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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빼앗긴 들에도 이제는 봄이 왔다 1

by 깜쌤 2012. 3. 10.

 

형이 독립운동가로서 중화민국 육군 중장을 지냈고 형수는 중화민국 공군대령을 지냈다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런데 아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위원을 지냈던 이상백 박사라는 분이다. 이 정도면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 출신이 아니던가? 

 

 

올해 2012년은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다. 런던 하계 올림픽은 1948년 7월에도 열린 사실이 있고 그때 우리나라는 복싱에서 플라이급의 한수안 선수가 동메달을, 역도에서는 미들급의 김성집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역사에 조금만 눈이 밝은 분이라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1948년 8월 15일의 일인데 나라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어떻게 올림픽 참가가 가능했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때 올림픽 참가를 가능케 해준 분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분의 아우가 되는 우리나라 체육계의 선구자인 이상백 박사인 것이다.

 

 

이상백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 사학의 명문이었던 와세다대학을 다니면서 농구부 주장을 했던 분이다. 농구부 주장의 자격으로 선수단을 구성해서 대학팀과의 경기를 위해 미국까지 다녀올 정도였다면 그분은 정말 대단한 인재였던것이 틀림없다.

 

그럴 정도의 인물이었으니 이상백 박사가 앞장서서 정부 수립전에 벌써 대한 올림픽위원회(KOC)를 조직하고 동시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도 가입신청을 해서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올림픽에 참가해서 메달까지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형과 아우가 그정도의 인물이라면 중간에 끼인 그분도 훌륭했던 분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그런 형과 아우를 둔 분이라면 과연 누구겠는가? 지도를 세밀하게 살펴보신 분은 문제에 대한 정답을 이미 파악해두었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 갔다. 현대백화점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옥상에 올라가 시가지를 내려다보다가 부근에 있는 선생댁을 찾아가보기로 하고 백화점 옥상을 내려왔다.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명사의 자택을 찾아가본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있던 일이던가?

 

 

 

오늘 내가 보아두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집이다. 그는 시인이셨다. 이 시인의 친구가 빙허 현진건 선생인데 두 분은 같은 날에 돌아가셨다. 1943년 4월 25일의 일이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시로 유명한 고월(古月) 이장희(李章熙)선생도 친구였다고 전해진다.

 

나도 한때는 이 시를 좋아해서 외워두려고 노력도 했었지만 결국 제목을 기억하는 것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마침 내가 찾아간 날이 봄기운이 가득한 봄날이었으니 우선 이장희 선생의 시부터 소개해보기로 하자.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이 장 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담장 너머로 현진건과 이장희 같은 분을 친구로 두었던 선생의 고택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자, 과연 이 집의 주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정답은 아주 간단하다. 이씨 성을 가진 분이시고 대구 출신의 시인이다. 그래도 아리송하다면 그 분의 대표작 시 한편을 소개한다. 그 정도만 하면 누구라도 정답을 알게될 것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상화(尙火) 이상화(李相和)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맛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를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넘어 아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 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데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인용한 시의 출처 : <필독 한국대표명시선>, 성림출판사, 1992

 

 

그렇다. 나는 지금 이상화 선생의 고택을 찾아보는 중이다. 그는 저항시인이었고 애국시인이었다. 그의 단아한 인품만큼이나 사시던 집도 정갈했던 것이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담장 쪽으로는 이상화 시인의 대표작을 화강암에 새긴 시비(詩碑)가 보인다.  한편은 <역천(逆天)>, 그리고 또 한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였던 것이다.

 

 

모두 3개의 화강암 시비가 담장을 따라 놓여있었다.

 

 

담장과 기와집 사이로는 장독대가 자리잡았다.

 

 

맞은편에 대문이 보인다. 선생의 집은 규모가 큰 집이 아니었다.

 

 

나들이를 나온 여학생 둘이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상화선생의 고택이 이렇게나마 보존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던가?

 

 

큰방앞에는 마루를 달았고 창문을 덧대서 겨울철에는 온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부엌도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주택으로는 그래도 깔끔하게 잘 지은 것 같았다.

 

 

방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마당에 서서 안을 기웃거렸을 뿐이다. 선생의 후손이 살던 세간살이도 같이 보이는듯 했다.

 

 

나는 세간살이와 간단한 가구를 보며 험한 시대를 살아오신 선생이 겪은 거칠고 우악스런 역사의 흐름을 느꼈다.

 

 

선생의 삶이 이루어졌던 당시와 비교해보면 우리는 정말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左)이니 우(右)이니, 진보니 보수니 해가며 편을 갈라 싸우는 정치인들이나 거기에 편승한 사람들의 경거망동하는 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역겨움을 느낄 뿐이다. 부근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서상돈씨의 고택도 함께 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