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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태안에는 대묘가 있다 5

by 깜쌤 2011. 12. 31.

천하귀인(天下歸仁)이라는 멋진 글씨가 달린 안인문(安仁門) 문턱에 영감님 한분이 걸터앉아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한자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이런 글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데 좀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한자를 모르고서는 우리가 매일 쓰는 말조차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말 단어의 70% 정도가 한자말이라는 사실을 알면 한자 공부를 게을리 할 수가 없을텐데.....

 

 

 

너무 오래 살아그런지 이제는 말라 비틀어져 죽어버린 고목 기둥이 세월이 감긴채로 멈춰버린듯한 멋진 아름다움을 선사해주었다.

 

 

분재로 치자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사리 정도에 해당되겠지만 죽어버렸으니 너무 아깝다. 왼쪽으로 비틀어 올라가며 자란 모습이 신비스럽도록 아름답다. 자연물의 기막힌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좌대 위에 올려놓은 기암괴석을 사람들이 얼마나 문질러대었는지 반잘반질하게 윤이 났다.

 

 

돌에다가 손을 대고 한바퀴를 도는데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이제 대묘의 중심건물인 송천황전으로 올라가본다.

 

 

이 천황전(天貺殿) 건물은 송나라 시대때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송천황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貺이라는 글자는 평소에 만나보기가 조금 어렵다. 소리는 으로 나고 '주다' 혹은 '하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이다.

 

 

송천황전은 대묘를 방문한 황제들이 나라일을 보던 곳이라고 한다. 분향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는 무엇인가를 빌고 있었다.

 

 

이 정도면 향을 피우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횃불을 만들어 태우는 정도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게 싫어서 대강 훑어보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송천황전에는 국보급의 벽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내가 그 꼴이 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후문(後門)이었다. 후문은 북쪽으로 나있으니 북문인 셈이다.

 

 

대묘의 크기는 엄청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따지기 좋아하는 단위로 치자면 3만2천여평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후문으로 다가갔다.

 

 

후문 부근 좌우로는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대묘에서 못본 것 가운데 하나가 동정(銅亭)이다. 구리로 만들었다는 정자 말이다. 원래는 태산에 있었는데 이자성의 난때 폭도의 무리가 산에서 가지고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금으로 만든 것으로 착각했대나?

 

 

분재원에는 이따가 들어가보기로 하고 일단 성벽 위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이미 구경을 다하고 내려오는 사람도 제법 보였다.

 

 

성벽에 올랐더니 성벽 위에 통로가 좌우로 쭈욱 뻗어있고 폭도 제법 넓어서 사람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후문 너머로 뻗은 도로 끝머리에 태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도로를 쭈욱 따라가면 태산 등반로의 입구가 되는 모양이다.

 

 

이제 거의 감을 잡았다. 태산과 대묘의 상관관계를 말이다.

 

 

돌아보았더니 송천황전 건물이 보였다.

 

 

 

한쪽은 분재원이다.

 

 

북문 바로 위에 서니 태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바르게 보였다.

 

 

시가지가 낮춤해서 보기 좋았다.

 

 

성벽 위 물항아리에도 동전이 보였다. 돈을 밝히는 중국인들이 절대 그냥 넣지는 않았으리라. 무엇을 빌어도 빌었을 것이다.

 

 

나는 반대편으로 내려왔다.

 

 

 

성벽으로 오르는 길이 계단이 아니고 그냥 경사로라니 놀라운 일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