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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양동마을까지 자전거로 다녀오기 4

by 깜쌤 2012. 8. 28.

시골에서 살아본 내 경험에 의하면 양동은 결코 작은 마을이 아니다. 이 정도면 시골에서는 큰 마을이다.

 

 

마을이 골짜기 안에만 존재하는게 아니다. 산너머로 기계천쪽에도 집이 있다. 골짜기와 산비탈 구석구석에 집이 숨어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편이다.

 

 

기와집과 초가가 잘 섞여있어서 한눈에 봐도 아름답다.

 

 

물론 보존상태도 좋다. 그러니 역사마을로 지정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명심할 것은 여기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내방객들은 마을을 관광지로 착각을 해서 관광객들의 권리만 주장하는 것 같다.

 

 

이 동네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있는 개인생활의 공간이다.

 

 

역사마을에 살고있으므로 주민들에게는 작은 혜택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제한조건이 더 많을 것이다.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다. 집수리조차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것은 기본이다.

 

 

관광객들은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가서 떠들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데 엄연히 따지면 정당한 일은 아니다.

 

 

지금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은 양동마을의 이런 광경이 낯설 것이다.

 

 

집이라고 하면 슬라브집이나 아파트만을 생각하고 자라난 세대들에게 이런 마을은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비추어질지도 모르겠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전국의 집들이 거의 비슷했다.

 

 

그러다가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밀어닥쳤다.

 

 

제일먼저 일어났던 물리적인 변화가 지붕개량이었고 마을길을 넓히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많은 전통마을이 모습을 바꿔가면서 고유의 분위기를 잃어버렸다. 

 

 

정신적인 변화로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살게 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상 물질적으로는 가장 번영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오십여년간의 변화는 실로 눈부실 지경이어서 천지가 개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변화의 물결속에서 꿋꿋이 옛날 촌락의 모습을 잘 간직해온 곳이 양동이며 하회다.

 

 

양동이나 하회는 그런 면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잘 가꾸어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우리가 양동마을에서 배울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냥 와서 떠들고 구경하고 히히덕거리다가 돌아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벌판 저너머 멀리 보이는 곳이 안강읍이다.

 

 

현대화된 안강과 양동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그 모습이 확연히 구별된다. 관광지여서 주민들이 많이 영악해져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양반들의 후손답게 주민들의 풋풋한 인심은 남다른데가 있다.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골짜기 안쪽만 대강 둘러본 나는 돌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양동마을은 언제 와봐도 정겹다.

 

 

이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젊은이들로부터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세대일 것이다.

 

 

나는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말'는 말을 참 좋아한다. 참된 가치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필요가 없다.

 

 

서양인들도 참 많이 오는 곳이다.

 

 

나는 서울에서 교편을 잡는 제자의 부모님이 이 마을에 사신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제자로부터 들었기에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직접 메로 쳐서 만든 떡을 대접해주신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중간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엄청난 소나기를 만났다. 시골길을 달리는 시내버스 주차장에서 비를 피할 공간을 찾아들어갔다. 도로가 집마당에는 고추와 깨를 널어두었는데 쏟아지는 비를 다 맞고 있었다.

 

  

남의 집이지만 들어가서 문을 두들겼는데 반응이 없었다. 주인이 들에 일을 나가신 모양이라고 판단한 나는 급한대로 고추를 비닐로 덮어드렸다. 깨도 덮어야하는데..... 응급조치만을 취해두고 비를 피하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셨다.

 

 

돌아오는 도중에도 몇번씩이나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우를 만나 결국은 완전히 물에 빠진듯한 몰골로 집에 온 것이다. 양동 한번 다녀오기가 그렇게 힘이든 것은 살다가살다가 처음이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