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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제발 편안하게 수업좀 하도록 해주시면 안되겠소?

by 깜쌤 2012. 9. 22.

 

 며칠전에 전국수준평가 결과표를 받았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다. 3월에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고 나서 7월에 시험을 보는 것이니 비록 한학기간의 수업결과 - 사실은 지난 5년반동안의 학습결과다 - 를 평가받는 것이지만 학교의 명예가 딸린 일이기도 하거니와 교사의 능력을 평가받는 일종의 검증절차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실 6학년 1학기는 시험대비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2학기가 되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물론 아니다. 기본적으로 가르쳐야 할 분량이 엄청 많으니 수업은 수업대로 그저 열심히 해야하고 아이들 생활지도와 공문처리 및 인성지도에도 신경을 써야하니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엉뚱한 일로 시달리는 교사들이 있는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젊은 후배교사가 모처럼 수업이 비는 오전 시간에 공문지시사항을 처리하느라고 컴퓨터 앞에 매달려서 정신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도 열심히 하는가 싶어 슬쩍 알아보니 어떤 국회의원이  요구해온 자료를 처리하여 지역교육지원청에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내용을 본즉 엄청나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최근 5년간의 학교운동부 운영 학교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현황'을 보고하란다. 최근 5년간의 자료를 찾아 처리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가능한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거의 모두가 연초에 학교에서 배정해준 업무분야를 한두가지씩 맡아 일을 처리한다. 시골에 있는 소규모 소인수 학교라면 교사 한사람이 몇가지 일을 맡아서 처리해내야한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쏟아지는 공문처리와 업무추진을 위해 쉴시간없이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를 꺼낸것처럼 고학년 담임을 맡으면 수업에 대한 과중한 부담은 물론이고 생활지도에다가 잡무처리를 위해 시달리느라고 하루종일 정신이 없을지경이다. 그런 상황인데 해매다 9, 10, 11월이 오면 엉뚱한 일을 처리하느라고 시간을 뺐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른바 국회의원 요구에 의한 자료제때문이다. 

 

 

요즘은 가르쳐야 할 분량이 엄청나게 많다. 한시간 수업을 빠뜨리면 보충해줄 길이 막막하다. 오후에 남아서 시키면 될것 아니냐고 반문할 분도 있겠지만 지금의 학교 현실은 예전같지않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사교육 스케쥴을 처리하기 위해 바쁘고 학교 안에서는 방과후 활동을 비롯한 온갖 일때문에 오후에는 자기 교실을 비워주어야 하는 선생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아이들을 남겨 지도하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결국 공문처리를 위한 수업결손 폐해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이다. 나라일을 맡아 처리하는 국회의원들이 일선 교사를 상대로 해서 자료를 요구하는 관습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물론 나도 그런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시간에 쫒겨가며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촉박한 시간안에 재빨리 자료를 만들어내야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교사들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알고있다. 일반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일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어떨때는 업무담당자가 아침에 받은 공문지시사항을 같은 날 오후 2시나 오후 4시까지 지역교육지원청으로 시간을 엄수해서 제출해달라는 식으로 요구받기도 했다. 그런 공문을 받으면 속된 말로 '꼭지가 확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자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교사는 당연히 수업을 희생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안에 맞추어서 제출하려면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자습시키고 공문작성을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한번 가르쳐주기 바란다. 멋진 비결이 있다면 꼭 배우고 싶다. 

 

 

그렇게 만들어낸 자료지만 나중에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본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인사같은 것은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 높으신 양반들 눈에 일선교사나 하급공무원들의 노고가 눈에 찰 리가 있을까 싶기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법을 잘모르니 함부로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식으로 촉박하게 자료를 요구하는 태도는 어찌보면 월권이며 직권남용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자리는 아닐 것이다. "정기국회에 제가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대정부질문을 하고자 하니 선생님들께서는 수고스럽지만 이러이러한 자료를 미리 만들어 준비해 두었다가 나중에 요구할때 내어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할 줄 아는 그런 겸손한 멋으로 가득찬 국회의원은 없는 것일까? 

 

시간을 넉넉하게 주고 정확하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게 옳은 일이다. 한번씩 당해보고 나면 내 지역구 의원일 경우 다시 찍어주고싶은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이런 피해를 당하는 것이 우리만 그런가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참으로 많은 사례들이 올라와 있었다. 높은 양반들은 제발 불쌍한 민초들의 슬픔과 고통도 좀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 교사들이 그런 것에서 해방되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알찬 수업만 하게 될 날은 과연 언제쯤 올까?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