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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어설픈 시골 선생으로 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긴 있다

by 깜쌤 2012. 10. 23.

 

지난 금요일 낮에 은퇴를 하신 선배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동기회를 조직하려는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나까지 초대를 했으니 모임에 꼭 나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30여년전에 가르친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초대를 하는 선생님들 명단이 조금 이상했다. 어디엔가 잘못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은 참석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드린 뒤 나중에 확인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한걸음 물러설 여지를 남겨두었다.

 

나는 제자들이 불러줄 경우 어지간하면 나갔다가 일찍 돌아온다. 제자들이 불러주는 자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오래 앉아있으면 있을수록 나중에는 약간 불편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절대로 초대를 마다할 자리는 아닌 것이다. 그런 귀중한 자리까지도 마다하고 살면 선생하는 즐거움까지 날려버리는 것이 된다.

 

 

 

나이든 어른이 외로워지는 것은 달리 외로워지는게 아니다. 젊은이들과 같이 어울리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낮아져서 어울릴 수 있는 처지가 되지 않으면 슬며시 빠져주는게 도리고 예의다. 그러니 외로워지게 마련이다. 술자리에서 질기게 남아있는 부장이 인기가 없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끼리끼리 어울리게 만들어주고 적당한 시점에서 빠져나와주면 세상살이의 경우와 도리를 아는 상사가 되어 인기를 독차지할 수 있으련만 술이 들어가면 그게 안되는 모양이다. 술이 취하기도 전에 그런 판단을 못한다면 인생을 헛살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생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내가 일하는 학교는 6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만 14명이다. 어지간한 시골학교의 전체직원수보다 많다. 힉년 안에서는 내가 제일 고참이다. 나이 구별없이 함께 일하는 처지지만 맨날 젊은이들이 노는 자리에 끼어들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자리가 생길 경우 될 수 있으면 나는 끼어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밥은 같이 먹으러 갈 수 있지만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 하면 눈총맞기 십상이므로 중간에 핑계를 대고 빠져나온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적당히 익으면 슬그머니 물러나주는 것이 옳바른 처신이라는 것을옛어른들의 삶을 통해 배웠다.

 

 

 

적어도 우리 선배 어른들까지는 그렇게 살았고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회비를 내어 회식하는 것이 아닐 경우 먼저 빠져나오면서 음식값까지 치르고 나오면 최고의 직장인이 된다. 알면서도 그렇게 못할때는 서글퍼지는 법이고....... 

 

집에 와서 졸업앨범을 꺼내 확인을 해보았다. 제자들이 초대하고자 하는 선생님들 명단에는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졸업년도도 다른 것 같았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선배선생님께 다시 전화를 드려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4학년때 가르쳤던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서 동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모임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6학년때 가르쳐서 졸업시킨 담임선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배웠던 선생님들 가운데 특별히 기억이 나는 선생님가운데 내가 포함되어서 초대를 하게 되었단다.

 

"선배님, 그렇다면 제가 참석을 안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초청을 해준 것은 더 없는 영광이지만 그래도 처음 동기회를 조직할때는 가능하다면 6학년때 담임선생들을 모시고 모임을 가지는 것이 예의일 것입니다. 그때 직접 가르치신 담임선생님들도 다 참석을 못하시는 모양인데 저같은 사람이 버티고 앉아있으면 모양새가 우스워집니다. 담임선생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요. 그러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선배님이야 담임을 하셨으니 당연히 참석을 하시고요, 혹시 기회가 주어질 경우 제가 왜 참석을 안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 좀 드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4학년때 같이 공부했던 아이들끼리 반창회를 하게 되면 두말없이 기꺼이 참석을 하겠습니다라고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나는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전화를 받고나서부터 적어도 이틀 동안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선생이 행복할때는 그런 순간이다.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을 키워서 졸업을 시켰는데 먼훗날 잊어버리지 않고 찾아와 줄때처럼 행복한 순간이 또 있던가?

   

나는 제자들이 찾아와주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그런 선생이 아니다. 기다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내 분수와 처지와 과거를 알기 때문이다. 실력도 없고 능력도 모자랐으며 인격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에 뭐 하나 자랑스레 내세울게 없는 선생으로 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도 어설픈 시골 선생으로 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긴 있다.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