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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간이역에서 추억주머니를 열었다 - 우보역

by 깜쌤 2012. 2. 25.

 

간이역에 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두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무궁화호 열차 정도도 서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시골 기차역이라면 간이역이라고 불러도 되지않을까 하고 여깁니다.  

 

 

한때는 일여덟명 정도의 역무원이 근무했던 시골역들이지만 이제는 거의다 어지간하면 간이역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시골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줄어들어버렸으니 이용객 수가 격감하였고 결국 나라에서는 경비 절감 차원에서 하나씩 폐쇄시켜버리는 절차를 밟아나가기에 간이역이 증가하는가 봅니다.  

 

 

우보역을 가보았습니다. 중앙선에 있는 작은 기차역인데 영천과 의성 사이의 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면 더 자세하게 이치를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관광지가 있는 곳도 아니어서 손님들이 모여들만한 이유가 없는 곳입니다만 돌아가신 선친께서 부근에서 일을 하셨기에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추석명절이 되면 사람들로 바글거렸던 플랫폼에도 이제는 인적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기차역이라고 하는 곳이 거의 다 비슷한 풍경을 지니고 있기에 그 어떤 특별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합실로 드나드는 문도 굳게 잠겨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택배사업 비슷한 것을 예전에는 기차역 부근의 화물 취급소에서도 취급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대한통운이라는 회사가 기차를 이용한 화물운송업을 했던 것으로 압니다.

 

 

동그라미 속에 마름모꼴 모양의 네모가 들어있는 상표를 가지고 있었던 회사입니다.

 

 

화물칸에 가득 싣고온 비료도 내리고 조금 무게가 나가는 화물들도 부치고 찾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다 문을 닫았습니다. 나도 몇번 이용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땀흘려 농사지으신 쌀도 가마니째로 도시로 부치고 깨도 부치고 간단한 살림살이도 부치고 했었습니다.

  

 

대처(大處)로 나간 친구를 기다리기도 했고 병원에 다니러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기도 했던 대합실이었지만 이제는 들어가볼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역무원들이 2교대로 근무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차가 바로 이웃역을 출발하게 되면 발차라는 신호가 역사무실로 오게 되고 그러면 역무원이 둥근 동테를 가지고 플랫폼에 나와 키높이 정도로 세워놓은 기둥에 꽂아두었습니다. 그러고나면 기관조사가 기관차 난간에 나와서 채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기차역에 서지않고 바로 통과하던 급행열차나 화물열차는 기관조사가 목숨을 걸고 채어가던 모습이 항상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친구와 제자 가운데는 기관조사를 거쳐서 열차기관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 곳이나 다 가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왜 그렇게 부러웠던지......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없는 지금에서야 나는 간이역을 찾아와서 추억을 하나하나씩 꺼내보았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러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칸을 반으로 잘라 역무원용과 승객용으로 구별하여 사용했던 화장실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화장실 벽에 장난끼 넘치는 야한 낙서들이 연필로 마구 휘갈겨져 있었습니다.

 

 

비록 간이역이지만 물건들을 얼마나 단정하게 정리해두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선로 보수작업을 하는 분들은 아직도 남아서 이 공간을 돌아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자주 여기를 드나드셨습니다. 공간 어디에도 아버지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었기에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살아온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인생이라는게 그런가 봅니다.

 

 

나도 이제는 인생살이를 하나씩 정리해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햇살이 잘 들지않는 그늘에는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엔가 쫒기듯이  내 그림자를 밟으며 간이역 건물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