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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스무명만 초대받은 음악회를 다녀오다

by 깜쌤 2011. 10. 17.

 

저녁 7시반까지는 꼭 도착해야 한다는 문자연락을 받았다. 혹시 늦을까봐 저녁을 챙겨먹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처음에는 솔직히 그런 장소에서 음악회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내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머리가 희미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생각의 발상이 치졸한 나같은 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게를 메우고 있던 피아노를 다치우고 소파와 칼라풀한 의자를 배치시켜 두니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쪽 벽면을 채운 바이올린과 전면의 흰색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소파와 의자가 얼마나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지 모른다.

 

 

음악회장에 들어섰더니 마지막 리허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낮 12시에 딱 한번 맞추어 보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습게 여기면 안된다. 장소도 좁고 지방이니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한차원 낮은 우스운 음악회라고 지레 평가절하할까봐 걱정이 된다. 출연진들 모두들 한가락씩 하는 양반들이다.

 

바이올린은 미국에서 공부를 한 유영임선생이다. 첼로는 조혜리 선생이고 피아노는 장정원 선생이다. 출연진 자체가 대구 경북 특히 경주 포항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분들인 것이다.

 

 

이런 멋진 음악회에 초대를 받았다는 것은 영광에 속하는 일이다. 오늘같은 날은 살판이 났다.

 

 

바이올린과 첼로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깜쌤에게는 오늘 저녁나절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갈 멋진 기회를 잡은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도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다. 길에서 주워온 오디오를 컴퓨터에 연결해두고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주워온 오디오가 물건너 온 정품 파이오니어다.

 

 

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가진 분들에게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닐지 몰라도 내귀에 들리는 소리의 음감은 멋지기만 하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앞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 그리고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막 시작하려는데 휴대전화가 왔다. 안받을 수 없는 분께서 하신 전화라 할 수없이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내 전화가 끝나면 음악회를 시작하겠다는 사회자겸 주인장의 농담섞인 말씀이 귓전을 때렸다. 얼마나 손님들에게 죄송스럽던지......

 

 

올해 들어서만도 좋은 음악회 서너군데를 다녀왔다. 사람산다는게 뭐 별다른게 있을까? 나는 술마시면서 왁자하게 떠드는 그런 자리는 어지간하면 피하면서 산다. 내가 술을 마시지않으니 사람들이 불러줄 일도 없지만 그런 자리에 가면 불편해서 견디기가 어렵다. 내 인생에서 술친구가 떨어져 나간게 정말 오래됐다.

 

 

시내 어떤교회에서 찬양대 지휘를 하는 주인장이 사회를 보았다. 사실 오늘 이 음악회는 악기사를 운영하는 주인이 벌인 깜짝쇼나 다름없다. 출연진들을 다 섭외하고 장소를 제공했으며 나중에 뒤풀이 음식까지 거하게 차려낸 분이다.

 

 

내가 이 양반의 재능이 참 뛰어나다는 사실을 은근히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이런 일까지 깜찍하게 벌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음악회를 시작했다. 안도현님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전문(全文)은 이렇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그렇다. 나는 살면서 누구에게 한번도 뜨거운 사람이 되질 못했다. 오늘도 그렇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들고 앉을줄만 알았지 내가 직접 나서서 요리해두고 초대해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드디어 피아노 트리오팀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번째 곡은 '호프만의 뱃노래'다.

캉캉춤을 이야기할때 흔히 등장하는 음악 '천국과 지옥(=지옥의 오르페우스)'을 작곡한 분은 오펜바흐(1819~1880)이다. 호프만의 뱃노래는 바로 오펜바흐가 작곡한 곡인 것이다. 그의 본명은 야콥 에베르스트로 알려져 있다.

 

 

뒤를 이어 바리튼 김진정 선생이 한국 가곡 박연폭포와 이수인 선생이 작곡한 내마음의 을 한곡 불러주었다. 멋진 시에다가 곡을 붙인 가곡을 가진 나라는 지구위에도 그리 흔하지 않다. 나는 가곡을 들을때마다 은근한 자부심을 가진다.

 

                                           내 마음의 강물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 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나는 이 곡을 참 좋아한다. 가사도 좋고 곡도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슈베르트의 "악흥(樂興)의 한때"를 들었다. 이 정도의 곡이 계속되는데 흥이 저절로 안나고 배기랴싶다.

 

 

거기다가 헨델의 라르고(Largo)까지.....  바이올리니스트 유영임선생이 음악에 관한 해박한 설명을 곁들여주니 금상첨화다.

 

  

사회자가 시인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낭독했다. 이쯤되면 진수성찬이다. 안먹어도 배가 불러오는 고급 음식이다.

 

 

다시 바리톤 김진정 선생이 등장하여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에서 '보리수'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를 열창했다. 바리톤 김진정씨는 실제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제르몽역을 하면서 감동적인 열창을 하셨던 분이다.

 

 

그 다음 곡은 모차르트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피아노가 맡은 부분을 현악기로 대체해서 연주를 했는데 아주 색다른 감흥을 주었다.

 

 

마지막 순서는 연주자와 관객들이 모두 힘을 다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함께 부르기였다. 아참, 그 전에 성가곡 두편을 바리톤 김진정씨가 불러주었다.

정말이지 우리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유감없이 즐겼던 것이다.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 섭섭해서 뒤풀이 행사를 가졌다.

 

 

언제 준비해두었는지 음식이 제법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남을 섬기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주인장 내외가 만들어놓은 마지막 깜짝쇼였던 것이다.

 

 

이런 귀한 음식은 안먹으면 손해다. 살찌는게 문제가 아니다.

 

 

이런 잔치에는 자주 가면 갈수록 좋다. 사는 맛과 멋을 느껴본 가을밤이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