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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8월 29일에 한복을 입고 검은 리본을 달고 출근한 이유는?

by 깜쌤 2012. 8. 31.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이다. 1910년 8월 22일에 이미 이완용(당시 총리대신이었다)을 우두머리로 하는 대한제국의 매국노들은 일왕(日王)에게 국가의 모든 통치권을 넘겨준다는 합병안에 서명을 하고, 8월 29일에 발표를 함으로서 그날을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날로 만들어버렸다. 경술국치의 핵심인물은 이완용데라우치다.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않은 장면 가운데 하나가 경술국치라는 사건이다. 경술년에 나라가 치욕스런 일을 당했다고 해서 경술국치일이라고 부르는 것이건만 일반 대중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않은듯 하다.

 

 

올해 국치일 며칠전 나는 아내에게 모시적삼과 바지를 내어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두었다. 오래 되어서 이제는 제법 많이 낡았지만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만들어준 모시옷이므로 나에게는 의미가 깊은 옷이다. 그리고는 서재 책장에서 검은 색 리본을 찾았다.

 

그 리본도 사용한지가 한 이십여년은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 교회에서 경술국치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성도들이 모두 한번 달아보자고 해서 나누어준 것인데 그동안 버리지않고 곱게 보관하며 사용해 왔었다. 국치일이 방학중에 있는 해에는 어쩔 수가 없었지만 8월 하순에 개학을 할 경우에는 그날이 오면 나는 거의 예외없이 모시적삼과 바지를 입고 검은 리본을 달고서 출근을 했다.

 

 

내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므로 치욕의 역사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에서 그런 아픈 상처를 기억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다. 1910년에 벌어진 사건이므로 이젠 100년이 넘었다. 100년이 훌쩍 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기는 사건이어서 이젠 너그럽게 용서해주리라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부터는 그런 행동을 중지했었다. 

 

하지만 올해들어 왜인 정치가들이 저지르는 뻔뻔스런 말과 행동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는 관용과 자비가 필요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강도높혀 우기지만 않았어도, 일왕이 사과하라는 말에 자기반성없이 섬나라 왜인들이 함부로 길길이 날뛰지만 않았어도, 나같이 어리바리하기 그지없는 시골 선생이 입에 거품을 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열불이 오른 나는 올해도 계속하기로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다. 태풍의 여파로 인해 비바람이 심한데다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해야하는 처지여서 일단 평상복을 입고 출근을 한 뒤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교실에 들어섰더니 아이들 표정이 깜짝놀라는 모습으로 바뀌어지고 만다.

 

수업이 시작되자 나는 아이들에게 오늘 8월 29일에 깜쌤이 왜 이런 차림으로 여러분 앞에 서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어보았다. 역시 아이들은 고개만 갸우뚱거린다. 정답을 유도해내기 위해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해보지만 맞추는 아이들이 없었다. 지금 6학년 아이들은 5학년때 국사를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게 우리 국사교육의 현실이다.

 

 

경술국치일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자 그제사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숙연하게 변하면서 반응이 달라졌다. 쉬는 시간이 되자 영문을 모르는 다른 반 아이들은 복도에서 나와 마주칠때마다 더러더러 내옷차림을 보고 슬며시 웃기도 한다. 워낙 깐깐하고 무섭기(?)로 소문이 자자해서 그런지 대놓고 앞에서 웃는 아이들은 없지만 평소와 다른 내 옷차림이 한없이 신기하고 그 이유가 사못 궁금했던 모양이다.

 

8월 15일은 두가지 의미를 지닌 날이다. 하나는 광복이 된 날이요,또 다른 하나는 정부수립기념일이다. 그런 사실은 잘 알면서 치욕의 날은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도 않으며 기억하지도 못한다면 역사의식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역사의식이 없는 국민과 정치가들이 왜 필요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