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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6

by 깜쌤 2012. 1. 16.

 

태산의 정상부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돌아보면 도교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물론 불교의 절도 군데군데 있다. 천가(天街) 끝머리에 있는 대표적인 도교사원이 벽하사란 도관이다.

 

 

벽하사를 오르는 계단길에서 뒤를 돌아다 보았더니 천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장관이다.

 

 

다른쪽에는 호텔같은 시설들도 보인다.

 

 

이제 계단을 올라 서신문(西神門)을 통과하면 왼쪽으로 벽하사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파란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도사를 따라가보았다.

 

 

마침내 서신문 안으로 들어섰다. 태산에는 이런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시장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도교사원이 보였다.

 

 

벽하사(碧霞祠)라는 곳이다. 벽하사는 옥황상제의 딸이라는 벽하신군을 모셨다고 한다. 그녀는 태산을 지키는 지킴이란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전설이고 신화이고 이야기며 사실인지 구별이 안된다.

 

 

벽하사에는 무엇인가를 비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빨간색 천에는 종이들이 끼워져 있다. 아마 소원을 적은 종이이리라.

 

 

중국인들이 간절히 빌고자 하는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자손번창과 자신이 하는 사업의 번성과 축재(蓄財)나 당대발복(當代發福) 뭐 이런 종류들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보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어쩌면 변치않는 사랑의 맹세같은 것도 있을 수 있겠다.

 

 

종교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면 그 방법도 쉽긴하다. 사이비 종교가 왜 생겨나겠는가? 나는 지금 어느 종교를 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해없기 바란다.

 

 

워낙 시끄럽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그런지 나는 이런 장소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여기에서도 돈을 내고 빌고 있었다.

 

 

젊은이고 늙은이고 구별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도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서 빌기도 했다.

 

 

참, 대단한 곳이다. 속세도 이런 속세가 있는가 싶다.

 

 

산에 오른 어떤 이들은 길가에서 음식을 꺼내놓고 먹기도 했다.

 

 

도사님은 또 어디로 가는 길일까?

 

 

도관에서는 기념품도 팔고 있었다. 도사들은 도를 언제 닦는 것일까?

 

 

벽하사 맞은편 기슭에 자리잡은 건물에서는 향촉을 태우고 있었다.

 

 

향을 태우면서 나오는 연기가 산자락을 덮으면서 인근의 공기조차도 매캐하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나는 도교(道敎 Taoism)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사실 중국인들에게 도교는 생활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교에 불교가 혼합되면서 중국인 특유의 사고방식이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생활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리라.

 

 

벽하사를 나온 우리들은 다시 옥황정을 향해 계단길을 따라 걸었다.

 

 

계단을 오르면 이번에는 무엇이 나타날까?

 

 

대관봉(大觀峰)이었다. 벽면 한가득 새겨진 글씨들이 서예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곳이다.  

 

 

별별 서체가 다 보였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사람 눈을 끄는 것은 황금색으로 새겨진 글씨인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간자에 익숙한 중국인들이 저 글자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내랴?

 

 

 

이 안내판에 틀린 글씨가 있다. 찾아낼 수 있다면 한자 솜씨가 보통 이상은 되는 분이다. 大觀峰 대관봉이라고 써놓은 바로 밑의 문장을 옮겨 보도록 하자. 형편상 번자로 옮긴다.  

 

大觀峰 又名 唐摩崖 上有唐開元十四年(726) 玄宗御書 紀泰山銘, 거기까지만 보자. "대관봉 우명 당마 상유당개원14년(726년) 현종어서 기태산명"이다. 그러면 어디가 틀린 것인지 알아차리리라. 개원(開元)은 양귀비와의 염문으로 유명한 현종때 사용했던 연호이니 어느 시대 누가 글을 남긴 것인지 쉽게 짐작하리라. 

 

 

당 현종도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자기 스스로를 명군(明君)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한자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한번 도전해서 해석해보기 바란다. 높이는 약 13.3미터 정도, 글자수는 1천여자 정도가 된다나 어쨌다나?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