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괘진에 의거하여 마을을 설계하고 만든 만큼 골목은 복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속에서 보면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도 하늘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바로 위의 사진 속에는 대문이 있습니다. 대문 오른쪽 옆을 보면 관광객을 위한 작은 안내판이 있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저 표시만 잘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도록 되어 있으니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집들은 흙으로 담을 쌓은 모양입니다. 흙담가에 회를 발랐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모든 집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지 부근에는 나무로 만든 집들이 보였으니까요. 종지 종지하니까 간장을 담는 작은 그릇을 연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마을에서 종지(鐘池)라 함은 이 동네의 핵심을 이루는 저수지를 나타냅니다.
나는 이 마을의 실체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팔괘촌 사진 가운데에는 사실과 다른 모습을 한 사진들도 있더군요.
우리는 마을 뒷골목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탐방로에서 벗어나 마을과 가장 가까운 옆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밭에는 찢어진 잎을 단 배추같은 작물이 그득했습니다. 생김새는 배추 종류같은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겨울이 춥지않은 동네여서 그런지 밭에는 채소들이 많았습니다.
옆산에 오르려다가 나는 이내 오르기를 포기했습니다. 산이 너무 낮아 마을 전체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원래 길로 돌아나왔습니다.
이 마을의 담은 높아서 뛰어넘기도 어렵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어렵습니다.
군데군데 보수한 집들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양반가문의 집에서도 그런 사실을 느꼈습니다만 집단적으로 회칠을 해두면 이리도 단정하게 보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휘파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절감했습니다. 저번 글에서 휘파건축물이라는 용어를 소개드렸습니다만 하얀 벽을 가진 이 고장의 집들은 높이도 제법 높습니다. 밖에서 보면 단층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2층집들이 많다고 합니다.
관(官)과 도적에 의한 오랜 수탈의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중국의 집들은 대체적으로 대문이 작은듯 합니다. 밖에서 보면 작은듯해도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큰집들이 많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모형을 우리는 소흥(紹興 샤오싱)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혹시 이런 구조는 로마제국(이 글 속에서 말하는 제국은 공화정과 엄격하게 구별하여 말합니다)이 시작하던 시대에 일반적인 로마 중상류층 이상의 시민이 살았던 가옥인 도무스와 닮은 구조가 아니었을까요? 로마제국의 수도는 당연히 로마였습니다만 로마시 행정구역 안에서 중상류층 시민들의 거주지에서 흔히 볼수 있는 가옥의 구조들이 제가 절강성에서 본 가옥들의 구조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대문에 붙여둔 글씨들은 하나같이 달필입니다.
유난히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돈에 대한 집착도 대단해서 돈을 많이 벌기를 그렇게도 소원으로 삼는가 봅니다.
벽면에 구질구질한 광고지가 붙었던 흔적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좁은 골목이지만 쓰레가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옥의 지붕이 골목으로 많이 나오지 않는 것도 휘파건축의 특징일까요? 거의 모든 집들의 처마 곡선의 길이가 아주 짧은듯합니다.
안내판 하나도 허투루 만들어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명문가로서의 위엄과 전통이 녹아든 디자인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도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골목길은 이리저리 휘어지기도 하고 직선으로 꺾이기도 합니다. 길이 끊어진 것같은데 가까이 가보면 다음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곳은 막혀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보니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얼 하나 먹고 싶은데 사먹을 만한 곳을 그때까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유객중심'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을 찾았습니다. 여행자센터라는 말이겠지요.
그 옆에 농가반점이라는 음식점이 있어서 들어가보았더니 전통음식을 파는 집 같았습니다. 우리는 간단한 국수종류를 먹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습니다만.....
어떤 집은 처마가 제법 나와있기도 했습니다. 단층집 처마밑에는 빨래를 널어놓기도 했더군요.
이런 건물들은 최근에 지은 모양입니다.
우리는 다시 골목 순례에 나섰습니다. 목표는 종지입니다.
거의 모든 집 대문은 닫혀있는듯 했습니다만 장사를 하는 집은 문을 열어두기도 했습니다.
골목바닥은 작은 돌과 큰돌을 교묘하게 섞어서 빈틈이 없도록 포장을 해두었습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런 골목은 앞이 막혀있는게 확실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골목 어디에서도 하수도 관이나 도랑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어도 있긴 있을텐데......
표지판대로라면 종지로 가는 길은 골목이 열려있어야 하는데 막혀있는듯 했습니다. 골목 끝을 유심히 보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골목에서 골목으로 난 길은 미로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식이니 낯선 자들이나 도둑 혹은 강도들이 이 마을에 들어온다면 빠져나갈 길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다 보았습니다. 우리 멤버들은 모두들 나름대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듯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으니 모두들 놀라운 재주를 가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앞이 막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앞으로 나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옆을 살펴보니 골목마다 특색있는 작은 가게들이 점점이 박혀있었습니다.
골목끝에 다다른 순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목은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교묘한 시각적 착시효과를 노린 이 간단한 담벼락 하나! 거기엔 팔괘와 관련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팔괘도 중앙엔 태극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저수지 자체가 바로 태극모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수지 가에 쌓아둔 돌담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휘어져 있지 않습니까?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저수지가 바로 종지입니다. 팔괘촌 마을의 실질적인 중심지입니다.
팔괘도가 그려진 담벼락을 살짝 벗어나서 전체모양을 살펴보았습니다.
종지 군데군데엔 빨래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한쪽에는 너른 광장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게 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종지 건너편에 파란색 삼륜자동차가 한대 서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인력거 대용(代用) 삼륜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하얀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현대문명의 이기......
현대판 방물장수가 왔는지 스피커에는 사람을 유혹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 한분은 빨간 고무장갑을 낀채로 빨래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작은 행상용 경운기 비슷한 탈것을 둘러싼 노인들이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나의 호기심을 슬며시 부추겼던 것입니다. 나는 슬금슬금 걸어가서 그들에게 다가섰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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