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앞쪽 산밑으로는 구천이라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구천은 우보 부근에서 위천과 합류한다. 위천은 나중에 낙동강 본류로 흘러들어가고....
급수탑으로 가는 새길을 만들어서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했다. 좋은 아이디어다.
계단에서 슬쩍 뒤돌아보았다. 기차역 지붕이 계단 끝머리에 걸려있었다.
급수탑이 저만치 앞에서 진한 회색빛 몸뚱아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버티고 선 모양이 거인의 팔뚝같다.
철길 둑에는 강아지똥풀이 샛노란 꽃을 가득 피우고 있었다.
급수탑으로 가는 짧은 길가로 영산홍이 피고있었다.
급수탑 앞에 보이는 정자처럼 생긴 작은 구조물의 용도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쉽터 건물 정도로 생각했다.
원래 이 부근은 논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땅임자로부터 땅을 사들인 뒤 이런 식으로 조성했으리라.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법이 있다. 스토리텔링! 쉽게 말하자면 바로 "이야기"다.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 감동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면 남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법이다.
급수탑은 시커먼 콘크리트 덩어리다. 그러나 거기에는 1960년대까지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에 얽힌 향수가 숨어있다. 단순한 시멘트 구조물에 증기기관차 이야기를 곁들이면 갑자기 한단계 도약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이 부근에서 6,25전쟁때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들었다.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목숨걸고 기차를 몰았던 기관사들과 기관조사(=조수)의 이야기와 역무원들과 철로보수원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가 얽혀있는 것이다. 돌아가신 선친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자세한 사연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런 이야기를 발굴해서 널리 알리면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어 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발굴해서 멋진 소설이라도 써주면 감동은 몇배로 진하게 남는 법이다.
누구누구의 작품 어디어디에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화본역에 남아있는 급수대라고 하더라는 식으로 입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관광명소가 되는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봉평장이 그렇고 <소나기>에 등장하는 양평이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단순히 조경만 잘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야기를 덧입혀야 한다.
작은 급수탑 하나를 두고 이렇게 멋지게 꾸며놓은 군위군 관계자들에게 깊은 경의를 나타내고 싶다. 이런 것에 눈을 빨리 뜨지 못하면 맨날 남의 뒤만 따라다니게 되어 있다.
일본 중서부 츠와노 부근에서 실제 운행중인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렇게 생긴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담쟁이 넝쿨이 구조물 상부를 감싸돌고 있었다.
나는 구조물 아래에 달린 잠겨진 빗장은 굳이 열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낙서가 가득했다. 아까 위에서 스토리텔링을 이야기 했었는데 만약 이 낙서가운데 위대한 예술가의 것이나 일제강점기시대에 활동을 했던 시인이나 소설가나 독립운동가의 것이 들어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저번 글에서도 언급한바가 있듯이 화본 주위에는 제법 다양한 유적지들이 흩어져 잇다. 하다못해 개그맨 전유성씨 이야기라도 끌어오자. 예전에 산성중학교가 있던 터에는 지금 작은 추억의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전유성씨가 언급했지 않았던가?
그런데 말이다. 아쉬운게 있다. 담쟁이 넝쿨의 아랫부분이 왜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 부근조성공사를 하며 잘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한 사유가 있었겠지만 일부만이라도 남겨두었더라면 좋았을것을....
서로의 견해차이니 내 주장만 펼 수는 없겠다.
다행하게도 급수탑을 구경하는 구경꾼은 나혼자 뿐이었다. 호젓해서 좋았다는 말이다.
나는 다시 역으로 나가기로 했다. 사실 말이지 안나가고 배기랴?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 플랫폼으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기차 승강장에 와서 구경하기로 한다.
코레일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 역이름을 적은 이름판도 예쁘게 바뀌었다. 그게 벌써 얼마전 일이던가?
옛날에는 그렇게 세련된 모습이 아니었다.
이렇게 정비를 해놓으니 작은 기차역이지만 한두시간 정도는 충분히 머물 수 있겠다.
"강아지똥풀"을 측백나무 밑에서 찾아냈다. 이제는 작고하신 권정생 선생이 쓰신 동화에 "강아지똥"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이 있다. 권정생 선생은 중앙선 안동부근의 운산근처에 사셨다. 선생이 인생의 후반부를 보낸 집을 찾아가려면 운산역에 내려서 찾아가야겠지만 이제는 운산역도 간이역이 되어버렸다.
만약 운산역을 리모델링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싶다면 권정생 선생의 삶과 일화만 끌어들여도 멋진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몽실언니> 이야기만 잘 엮어서 우려먹어도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역대합실을 나온 나는 화본마을 구경을 하기로 했다. 오늘따라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가 약 30분 가량 늦는단다. 이런 복이 다 있는가 싶다. 기차를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거나 타고 이미 타고 계신 분들께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역무원에게 기차연착시간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난 뒤 나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로를 따라 난 담장에 그려진 이 인물은 누가봐도 일연스님이 아닐까 싶다. 부근에 있는 인각사에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예전에 기차역앞의 가게는 명당중의 명당이었다. 특히 명절때는 제사용 청주를 밖에 수북히 쌓아두고 팔기도 했었다.
이제 그런 좋던 시절은 다 가버렸다. 독일처럼 지방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아진다면 그런 날이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최근들어 늘어나는 관광객 덕분에 역앞에는 밥집이 다시 생겼다.
마을은 아주 단촐하다. 도로를 따라 집들이 들어서있고 간단한 행정시설이 몇군데 있는 정도다.
"어묵, 구운 계란 있습니다"는 정도의 뜻이리라. 구운 계란은 어떤 계란일까?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하나 구해서 먹어볼 시간까지는 없는듯해서 포기하고 그냥 마을 구경만 하기로 했다.
요즘은 어지간히 알려졌다 싶으면 벽화를 그려놓은 동네가 제법 있지만 그래도 안그려놓은 마을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엔 인기척이 드물었다. 나는 무엇보다 거리가 깨끗해서 좋았다. 요즘은 시골동네가 도시보다 더 깨끗한 것 같다. 내가 사는 경주의 도심거리를 보면 없던 정까지도 그만 뚝 떨어지고 만다.
쓰레기하나, 휴지하나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보기좋은가 말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동네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의 어느 산골 작은 마을에 와있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부근에 화본교회가 보였다.
교회마당에는 목사관 물건이지 싶은 장독대가 보였다. 정겨움이 가득하다.
에배당 건물 옆에는 텃밭까지 보였다. 화본역에서 보면 종탑에 걸린 종조차도 낭만적으로 여기진다.
나는 다시 기차역을 향해 걸었다. 발걸음을 빨리했다.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를 놓치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내 느낌은 정확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가 도착하고 있었으니까...... 화본역에 한번 가보고자 하는 분을 위해 지도를 첨부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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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의 화본역 모습이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어서 시골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내려가는 길에 들러본 화본역이었다. 오후에는 다른 행사가 있어서 경주로 빨리 내려가야만 했기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부근 기차역으로 급히 갔던 것이다.
어머니가 계신 곳에는 이젠 무궁화호 기차도 서지 않는다. 작은 동네지만 기차가 선다고 하는 것 그자체가 이젠 복이다. 그렇게 한나절이 갔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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