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힐링문화원을 나온 나는 남산일주도로를 따라 걸었다.
경주 남산을 이리저리 감아돌아간 일주도로는 군사독재정권시대에 만들었다. 1960년대의 이야기다. 지금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해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아니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조금 걸어올라가다보면 왼쪽편으로 작은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일부 구간은 도로 포장되어 있기도 하다.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런 산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좋은 시절이다. 내가 물같이 흘러보낸 날들에 비하면 그녀들은 정말 행복한 시기를 만나 살고 있는 것이다. 경사도가 완만한 길이어서 걷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잔바람이 불때마다 나뭇일들이 조금씩 흩날렸다.
단풍들이 제법 곱게 물들었다. 남부지방은 확실히 단풍이 늦다.
늠비봉 오층석탑으로 갈라져 들어가는 길을 만났다. 오늘 목표는 부흥사여서 그냥 그대로 가던 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조금 더 올라갔더니 부흥사 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일주도로에서 벗어나 절로 가는 길을 택해걸었다.
이젠 정말 고즈녘한 산길이다.
이리저리 감아들며 올라가는 길이지만 크게 힘드는 길은 아니다. 경주남산은 국립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보던 무덤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사라져야하는게 당연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서산으로 지는 해가 솔숲사이로 끼어들면서 긴 그림자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절에 다온듯 했다. 바람결에는 사람 냄새가 실려있는듯 했다.
길바닥에는 갈비가 소복소복 깔리기 시작했다. 솔잎이 말라서 떨어진 것들을 갈비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소나무 마른 잎을 모아서 불쏘시개로 썼다. 그게 없으면 장작에 불붙이기조차 힘들었다. 갈비가 떨어지면 아궁이에 불지피기는 물론이고 밥짓기도 어려웠다.
산에 자라는 조릿대가 보였다. 이렇게 가는 대나무로는 화살을 만들었지도 모르겠다.
내가 걸어온 길이다.
하늘이 유난히 파랬다.
산길 끝부분에 절이 보였다.
숲길 여기저기에 사람내음이 묻어났다.
길에 떨어진 작은 나뭇잎 하나를 보면서 나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렸다.
산중에서 이런 절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인기척을 느낀다는 더더욱 즐거운 일이고.....
남산에는 여기저기에 절이 숨어있다. 그 중에 하나가 부흥사이다.
최근들어 절이 번성하는듯 하다. 신도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겠지.
입구에는 벌통이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벌은 이제 더 이상 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스님 한분이 툇마루에 앉아 군불을 때는 아궁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인기척을 내며 다가가자 가벼운 눈인사를 보내왔다. 서로 고마운 일이다.
산속이라 밤이 되면 추우므로 미리 군불을 넣어둔단다.
한쪽 툇마루에는 엿기름이 촉을 내고 있었다. 화분에 길러놓은 국화 몇송이가 서리를 기다리고 있는듯 했다.
싸리 바구니와 엿기름과 콩나물 받침대......
이런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시골집이다.
조청을 만드려는 것일까?
산속에 있으니 절이지 동네 한가운데 있다면 영락없는 여염집이다.
장독대를 만나보는 것은 얼마나 오래만의 일이던가?
나는 수도승과 거듭 눈인사를 나누고 늠비봉 오층 석탑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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