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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부근에는 선비들이 가득하다 5

by 깜쌤 2012. 5. 24.

장서각 앞쪽에 보면 몇개의 화강암 무더기가 놓여있는데 정료대관세대라는이름이 붙어있다. 정료대는 밤에 횃불을 밝혀두던 곳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 정료대이고 관세대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관세대는 사당에 참배할때 손을 씻던 대야를 올려두던 곳이라고 하는데.....  어리석은 내눈에는 어느 것이 관세대의 흔적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장서각 동쪽, 강학당 뒤쪽 건물이 직방재와 일신재다. 일신(日新)이라는 말은 워낙 유명하니 대강 이해가 되는데 직방이라는 말은 글쎄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일신이라는 말은 '일신(日新) 일일신(日日新) 우 일신(又 日新)'이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은나라를 통치했던 탕왕의 세수대야에 새겨져 있던 말인데 대학(大學)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나날이 새롭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직방재일신재는 한몸을 지닌 건물이다. 건물의 동쪽이 일신재이고 서쪽은 직방재다. 공부를 하는 선비의 마음가짐은 나날이 새롭게 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직방재라는 말뜻은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안내서를 자세히 훑어보았더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직방이라는 말의 뜻은 곧을 직, 모 방이라는 글자그대로다. 학문을 하는 선비는 바른 자세로 학문에 정진해서 속으로는 인격이 갖추어지고 밖으로는 품행이 뒷받침되어 참선비인 선달(先達)이 되어야 하지만, 겉만 익으면 건방(乾方)이 들어 결국 건달(乾達)이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직방재라는 이름을 붙은 것이란다.

 

 

직방이라는 단어는 주역에 나온다고 한다. 주역의 괘를 풀이한 내용 가운데 곤(坤)괘 문언전(文言傳)에 '군자 경이직내 의이방외(君子敬以內 義以外)'라는 문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따온 것이란다. 참, 어렵다. 이런 어설픈 한자실력으로 젊었던 날 주역을 붙들고 읽어보았으니 그 오묘한 이치와 깊은 뜻이 알아질 리가 있었던가? 

 

 

알고보니 내가 바로 시건방이 가득 든 건달이 되고 말았다. 직방재와 일신재는 서원에서 가르침을 베풀었던 선생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신재 안쪽으로 가보면 학구재가 나타난다. 스승들의 거쳐보다 조금 뒤로 물러서 자리잡았다. 학구재는 공부를 하던 제자들의 거처였단다. 그래서 방안 구들의 높이도 스승의 거처보다 한자가량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학구재 건물의 모습이다. 학문을 구한다(찾는다)는 뜻이니 건물마다 품은 의미가 참 오묘하기만 하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의 이름은 지락재(至樂齋)다. 공부를 하면 지극한 즐거움에 이르게 된다는 말일까? 그렇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이제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알아간다는 것, 무엇에 대해 크게 깨달아간다는 것은 정말 큰 즐거움이다. 어설픈 선생 노릇을 수십년 하고 나니 늙으막에 이르러 비로소 가르치는 즐거움과 배우는 즐거움과 아이들을 다루는 요령과 수업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아주 조금이나마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깨닫기 시작하니 은퇴를 생각할 처지가 된 것이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는가보다.

 

 

나는 이런 건물을 보고있노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영역의 학문을 파고들어 평생을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서원의 규모가 작은 것이 아니다. 

 

 

뒤로 나갔더니 사료관 건물이 보였다.

 

 

소수서원과 관련있는 여러 인물들의 초상화도 보였다.

 

 

귀한 가치를 지닌 작품들도 제법 있는듯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전사청이다. 전사청은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할때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기도 하고 음식준비를 하던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서원이 사립대학이었다는 식으로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조금 부족한듯 하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다. 사립대학이라고 보는 것은 서원의 의미를 너무 부풀려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료관 뒤로 보이는 건물은 충효교육관이다.

 

 

예전 소수중학교 터에 만들었다고 한다.

 

 

교육관 앞쪽으로는 멋진 분재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관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모과나무이리라. 은근히 탐이 났다.

 

 

소나무 분재도 보였다.

 

 

영산홍도 꽃을 피웠다.

 

 

소사나무도 보였고.....

 

 

판매용 분재도 보였는데 가격이 참 착했다. 하나 구하려다가 참았다.

 

 

명자나무가 8천원이면 멋진 가격이 아니던가?

 

 

이젠 서원 구역밖으로 나갈 차례다. 참 아름다운 서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움직인 동선은 위 그림지도와 같다.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