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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맹자의 고향을 찾아나서다 4

by 깜쌤 2011. 11. 21.

 

맹가(孟軻)는 기원전 372경에 추나라에서 태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인에게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사망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등장한다.

 

사기에는 공자도 등장한다. 중니제자열전(仲尼第子列傳)이라는 열전편에 등장하는 것이다. '해는 지고 갈길은 멀다'라는 의미를 지닌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고사로 유명한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뒤에 이어져 나온다. 사기에 등장하는 공자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중니제자열전이 나오고 나서 한참 뒤에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이 나오는데 거기에 맹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맹자에 대한 언급은 아주 간단하다. 대강 이 정도다. 아래에 연한 파란색으로 쓴 부분이다.

 

출처는 김형수님과 최인욱님이 번역을 하고 동시에 해석을 달았던 1975년판 그레이트북스사에서 출간한 사기 1권이다. 

 

"맹가는 추나라 사람이다. 자사(子思)의 문인(門人)에 나아가 배웠다. 제나라 선(宣)왕을 섬기려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양(梁)나라로 갔다. 양나라 혜(惠)왕은 맹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를 인견해보니 하는 말들이 의미가 너무 멀어서 현실 사정에 어둡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秦)나라는 상군(=商君, 商鞅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에 힘썼고 초(楚)나라와 위(魏)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싸움에 이기어 적을 꺾고 제의 선왕은 손자(孫子, 孫臏 손빈) 전기(田忌) 등을 등용하여 제후를 동쪽으로 향하여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연횡(-)에 미쳐날뛰어 싸움하고 치는 것을 현명한 일로 안 시대였다.

 

 DAUM국어사전에서는 바로 위에서언급한 두사람 상군과 손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군(=상앙) : [인명] 중국 진(秦)나라의 정치가(?B.C.~B.C.338). 효공(孝公) 밑에서 법제, 전제(田制), 세제 따위를 크게 개혁하여 진 제국 성립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효공 22년(B.C.340) 상(商)에 봉함을 받았다.

 

손자 : 중국 전국 시대 제나라의 무장(?~?). 기원전 367년경 위나라 군사와 싸워 크게 이기고, 기원전 353년에 조나라를 도와 위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

 

 

그런데 맹가는 (唐 = 堯 요) (舜) 삼대(夏 殷 周 하 은 주) 제왕(帝王)의 덕(德)을 부르짖어 시세의 요구에 멀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말을 하여도 용납되지 않았다. 물러와서 제자 만장(萬章)들과 시경(詩經) 서경(書經)을 강술하고 중니(仲尼 공자)의 뜻한 바를 펴서 맹자(孟子) 7 지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맹자순경열전에서 맹자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이 정도로 끝나고 만다. 이 정도라면 자료가 너무 빈약하다. 나는 할 수없이 백과사전을 꺼내서 찾아보았다.

 

 

영성문을 지나 좌우로 서있는 계왕성(繼往聖) 개래학(開來學) 현판이 붙어있는 작은 건물을 보고나서 안으로 더 들어가면 다시 한번 더 새로운 숲이 나타나는데 그곳에도 측백나무 같은 나무들이 가득 심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돌을 잘라서 깐 바닥에는 이끼들이 제법 묻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닥이 약간 미끄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가 많이 오는 곳이어서 이끼같은 식물들이 잘 자라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튼 전체적인 분위기는 약간 축축하고 칙칙하다는 것이었다.

 

 

한가운데로 난 길 옆으로 종이 보였다. 어떤 종일까 싶어서 찾아가 보았다.

 

 

금나라때 만든 종인가보다.

 

 

금대철종(金代鐵鐘)이라고만 전해질뿐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다.

 

 

바닥 곳곳에 이끼가 잔득 묻어있었다.

 

 

그래서그런지 고풍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문을 들어서면 이제 진짜 맹묘에 온 것이 될 것이다.

 

 

푸른색 위주의 단청이 제법 아름다웠다.

 

 

나는 내가 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우리는 두번째 구역을 보는 중이다.

 

 

맹묘고수(孟廟古樹)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맹묘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현재 이 구역안에만도 약 370여주 정도의 나무들이 있는데 송나라 시대 때부터 심어져 자라온 것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고려시대때 심은 나무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 나무들 나이가 적으면 700살에서 많으면 800살이 된다는 이야기다.

 

 

맹묘를 보고 섰을때 두번째 구역 중앙로 오른쪽에 강희비정(康熙碑亭)이 자리잡고 있다. 강희제는 청나라의 황제 이름(시호)이다.

 

 

나중에 황제에 오른 건륭제(지금 이야기하는 강희제가 아니다)는 공자를 존경한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니 맹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도 남달랐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강희제의 글씨가 새겨진 비석을 보관하는 작은 정자건물(碑亭 비정)로 다가가는 중이다.

 

 

비석을 보관한 건물을 비정(碑亭)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석은 거북등에 올려져 있지만 중국은 다른 것 같다. 비석을 등에 얹고 있는 이 짐승은 상상속에 등장하는 존재가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용이라고도 하지만 용이라고치면 여의주 정도는 입에 물고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중국을 다스린 황제의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니 규모도 제법 크다.

 

 

 정면에서 보면 혓보닥은 보이지만 여의주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 용은 지폐와 동전도 물고 사는 모양이다.

 

 

 별걸 가지고 다 복을 비는 세상이니 이해는 하지만 글쎄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비석에 새겨진 글은 잘 모르겠다. 내가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해석할 정도의 실력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희비정을 보고 난 뒤 고개를 돌렸더니 다른 비석이 보였다. 그 중에 하나가 내 시선을 확 끌었는데.....

 

 

한쪽 가에 서있는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맹모단기(孟母斷機)! 맹자의 어머니가,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돌아온 아들 맹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천을 짜고있던 베틀에 건 실을 끊었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짜고 있던 천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아니던가? 맹가(孟軻)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준 장소가 아마도 이 부근 어디인 모양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맹자(孟子)의 어머니는 정말 보통이 넘었던 분 같다. 다른 비석에는 맹자의 모습도 새겨져 있었다.

 

 

맹모단기라는 말은 유 향(劉 向)이라는 사람이 남긴 열녀전(傳)에 나온다고 한다. 유 향은 전한(前漢) 시대의 학자이다.

 

 

강희비정을 보고나서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승성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갈 차례다.

 

 

문을 들어서기 전에 지금까지 스쳐온 곳을 돌아보았다.

 

 

승성문(承聖門) 너머 안쪽에도 웅장한 측백나무들이 하늘로 솟아올라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승성문! 성인의 뒤를 잇는다는 뜻이리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