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현재의 경주 시가지 모습에 불만이 제법 있는 사람이야. 도심과 외곽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쭉쭉 올라가면 그게 발전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먼 훗날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아."
"왜냐고? 잘 생각해봐. 지구 위에는 이런 모습의 도시들이 널렸어. 시멘트로 된 사각형 건물이 즐비한 도시는 정말 많다고. 경주는 누가 뭐래도 관광도시야. 산업도시가 아니지. 관광도시는 관광도시다운 매력과 멋이 있어야해. 경주만의 멋과 매력, 그게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지."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싱가포르처럼 똑같은 건물이 하나도 없도록 유도하든지, 아니면 경주만의 고유한 모습과 독특한 양식을 고집하든지 해야 할 것 아니겠어?"
"아파트같은 현대식 건물도 못짓게 하면 경주 사람들은 모두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그냥 살라는 말이야 뭐야 하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어. 틀린 말이 아니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성질 낼 일은 없어. 잘 들어봐. 아파트를 지어도 모든 아파트의 층수 높이를 거의 비슷비슷하게 하는거야. 경주같으면 산의 곡선이 아주 부드러운 편이야. 그렇다면 자연과 환경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5층이나 7층 정도로 제한해서 어디에서 어떤 방향을 봐도 경주 부근의 산들이 가리지 않도록 할 수도 있어."
"높이를 적당히 맞출 경우 산에서 내려다보거나 거리에서 올려다본 모습은 조화를 이루는거야. 프랑스 빠리가 그렇게 되어있지 않아? 빠리를 가보면 알겠지만 빠리에서는 일정한 높이가 느껴져. 로마도 비슷할 걸?"
"그뿐만이 아니야. 아파트를 만든다고 해도 지붕은 모두 검은색이나 회색 기와를 잇게 하는거야. 실제로 그런 아파트가 경주에 있어. 예전에 지은 주공아파트들이지. 아직도 시내에 몇군데 남아있어. 내말이 의심스럽게 여겨지면 찾아가봐. 느낌이 다를걸? 황성동에도 있고 성건동에 있어. 다음이나 구글 혹은 네이버 지도로 확인해도 되지."
"새로 지은 아파트들도 모두 그런 식으로 처리를 했으면 지금쯤 경주는 기와 지붕이 가득한 도시가 되어 경주만의 독특한 모습이 만들어졌을거야. 그렇게 못한 것은 지도자들의 안목부족이지. 시민들의 이기심때문이기도 하고 말야."
"이제 금장대로 올라갈거야. 준공된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아직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더라. 좋은 일이지."
"이제 올라왔어. 난간 쪽으로 다가가서 시가지를 훑어봐야지. 안그래?"
"절벽 밑으로 보이는 강물이 애기청수야. 물이 시퍼렇지? 예전에는 해매다 익사사고가 있었던 곳이야. 애기청수에는 물귀신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글쎄...... 물론 난 안믿어."
"금장대는 대학 이름이 아니야. 정자 이름이지. 정자치고는 제법 크니까 금장대라고 한 것 같아. 복원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견문이 짧아서 그렇겠지만 어느 분이 쓴 어떤 책에 그 기록이 남아있는지 그게 궁금해."
"시가지에 기와지붕이 가득했으면 경주는 환상의 도시가 되었을거야."
"중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가 어디라고 생각해? 아름답다는 기준이 다 다르고 워낙 넓고 큰 나라여서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중국을 여행 좀 했다고 하는 분들은 소주나 항주,혹은 계림같은 도시를 꼽기도 하고 어떤 분은 베이징같은 역사도시를 들기도 하더라. 베이징 부근의 승덕을 추천하는 분도 꽤 되던데..... "
"나는 생각이 달라. 자랑하는 것같아서 쑥스러운데 나는 그동안 중국은 배낭여행으로만 여섯번을 돌아다녔어. 북쪽으로는 하얼빈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쪽으로는 실크로드를 따라 파키스탄 부근의 타슈쿠르간까지 가보았고 몽골 국경 부근의 대초원지대에서부터 남쪽으로 쉬상반나 지방을 거쳐 라오스로 국경을 넘어가보기도 했어. 남서쪽으로는 곤명, 대리, 려강, 샹그릴라 같은 곳을 가보기도 했고 사막이나 초원등 여러곳을 헤매고 다녔어."
내가 본 최고의 도시는 운남성 서북지방에 있는 려강(麗江)이야. 리지앙이라고 하는 곳인데 나시족의 본거지이기도 하지. 나는 거기를 최고로 꼽고 싶어. 중국 여행을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딱 한 도시를 추천해야 한다면 단연 거기야."
"경주에는 남산이 있잖아? 려강에는 옥룡설산이라는 산이 있어. 5천미터가 넘는 산이어서 항상 꼭대기에는 흰눈을 이고 있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와집 도시라는 거야. 물론 어설픈 한족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변두리에다가 현대식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쪽은 조잡하기 짝이 없어. 구시가지 중심에는 나시족들의 전통가옥인 2층 기와집이 빽빽해."
"그 기와집들이 송나라시대의 집들이라는 것이 놀라운 일이야. 송나라 같으면 우리나라 역사로 칠때 고려시대 중기와 말기에 해당되는 시대인데 그때 지은 목조건물들이 즐비하다니까."
"기와집만 있으면 아름다울까? 아니야. 거기에는 소수민족의 전통의상과 삶이 그대로 다 남아있어서 생활속에 어우러지는 전통이 자연스레 녹아나는거지. 거기다가 말이야, 도시 한가운데로 골목마다 물길이 다 나있다는거야. 그게 도시를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해주는 거야. 궁금하지?"
"골목마다 맑은 물이 흐른다고 생각해봐. 물론 물이 있으니 나무도 있지. 얼마나 정감 넘치는 모습이겠어? 그뿐만이 아니야. 골목에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가게들이 가득가득 숨어있어. 너무 예쁜 도시여서 두번이나 가보았어."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경주와 이모저모를 비교해보았어. 우린 안목이 부족한거야.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없으면서도 제 흥과 제 멋에 겨워 지도자로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안목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간이야. 너무 많이 모자라지. 천만다행으로 나는 독서와 여행을 통해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깨닫기 시작했던거야."
"이제 씨알도 안먹히는 헛소리와 개소리를 그만하고 내려가야할 것 같아."
"혹시 경주에 오면 꼭 한번 올라가보기를 바래. 그러나 너무 기대하지는 마. 사진과 실물은 보는 각도가 다르기에 느낌이 다를수도 있는데다가 아직 주변 공사가 덜 끝났거든. 내가 보기엔 정비할게 더 있는 것 같아."
"어설픈 글을 읽어주어서 정말 고마워. 시건방 떤 것을 용서해주면 좋겠어."
"그럼 안녕! 다음에 또 봐."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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