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화본 기차역에서 정거장의 미래를 보다 1

by 깜쌤 2012. 5. 7.

 

"기차역이 다 그렇지. 뭐 볼게 있다고." 그런 식의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한 분이라면 일단 화본(花本)을 가보기 바란다. 화본은 이름부터 예쁘다. 중앙선에 있는 기차역인데 의성과 영천 중간쯤에 있다고 보면 된다.  

 

 

기차역이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이제는 제법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사실 말이지 햇볕 화창한 봄날에는 나들이 하기에 아주 멋진 곳이다. 처음부터 기차역이 예뻤던 것은 아니다. 증기기관차가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던 시절, 화본역에서 중간 급수를 했다.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잘 활용해서 역주변을 아름답게 가꾸어 두었다. 

 

 

대합실 안도 제법 깔끔했다. 얼마 안되는 크기지만 확실히 가꾸기 나름이란 것을 느낀다.

 

 

추억을 되살리는 사진자료를 모아서 게시해두었다. 나는 사진 속의 역사를 찾아가본다.

 

 

기차와 버스가 유일한 이동수단이던 시절, 그때는 장날만 되면 기차역 플랫폼은 장꾼으로 미어터졌다. 전문적인 장꾼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당시는 서민들 모두가 다 장꾼이었다. 텃밭에서 난 작은 남새라도 바리바리 싸들고 대처(大處)시장을 향해 팔러나섰다. 화본 사람들에게 대처의 장이라고하면 그것은 주로 영천장을 의미했다.  

 

 

명절때면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는 다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영천은 돔배기로 유명한 곳이다. 제사상에 그 귀한 돔배기(상어고기) 한토막이라도 올려 놓으려면 푸성귀를 가득 싸들고 영천이나 우보나 의성으로 나가야했던 곳이다.

 

 

그때는 기차역마다 일곱여덟명 정도는 보통으로 근무했다. 하루 근무하면 다음날 하루를 쉬는 식으로 일했다. 플랫폼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아주 귀한 시설물이 보인다. 기차가 통과하기 전에 선로를 바꾸던 저 시설물을 뭐라고 했더라? 

 

 

3등열차를 타기 위해서 장날마다 전쟁을 했던 날들이 어제일 같지만 이젠 다 역사의 한장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사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금 세대들이야 그런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어찌 생각해낼 수 있으랴?

 

 

추운 겨울날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 들어서면 냉기만 가득했었다. 어쩌다가 난로가 피워져 있었던 날들은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다.

 

 

19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지나면서 그런 모습들이 서서히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대합실 안은 20세기였지만 밖은 21세기였다.

 

 

시골 대합실 역의 구조는 거의 비슷했다. 기차통학을 오래했던 나는 이런 대합실 안에서 얼마나 오래동안 서성거렸던가?

 

 

역마당을 깔끔하게 포장했다. 저 앞쪽으로 도로가 지나간다. 봉림과 우보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다. 의흥으로 연결되는 길도 있다.

 

 

다른 글에서 쓴 적이 있지만 역구내 한편에는 소화물 취급소가 있었다. 그쪽 공간도 깔끔하게 정리를 해서 관광객들이 쉬다가 갈 수 있도록 해두었다.

 

 

역건물을 참 예쁘게 색칠했다. 지금 화본역에는 무궁화호 기차가 선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와 부전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기차가 이 역에 선다. 동대구나 안동에서 출발한 기차도 서지 싶다. 그것까지는 확인을 못해보았다.

 

 

모든 기차역이 다 이렇게 고왔으면 좋겠다. 오른쪽 건물은 화장실이다.

 

 

한때 여기는 우보역보다 이용승객도 적었고 교통이 불편했었다. 우보는 대구로 가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지만 여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로 나가려면 우보를 거치는게 필수였다.

 

 

그런데 교통이 편리했던 우보역은 무궁화호 기차가 서지 않으면서 간이역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화본역은 멋진 관광지로서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세상은 요지경'이고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정말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제 화본역은 알음알음으로 몰려 들어오는 관광객들로 인해 동네 경기가 슬금슬금 살아나는 중이다.  

 

 

유모차를 밀고 대합실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개조해두었다.

 

 

이 글 첫머리에 사진으로 소개해드린 대합실은 건물의 오른쪽 부분이다. 왼쪽부분은 역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해당된다.

 

 

역마당 끝머리에는 구멍가게와 식당이 자리잡았다. 보통 역앞에 있는 가게의 이름은 역전상회였는데.....

 

 

화본역 구내에는 열차카페도 있다. 물론 진짜 기차로 만든 것이다.

 

 

커다란 나무 밑에는 가족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멋진 테이블 겸용 의자를 설치해두었다.

 

 

역마다 간직한 사연을 바탕으로 해서 시를 지어 새긴 시비가 보였다.

 

 

군위군에는 세군데에 기차역이 있었다. 봉림역과 화본역, 그리고 우보역이었는데 이제는 화본역 하나만 살아남았다. 어떤 이들의 글에 보면 화본역이 의성군에 있는 것처럼 소개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정보다.

 

 

무슨꽃이 그리도 많았길래 기차역 이름조차 화본이 되었을까? 행정구역명은 산성면인데....  이 동네에 살았던 친구 한두명의 이름이 기억난다. 기차 통학을 하며 알게 된 얼굴들이지만 이젠 모습조차 까맣게 잊어먹었다.  

 

 

기차역 앞쪽 산밑으로는 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개울이 있다. 역광장에는 꼬맹이들이 놀이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아이들 노는 모습은 언제봐도 귀엽다. 저 아이들은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이렇게 잘 사는 것으로만 알 것이다. 지지리도 못살고 가난했던 시절이 바로 한세대 앞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될지 모르겠다.    

 

 

 

 

위 그림지도를 크게 보고 싶으면 클릭하면 된다. 기차역과 마을부근을 자세하게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번에 소천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가 군위군 용대리에 있다. 화본역에서는 약간 멀다. 자동차를 가진 분일 경우 이십분 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하다.

 

 

 

 

군위군의 유적지와 명승지를 나타낸 그림지도를 크게 보고 싶다면 클릭하면 된다. 김수환 추기경 생가는 군위읍 소재지 부근에 있다고 보면 된다.

 

 

군위군의 명소를 몇군데 소개해 두었다. 군위 삼존석굴은 제법 유명한 곳이다.

 

 

한밤은 이름그대로 큰 밤(먹는 밤)을 의미한다. 팔공산 밑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인데 예전에는 오지로 쳤던 곳이다. 한밤을 한자로 쓰면 대율(大栗)이 된다.

 

 

고려 시대의 중이었던 일연이 머무르며 삼국유사를 기록했다는 인각사도 부근에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이라면 한번 찾아가보는 것도 괜찮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신나는 석산리 약바람 산촌생태마을도 인각사 부근에 있다.

 

 

그림지도를 잘보면 인각사와 석산리의 위치가 한눈에 드러난다.

 

 

나는 열차카페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열차카페에서 커피라도 한잔 사와서는 야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글에 계속....)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