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렴정에서 보면 맞은편에 아주 낮은 작은 언덕이 보인다. 나는 학자수(學者樹)가 우거진 솔숲 사이로 살짝 솟은 언덕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보면 담장 안쪽의 풍경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덕으로 오르면서 보니 금낭화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지금이 금낭화가 피는 계절인가보다. 젊었던 날, 영덕의 바닷가에 있던 작은 학교에 근무할때 금낭화를 처음 보았다.
소수서원의 구조는 보통 서원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아직 서원 마당안에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모양이 특이한 서원이라면 찬찬히 보는게 맞는 일이다.
담장바깥 둔덕위에 올라섰더니 안이 보였다.
나는 이런 풍경을 좋아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느낌을 풍기기 때문일까?
계곡과 정자와 서원! 더군다나 모든 건물이 한옥이니 내가 반할만도 하게 생겼다. 이제는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본다.
정문을 들어서다 말고 뒤돌아보았더니 아름드리 적송(赤松)이 하늘로 치솟은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소수서원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왼쪽을 본 모습이다.
이쪽은 오른편 앞쪽의 모습이고.... 서원 안마당이 말끔했다.
입구 담장 밑에는 모란이 피었다. 아, 그렇다. 지금은 모란이 피는 계절인 것이다.
정면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붙은 건물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서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백운동(白雲洞)이라..... 흰구름이 떠가는 곳이라는 말일까? 백운동이라는 이름은 백록동(白鹿洞)에서 따왔다고 한다. 백록동은 중국 강서성(江西省) 여산廬山) 자락에 있는 백록동(白鹿洞)서원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신재 주세붕선생이 여기에 서원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에는 이름이 백운동 서원이었다. 사진 속의 건물이 강학당(講學堂)이다. 이름 그대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백운동서원은 오늘날에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양자강 남쪽 강서성(江西省)의 성도(省都)인 남창(南昌) 부근 여산(廬山)자락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나도 가보지를 못했다. 언젠가는 가볼 생각이다. 지도에서 빨간 밑줄을 그은 곳이 강서성이다.
원래 여기는 안향(安珦)선생의 연고지이다. 회헌 안향 선생은 순흥 안씨다. 소수서원이 있는 곳이 바로 순흥이다. 안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로 알려져 있다. 유교를 치국(治國)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이었던지라 유교를 중흥시킨 주자의 학문을 들여온 안향을 기리는 것은 사대부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했으리라.
그랬기에 주세붕은 안향을 모신 서원을 만들었고 나중에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 군수로 재임할 때 조정에 글을 올려 명종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받게 됨으로서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것이다.
다음(DAUM) 국어사전에의하면 사액이라는 말은 '
나는 옆으로 돌아가보았다. 건물 안에 걸린 현판에 소수서원이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강학당 왼쪽은 문성공묘이다.
안향과 주세붕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다른 분의 이패도 더 있다. 묘(廟)는 사당을 의미한다. 무덤을 의미하는 묘(墓)와는 한자가 다르다.
문성공묘에서 강학당을 본 모습이다. 강학당 건물 속에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와 아들이었을까? 두사람의 관계를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문성공묘 앞에서 정문을 본 모습이다.
강학당 바로 뒤에 있는 건물은 직방재와 일신재다. 한건물이지만 이름은 두개나 붙어있다.
상당히 재미있는 건물이다.
강학당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지만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직방재의 서쪽은 장서각이다.
장서각(藏書閣)은 요즘 말로 하자면 도서관인 셈이다. 서원 전용 도서관쯤 될 것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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