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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사촌이라는 말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by 깜쌤 2012. 9. 23.

 

나는 할아버지 모습을 못보았습니다. 삼촌이 없었으니 당연히 사촌은 그림자도 못보았습니다. 고모가 없었으니 고종사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사촌이라는 말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큰어머니, 작은 어머니를 못보고 자랐습니다. 삼촌이 안계셨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를 못보았고 외할머니를 못보았습니다. 모두 다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모가 없었으니 이종사촌이 없었습니다. 얼굴을 본 외삼촌이 딱 한분 계셨습니다. 그래서 천만다행으로 외사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외삼촌은 두분이라고 했지만 외숙모는 한분만 계셨습니다. 외삼촌 한분도 일찍 돌아가셨으니 얼굴을 모르는게 당연합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은 오촌이었습니다. 당숙이 세분 계셨는데 한분만 볼 수 있었습니다. 명절이 되어 일가친척이 한가득 모이는 집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젊었을때는 아버지 혼자서 벌초를 하셨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벌초의 의미도 잘모르고 살았습니다.  

 

 

나는 할머니 한분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 할머니조차 초등학교 5학년 가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할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내 가슴깊이 박힌 가장 소중한 피붙이였던 셈입니다. 나는 할머니를 기억하지만 동생들은 할머니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동생들과 당숙 한분 그렇게 몇이 모여서 벌초를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책임을 지게 된 일이 되었습니다. 할머니 산소에만 가면 느낌이 남다릅니다. 아버지는 영천국립묘지에 모셨습니다.

 

 

삶의 터전인 경주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인근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제가 살았던 곳에는 이제 기차도 서지않고 그냥 통과합니다. 간이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살이가 간이역같습니다.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한 간이역!  나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나오는 간주곡을 들으며 이글을 씁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런 분위기인것 같습니다.

 

 

문제는 지금 자라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저처럼 사촌을 모르고 자라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만 알고 자라나기에 외로움과 쓸쓸함과 독선과 아집을 바탕으로 깔고사는 문제많은 세대가 되어가는 것이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