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신라의 35대왕이었다. 임금의 자리에 즉위한 것이 서기 742년이고 사망한 해는 서기 765년이다. 그러니 신라 최전성기때 통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기 751년에 불국사가 완성되었으니 그의 재위중에 있었던 일이라고 보면 된다. 그가 누구일것 같은가? 제목에 있는것처럼 경덕왕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벗어났다. 급한 일이 없으니 슬금슬금 페달을 밟는다. 경주와 언양을 잇는 도로를 사용하지 않고 삼릉에서는 형산강을 건너 고속도로 밑으로 난 샛길을 따라 달렸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것이 좋긴 하지만 도로가로 나무가 없으니 조금은 삭막하게 여겨진다.
내남초등학교 앞을 지나친다. 보리타작을 하기 위해 보리를 베어 다리 난간에 걸쳐두고 말리는 중이었다. 보리타작은 정말 고통스럽다. 탈곡기로 타작할 경우 발생하는 까끄러기가 주는 고통은 상상을 넘어선다. 오죽하면 보리옴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울산에서 내남을 지나 경주 고속철도역을 잇는 새로운 도로는 아직도 공사중이다. 그 길이 완성되면 울산과 경주 사이가 더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동네 쉼터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캔 커피를 꺼내 마셨다.
부근에 경덕왕릉이 있다는 안내표지판이 보였다. 사실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장소였기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왕릉으로 가는 길 양쪽은 모두 논이었고 논벌 끝에 그리 높지않은 산이 보였다. 욍릉은 산자락에 곱게 숨어있는듯 했다.
논한가운데 남아있는 저 언덕은 어쩌면 고분(古墳)인지 모른다. 크기나 모습이 고분같았다.
내남벌은 넓다. 어떤 사람들은 이조벌판이라고도 부르던데 예전에는 경주 최부자 집안의 소유였던 곳이다.
산자락에는 밭이 보였다. 감자와 고추가 줄을 지어 6월의 햇볕을 받으며 쑥쑥 자라고 있었다.
경덕왕은 우리나라 고유의 땅이름을 중국 한자식으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이두 표기법을 사용해서 원래 발음을 알 수 있도록 해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는 개혁정치를 추진하면서 중국 당나라 제도를 많이 도입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말에서 우리 고유어가 너무 급격하게 사라져가는 것같다. 땅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학문적인 용어도 한자나 영어를 병기하지 않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게 되었으니 큰일은 큰일이다.
밭이 끝나는데서 부터는 아주 완만한 오르막길이 솔숲 사이로 이어졌다.
산자락에는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자라고 있었다. 울진의 금강송처럼 곧게 하늘을 향해 자라지 못하고 이리저리 굽은 상태로 자라난 나무들이다. 경주 지역 소나무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듯 하다.
이윽고 왕릉이 나타났다.
왕릉의 형식으로 봐서는 삼국통일 이후에 만들어진 무덤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이 무덤이 정확하게 경덕왕릉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제법 여러 주장이 난무하는 것으로 들었다. 신라시대 무덤가운데 정확하게 누구의 것이다하는 식으로 밝혀진 것은 몇개 되지 않는다.
전면에 상석이 있고 뒤로 왕릉을 둘러싼 난간석이 보인다.
봉분을 돌로 둘렀는데 중간중간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수호석을 박아넣었다.
조각수법이 제법 정교하다.
나는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았다. 왕릉구경도 여러번을 해보았더니 이제는 대강 그 구조를 알 것 같다. 봉분을 둘러싼 판석들의 색깔이 일반적인 화강암과는 약간 다른듯 했다.
숲 어디에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솔바람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뻐꾸기 소리가 6월의 나른함을 더하게 했다.
나는 왔던 길을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산자락 한쪽에서는 장례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누구는 큰무덤을 남기고 누구는 작은 무덤을 남기고..... 커다란 무덤을 남겼다고 해서 위대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리라.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남면사무소를 향해 달렸다. 벌판을 가로질러 고속철도가 지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보리를 베어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익어버렸고 어떤 것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오래살고 덜살고 잘살고 못살고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오늘따라 유난히 맥이 빠졌다. 나는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울산 외곽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그럴 의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익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알곡은 없이 쭉정이만 가득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힘이 빠졌으리라.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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