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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맹자의 고향을 찾아나서다 5

by 깜쌤 2011. 11. 24.

 

(亞)라는 글자가 있다. '버금 아'자(字)이다. 다음(DAUM) 국어사전에는 '으뜸의 바로 아래. 또는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라는 의미로 규정해놓았다. 갑자기 뜬금없이 아(亞)라는 글자 이야기를 꺼내들었으니 황당해 할 분도 있겠지만 이 글자의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면 오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 우리는 아성전(亞聖殿)이라는 건물로 다가가는 중이다. 아성전은 맹묘의 핵심건물이다.

 

 

아성전 앞뜰에도 측백과 편백같은 고목들이 즐비하다.

 

 

하늘로 쭉 뻗어올라간 나무들을 보고만 있어도 시대의 흐름에 굴하지 않았던 옛 성인의 기개를 보는것 같아서 마음이 든든해진다. 아성전 앞뜰에도 비정(碑亭)이 하나 보였다.

 

 

비정 지붕위에는 황금색 기와가 얹혀져 있었다.

 

 

천진정(天震井)이라는 우물이 보였다. 그 유명한 맹자의 '우물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일단 맹자과 우물 사이에 얽힌 이야기부터 확인해보자.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性善說)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지만 나쁜 환경이나 물욕(物慾)으로 인해 나쁘게 변하게 된다는 학설'이 바로 성선설이다.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과는 비교가 되는 학설이다.

 

맹자가 살고 있었던 마을에 악한 행실로 소문난 살인자가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고 싶었던 맹자는 우물 곁에 어린 아기를 놀게하고 악한 행실로 유명한 살인자가 그 부근으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본성이 악하다면 우물가에 놀고 있는 아기를 그냥 지나쳐 갈 것이고 착한 것이 본성이라면 아기를 우물가로부터 떼어놓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그 살인자가 아이를 우물로부터 떼어 놓는 것으로 끝났다.

 

맹자가 살던 당시의 우물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우물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우물가에서 논다는 것은 우물에 빠져죽을 위험을 자초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자기의 생각과 평소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던 계자를 찾아가서 자기의 실험결과를 이야기한다. 계자는 맹자의 이야기를 듣더니 다른 주장을 펼쳐낸다.

 

여기에서 그 이야기를 다 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생략하지만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계자의 사상을 정리하여 성악설을 주장한 이가 바로 이고......

 

맹묘 바로 옆에 맹부가 있다. 맹부는 맹자가 살던 집터라고 보면 된다. 이 우물이 바로 그 우물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맹자와 우물에 얽힌 이야기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맹묘에는 천진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청나라의 강희제와 관련이 있다. 비문에 따르면, 청나라 강희제 11년, 어느 봄날에 아성전에서 연회를 열었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이 떨어진 뜰 앞에 둥근 웅덩이가 패이고 곧 샘물이 솟았다고 해서 천진정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맹자가 아성(亞聖)이라고 불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성이라고 했으니 성인인 공자에 버금간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아시아의 성인이라는 식으로 확대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서 사단(四端)이라는 이론을 펼쳐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맹자는 사람들의 기본 심성을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가지로 주장하였다. 

 

 

(仁)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의미하는데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義)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가리키는데 옳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禮)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의미하는데 겸손히 남에게 사양하는 마음을 이르며, (智)는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했다. 

 

 

맹자는 사단(四端)을 인간 마음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계로 확충하여 성인(聖人)의 길에 이르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왕도정치(王道政治)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었다.

 

맹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군주가 시원치 않으면 백성들이 군주를 갈아치울 수도 있다는 역성혁명을 주장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왕들 가운데 맹자의 이런 급진적인 사상을 받아들일 만한 자가 과연 존재할 수가 있었을까?

 

 

맹자는 자기의 스승뻘인 공자처럼 그의 사상을 받아줄만한 이성적인 군주를 찾았지만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지도자들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맹자가 활동하던 당시는 예의와 염치를 바탕으로 하는 인(仁)의 정치를 도입할 만한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아성전 건물 부근에 자리한 작은 건물에 나열되어 있는 붉은 패들을 살펴보았다. 기복이라.... 복을 빈다는 뜻이리라.

 

 

성인을 모신 사당에서조차 복을 기원하는 이런 심사는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현명한 가르침을 얻기보다 맹자같은 성인이 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게 아닐까? 나는 씁쓰레해지고 말았다.

 

 

중앙통로를 따라 아성전으로 다가가 보았다. 2층으로 된 건물이다. 1층 지붕과 건물 앞 통로 바닥에는 이끼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2층 처마밑에 세로로 붙어있는 현판에는 황금색으로 아성전이라고 쓰여있었다.

 

 

맹자를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聖人)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리라. 건물 앞에는 향을 태우는 향로가 놓여져 있었고 향로에는 사람 팔뚝 굵기만한 향들이 타면서 매운 연기를 하늘로 올리고 있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