들과 손을 잡고 자기 배를 불리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할때 곤궁해진 일반 백성들은 산적이 되든지 수적이 되는지 화적이 되든지 유랑민이 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었던 것입니다. 도적무리가 된 자들은 떼를 지어 부자들을 습격해서 약탈하는게 그들의 생존방법이었으니 부유한 자들은 자기나름대로의 방어책을 강구하게 되는 것이죠.
나는 담벼락쪽으로 다가가서 마을을 살펴보았습니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 안에는 곳곳에 저수지가 보입니다. 집들은 기본적으로 이층인것 같습니다. 벽은 모두 흰색으로 통일하고 얇고 둥근 모습을 한 작은 기와로 지붕을 덮었습니다. 언뜻봐도 부유한 동네 같지 않습니까?
검은 기와지붕위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잔설이 기막힌 아름다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저수지 부근을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 등이 보였습니다. 저기에 내려가기만 하면 국수를 사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경치만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유럽의 시골마을 같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휘파건축의 백미를 보는듯 했습니다. 문득 안동의 하회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건축 양식이 안휘성과 절강성 복건성에까지 널리 퍼져 휘파건축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해내었듯이 우리의 전통마을도 나름대로의 특색은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마을과 도시를 만들때 아무 특색없는 집들이 마구 들어서는 것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싸구려의식이며 삼류입니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이젠 내려가야합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없으니 다시 새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트럭이 세워져 있는 길이 보이지요? 저 길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단 한번에 마을을 관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높은 곳에도 우물이 있고 작은 못이 있습니다.
물이 없다면 제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사람 살기가 불가능하므로 거주지로서의 가치가 없는 법입니다.
일행들은 아직도 담벼락에 붙어서서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정원의 작은 물구덩이 속에 우뚝 솟은 저 기석(奇石)들......
나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저런 돌이 세개씩이나 치솟아있다니......
정원 사방에는 이런 작은 아름다움이 수두룩하게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저런 곳에서 멋진 차를 한잔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런 곳에서 차를 마실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내야합니다. 나는 글쓰기를 잠시 중단하고 일어나서 물을 끓였습니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죠. 서재 한구석에 가서 차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우전(雨前)을 꺼내왔습니다. 물을 끓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 이제 차를 마시는 중입니다. ..............
"죄송합니다. 이제 다 마셨네요. 어허허허허허허허~~"
내려가는 길은 역시 한군데입니다. 문위에 써있는 글을 사현(思賢)으로 읽어야할지 현사로 읽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나에게 필요한 덕목은 현명함이지만 지금은 그게 나에게 가장 부족한 처지입니다.
내려가는 길도 외길이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올라가는 길이든 내려가는 길이든 항상 외길입니다.
마을에 쳐들어온 외적(外敵)이 한눈에 전체구조와 상황을 파악할 수 없도록 마을을 만든다는 것! 멋진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곳에 갇히면 빠져나갈 길이 없는듯 합니다. 범죄자들이 추격자들에게 쫓기는 처지라면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질 것이 확실한 그런 골목입니다.
둥근 문을 통과하자 널찍한 공간이 나왔습니다.
공사중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객사(客舍)같았습니다. 구조가 그렇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알고보니 여관시설이 맞았습니다.
우리는 객사의 정원을 통과했습니다.
다시 또 문을 통과해나갔습니다. 물두멍과 관음죽이 심겨진 화분이 보이나요?
바깥으로 나가자 작은 구멍가게가 나타났습니다.
중국은 벌써부터 도로명 주소를 쓰는 것 같습니다. 이 가게에서 팔고있는 물건들은 생필품과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장난감들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방금 지나온 곳은 팔괘촌안에 몇군데밖에 없는 숙박시설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화원공우! 나중에 찾아가서 머무르고 싶은 분들은 이 이름을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간판을 보며 알게된 사실인데 다른 숙박시설도 이 부근에 보였습니다.
이 가게의 주인은 제갈량의 49대 후손일까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붉은 등을 달아놓은 곳은 일단 상업시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방금 지나온 골목입니다.
앞을 보았더니 골목 끝자락에 아까 위에서 본 저수지가 나타났습니다. 모르고 다녔더라면 골목 안에서 엄청 헤매었을것 같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골목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었습니다. 민생고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기에 우리들은 음식점부터 찾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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