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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맹자의 고향을 찾아나서다 3

by 깜쌤 2011. 11. 18.

 

추성 시가지는 번잡했다. 곳곳에는 공사판이었고......

 

 

새로짓는 아파트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중국은 어디에나 사람이 많았다. 일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그런 느낌이 중국에서는 쉽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디에나 몰려있는 사람들과 공사장이 중국의 현실을 말해주는듯 하다.

 

 

아파트 색깔도 파스텔조로 칠할 줄 아는 것을 보면 확실히 중국도 이제는 제법 세련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는듯 하다.

 

 

마침내 우리가 탄 버스는 추성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가 추성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이 적었기에 두말없이 택시를 타기로 했다. 우리 일행이 모두 네명이므로 택시비 부담이 적다는게 이번 여행의 장점이다.

 

 

맹묘까지의 거리는 짧았다. 기본요금 정도였으니까. 맹묘라고하니까 무덤을 먼저 떠올리면 곤란하다. 묘(廟)는 '사당'을 의미하는 글자이지 무덤을 의미하는 묘(墓)라는 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성에서 맹묘를 먼저보고 난 뒤 곡부로 돌아가서 공묘(孔廟)를 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제자의 사당을 먼저 둘러본 뒤 스승의 사당을 둘러볼 생각으로 있는 것이지만 오해하면 곤란한 것이 있다. 맹자는 공자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살아간 시대가 서로 다르다.  

 

 

맹묘 앞마당은 널찍했다. 중국인다운 발상이다. 중국인들은 유적 하나를 만들어도 먼저 규모의 크기를 광대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기자기함과 섬세함이 일본유적의 특징이라면 중국은 웅대함과 거대함부터 먼저 떠올리게 한다.

 

 

저만치 앞쪽에 입구가 보였다.

 

 

맹자는 전국시대인 기원전 372년에 출생해서 기원전 289년경에 죽은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출생과 사망시기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출생해서 기원전 479년에 죽은 것으로 짐작되므로 맹자가 공자보다 약 200년 뒤에 활동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자의 가르침을 이은 학자이니 공맹이라는 말이 생긴듯 하다. 

 

 

맹묘는 중국 국무원이 인정한 전국 중점 문물보호대상이다. 검은색 돌판에 새긴 맹묘맹부(孟廟孟府)글자가 선명했다. 부(府)는 관청을 뜻하는 글자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맹자의 고택(古宅)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정문의 이름은 영성문(星門)이다. 櫺이라는 글자는 으로 읽는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유'자로 읽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았더니 영성문으로 발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곡부에 있는 공묘의 두번째 문이 영성문일 것이다.  

 

 

영성문 주위에는 장사치들이 앉아서 하찮은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만 그들 보기에는 꽤나 소중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맹묘만해도 '국가급여유경구'로서 A표시가 4개나 있는 명승지이다.

 

 

나는 영성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상하게도 맹묘 전체를 감싸고 도는 축축한 기운을 느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측백과 편백같은 나무들이었다. 하늘로 치솟은 모습도 장관이지만 고태미가 물씬 풍겨나왔다.

 

 

중국무협소설에 나오는 나무들같다. 초절정 기량을 갖춘 무림의 고수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영성문 안쪽에 매표소가 자리잡고 있다.

 

 

경내에 들어와서 바깥쪽을 본 모습이다. 우리는 저 앞쪽 광장 저편에서 걸어들어온 것이다.

 

 

뜰가운데 서서 보면 양쪽으로 작은 건물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문들이 이어진다. 양쪽으로 세워져있는 건물 현판이 재미있다. 한쪽은 '계왕성'이고 한쪽은 '개래학'이다. 무식한 나는 처음에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학(漢學)에 어둡기 때문이다. "계왕성개래학"이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를 하게 되었다. 계왕성(繼往聖)이라는 말은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이어받는다는 말이다. 개래학(開來學)은 후세의 학자들에게 가르쳐 전한다는 뜻이니 이어보면 '옛성인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서 후학들에게 전해준다'는 말이겠다.

 

 

이쪽은 계왕성이라는 글이 붙어있다.

 

 

맹자의 원래 이름은 가(軻)이다. 성이 맹씨고 이름이 (軻)라는 말이다. 공자는 성이 공씨이고 이름은 이다. 공자나 맹자라고 말할때 자는 아들 자(子)를 쓰지만 뜻은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공선생님, 맹선생님하는 식으로 부르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찍어둔 사진을 가지고 가만히 비교해보니 맹묘의 구조는 공묘와 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규모만을 가지고 비교해볼때 맹묘는 공묘를 따라가지 못한다.

 

 

측백나무나 편백나무들의 역사는 꽤 오래된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제법 신성한 기운을 느꼈다. 이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볼 차례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