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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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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맨손으로 작은 새를 잡아서....

by 깜쌤 2012. 9. 10.

 

"선생님, 가 들어왔습니다."

수업이 한참 진행중인데 아이 가운데 누가 한마디 합니다. 교실에는 이따끔 별별 것들이 다 들어옵니다. 잠자리, 나비는 기본이고 가끔씩은 새도 들어옵니다. 벌이 들어오는 날은 교실에 비명소리가 가득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해결날 일이지만 벌에 대한 공포심 때문인지 아이들이 일어나서 도망을 가기도 합니다.

 

 

 

"그래? 가만히 놓아두어라. 놀래지 않도록 하는게 급선무다. 저도 참 답답할거다. 나갈길을 모르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일단 그렇게 당부를 했습니다. 멀리서는 새들 눈에 유리창이 잘 구별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이들 비명소리에 놀란 새는 아무렇게나 급히 날다가 어김없이 우리창에 부딪혀 죽는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유리창에 충돌하면 보통은 새들의 목이 부러집니다. 날개죽지가 부러지는 경우도 가끔 생깁니다. 목이 부러지면 거의 즉사합니다.

 

  

한눈에 박새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박새는 참새과의 작은 텃새입니다. 참새보다 덩치가 더 작아서 정말 귀엽고 앙증맞은 느낌을 줍니다. 나는 녀석이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날아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우리반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괜히 겁을 먹어 이리저리 날면서 하얀똥을 찔끔 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시간 수업을 끝냈습니다. 제법 긴 시간을 주었건만 녀석은 밖으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천장에 매달린 여러대의 선풍기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출구를 찾았습니다. 복도로 나가버리면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복도가 워낙 길어서 녀석이 헤맬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잡아서 날려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교실 안에 새를 잡을 수 있는 도구가 없으니 별 수없이 맨손으로 새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맨손으로 새잡기라....   얼핏 생각하면 맨손으로 날아다니는 새를 붙든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같지만 나는 은근히 자신이 있었습니다.

 

 

"애들아, 그러면 오늘은 내가 맨손으로 새를 잡아볼게."

"맨손으로요? 그냥 손으로 어떻게 새를 잡아요?"

아이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젓습니다. 아이들이 고개도리질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슬며시 자그마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가능하단다. 먼저 너희들 마음부터 비우렴. 새를 향해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잡아서 너른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자. 그러면 그 생각이 새에게 전해진다."

 

나는 평소에 마음을 비우고 살아갑니다. 큰 욕심도 없는 데다가 동식물 기르기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맨손으로 새를 잡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이십여년 전에는 경주남산 삼릉골짜기에서 토끼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정신이 이상한 깜쌤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산토끼와 내가 사이좋게 한 십여분 정도 가까이에서 함께 놀았기 때문이죠.

 

"난 너를 잡아서 해코지할 생각이 전혀 없단다. 그러니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 너는 네 할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나는 바위에 새겨진 조각을 구경하고 있을테니 너는 너대로 등산객이 남긴 음식을 먹고 있으렴. 배고프지?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구나. 많이 먹어."

 

 

 

그랬더니 산토끼는 나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부지런히 음식을 찾아먹었습니다. 

"잠깐만....   저 밑에서 사람들 소리가 나는구나.  이젠 가렴. 그래야 안전하단다. 안녕."

그랬더니 산토끼는 슬금슬금 나를 보고는 잔솔 숲 사이로 사라져갔던 것입니다.

 

 

이번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른명의 아이들까지 모두 다 나서서 모두들 마음을 비우고 교실에 들어온 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쉽게 잡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책상위로 올라가서 선풍기에 앉은 새에게 손을 가져갔습니다. 내가 예상한대로 - 사실은 별로 놀랍고 신기한 일도 일도 아니지만 - 녀석은 작은 몸뚱아리를 떨며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움켜쥐려고 하자 살며시 빠져나갑니다.

 

 

이번에는 선풍기 반대쪽으로 가서 앉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너무 선하고 착한 눈빛을 가졌습니다.

 

 

살며시 움켜잡으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포르르 날아서는 교실 앞면에 있는 대형 모니터 한모퉁이에 가서 앉습니다.

 

 

열려진 창문으로 날아서 밖으로 나가라고 아이들이 모두 나서서 응원을 보냈지만 녀석은 그걸 못찾는 모양입니다. 다시 날아서 벽면 모퉁이에 가서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도 탄성을 지릅니다.

 

 

녀석은 다시 날아서 선풍기 날개 덮개 위쪽 공간에 가서 앉았습니다. 이젠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시도에서 아주 쉽게 잡았습니다. 아이들이 신기하다며 박수를 보내줍니다. 꼭 쥐면 죽을 것 같아서 기념촬영만 하고 날려보내주기로 합니다.

 

 

두손으로 살며시 움켜쥐고 창문 밖으로 손을 내어 날려보냈더니 학교건물 공사용 비계에 앉아 실내를 한번 더 쳐다보고는 작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가볍게 날아갔습니다. 한 3분쯤 지났을까요? 박새 한마리가 창밖에서 소리를 내더니 그림자를 유리창에 남기고 스쳐지나갔습니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모두들 아까 그 박새일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