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포석정으로 갔다. 포석정은 경주남산의 서쪽 기슭에 있다. 자전거를 타고가도 집에서 포석정까지 30분 정도면 되니 큰 부담은 없는 거리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산길을 걸었다.
알이 채 익지도 않은 밤송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혹독하리만큼 지나친 여름가뭄때문에 영글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져버린 것일까?
산기슭 숲으로 들어갔더니 숨이 턱턱막혔다. 이내 땀이 비오듯 마구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고 천천히 걸어오른다.
중턱쯤에서 반가운 꽃을 보았다. 원추리다. 벌써 다져버리고 없어져야하는 꽃인데 얘는 이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시야가 트이는 중턱까지 올라와서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멀리 고속도로 나들목이 보였다.
다시 한번 더 원추리에게 눈길을 주고 부지런히 걸었다.
사실 경주 남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한시간 정도만 걸으면 누구든지 정상 부근 산봉우리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얕은 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산은 절대 아니다.
골이 깊은 계곡이 제법 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만만하지 않은 산이 경주 남산이다.
남산은 화강암 덩어리다. 바위산이어서 그런지 더 아름답다. 수도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워낙 불교유적이 곳곳에 많이 널려 있으므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야외박물관이라는 말이다.
능선길에 올라서부터는 그냥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나에게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문제다. 다리가 풀리는 날에는 내려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멀리 경주시가지가 보였다.
경주라는 곳이 참 묘한 곳이다. 지금까지 살아본 결과로는 특이하게도 풍수해가 적은 곳이었다. 하지만 큰소리치며 자랑할 일은 절대 없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의 심술궂음이 나날이 위력을 더해가기 때문이다.
저 먼산에 보이는 하얀 구조물은 탑이 아니다. 굴뚝이다. 앞에 것은 물론 탑이다.
남산에는 이런 탑들이 많다. 여기저기 곳곳에 숨어있는 것이다.
컴퓨터를 뒤져 기록을 살펴보았더니 작년 8월 20일에 남산을 올라온 뒤로 한번도 오지 않았다. 그러니 거의 일년만에 찾아온 것이다.
작년 여름에는 중국 산동성에 있는 태산을 올랐었다. 태산은 계단투성이 산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아래 주소를 눌러보기 바란다.
http://blog.daum.net/yessir/15866772
남산은 그렇지 않다. 태산에 비하면 산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낮은 산이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남산은 태산의 압축모형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태산은 너무 상업화되어버려 산이라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장사치들이 바글거리는 상가(商街)라고 보는게 훨씬 낫다. 남산은 그런 면에서 태산의 몇수 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편인데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남산을 소개한 뒤로 주말마다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바둑바위까지 올라간 나는 여기에서 돌아내려가기로 했다. 작은 상자가 무엇인가 싶어서 확인해보았더니 엽서가 들어 있었다. 그리운 이들에게 엽서를 쓸 수 있도록 시설을 해두었다.
이번에는 삼불사(三佛寺)쪽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그래야 포석정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포석정 주차장이 보였다. 왼쪽 아래에 하얗게 빛나는 곳이다.
포석마을은 왜 그런지 정감이 가는 곳이다.
생태계 복원을 위해 군데군데 오솔길은 통제를 해두었다.
오랫만에 산에 와서 그런지 내려갈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려가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삼불사까지 내려오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집에서 급히 나가느라 물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버렸던 터라 목이 심하게 말랐다. 삼불사에서 물을 찾아 마셨다. 갈증을 해소하고나자 물에 대한 고마움이 솟아올랐다.
배롱나무꽃이 유난히 영롱하게 빛나던 날이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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