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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맹자의 고향을 찾아나서다 6

by 깜쌤 2011. 11. 25.

 

아성전으로 오르는 계단위에는 향로가 놓여져 있고 향이 타고 있었다. 

 

 

향로 앞에는 참배자가 절을 할 수 있도록 방석이 깔려 있었다.

 

 

복을 비는 뜻에서 달아놓은 빨간 패도 보였다.

 

 

건물 안에는 아성(亞聖)으로 추앙받는 맹자상이 보였다. 어찌보니 도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구슬같은 것이 치렁치렁하게 달린 관을 쓰고 앉아있는 자세가 성인이라기보다 왕이나 황제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성전에서 맹자상을 보고 난 뒤 뒤를 돌아다보았다. 우리가 걸어들어온 문들이 보였다.

 

 

곧게 뻗은 나무와 잘 배치된 건물들이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듯이 보였다.

 

 

중국인들은 향을 하나 태워도 큰 것을 골라 바치는 것 같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가는 모양의 향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어린아이 키만한 것도 보였다. 꼭 커야만 좋은 것일까?

 

 

아성전 뒤로 돌아가보았다.

 

 

침전(寢殿)인 모양이다.

 

 

아성전 뒷면의 팔각기둥들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침전 앞에서 자라고 있는 이 나무는 송나라 시대부터 자라온 것인가 보다.

 

 

송나라때 맹묘를 다시 고쳐 만들면서 심은 것이라면 참으로 오래된 나무임에 틀림없다.

 

 

침전을 보고난 뒤에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갔다. 한쪽 구석에 맹자와 관련이 있는 여러 전시물들을 진열해두고 있었다.

 

 

볼만한 자료들이 제법 많았다.

 

 

맹자상이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청나라때부터 소장된 작품일까?

 

 

추성현의  지도도 보였다. 이 문은 버스를 타고 올때 본 바로 그 문같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교육을 위해 세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와 연관된 자료들이다.

 

 

맹모삼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나 생각해낼 수 있는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한때 공자와 맹자가 배척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는게 확실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맹의 가르침을 이리저리 왜곡했던 것이 역사의 진실 아니었던가? 

 

 

송나라시대부터 이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나무들은 그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침전에서 바라본 아성전의 뒷모습이다. 고태미(古態美)가 가득했다.

 

 

이제 우리들도 돌아나갈 차례다.

 

 

참배를 하러 온 중국 아이들이 무척 행복해보였다.

 

 

지붕위에는 오동나무 어린 싹이 터를 잡았다. 아성전 지붕위를 생존공간으로 잡았으니 안목도 뛰어난 녀석들이다.

 

 

맹묘(盟廟)는 결코 작은 공간이 아니었다.  볼것도 군데군데 제법 많았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