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때는 그저 물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종이에다가 한자를 써서 버스터미널의위치를 물었다. 다행히 젊은 양반은 한자(漢字)를 알고 있었다.
터미널이라면 당연히 큰 도로 가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보면 찾기도 그만큼 쉬울 수 있었지만 아까는 왜 못찾았는지 모르겠다. 장족 젊은이가 가르쳐준 터미널에 들어서니 빈터 둘레로는 모조리 천막이었고 가운데에는 장거리를 다니는 침대버스들이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지금 사진에서 보는 것 천막이 매표소다. 지진이 일어난지 2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런 식으로 있다면 문제다. '무는 개를 돌아본다'는 말이 생각났다. 장족들이 너무 순하고 착해서 이런 대접을 받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자그맣게 난 천막 구멍속에 표를 파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종이에 발차시각과 날짜를 한자로 적어서 매표원에게 보여주었다. 내일 오후 4시 10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넉장 구했다. 요금은 일인당 206원이었다.
우리는 다시 큰길로 나섰다. 도로가에는 옥수지역 사람들을 위한 병원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장족들에게 무슨 큰 시혜나 베푸는 듯한 선전문구를 가득 걸친 병원건물이 역겹게 느껴졌다.
병원을 지어주기로 결정한 당중앙과 청해성 당국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도 보였다. 옥수지구를 맡은 공산당책임자의 아부성 현수막이겠지만 속으로는 정말 씁쓸하게 느껴졌다.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기보다는 윗사람의 눈치를 더 중요하게 여겨 살피는 비굴한 관료주의의 추한 모습때문이리라.
길가에 세워둔 트럭위에는 오늘 해체한듯이 보이는 야크고기가 널려있었다. 알짜배기 고기는 다 팔린듯하고 내장들만 남았다. 이들의 가축 해체 수준은 달인의 경지에 이른듯 하다.
온천지가 다 공사장이었다. 여기 겨울은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티벳에 비하면 조금 따뜻하다고 하지만 여기도 추운 곳이다. 몇년전에는 영하 40도짜리 추위를 동반한 폭설이 2주일 이상이나 이어져 가축 약 10만마리 정도가 얼어죽고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복구공사가 지지부진하다면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나야할지 걱정이 된다.
가축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더 큰 문제다. 노약자와 어린아이들과 다친 사람들은 더 힘들지 않겠는가?
여름은 견딜만 하다지만 이런 천막촌에서 겨울나기는 정말 힘들 것이다. 그래도 생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시설은 해두었으니 천만다행이지만 너무 오래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지진이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이다. 강도도 엄청났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은 장강(양자강) 허리에 환경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협댐을 건설했다. 그 결과 약 660㎞정도의 거대한 인공호수가 중국 내륙지방에 만들어졌다.
삼협댐 공사로 인해 총저수량이 393억t에 달하는 인공호수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일본 전체의 담수량과 맞먹는 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소양호 저수량의 13배가 넘는 규모로 보면 된단다.
이 정도 크기의 호수가 지구에 주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최근들어 연달아 발생하는 중국 대지진의 원인으로 삼협댐을 드는 학자들이 등장할까? 별것아닌 것으로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거대한 인공호수가 지표면에 주는 하중도 무시는 못할 것이다.
중국정부의 발표가 없어서 확인은 되고 있지 않지만 지하비밀기지에서의 핵실험을 지진의 원인으로 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옥수지진이 발생했을때 땅에서 마구 솟구치는 시멘트 곤죽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등장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소문에 대한 사실여부와 진실은 비밀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고위층 관계자들만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여튼 애꿎게 죽어나는 것은 힘없고 약한 서민들뿐이다.
버스표를 사들고 호텔로 향했다. 친구에게 내일은 서녕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힘이라도 얻도록 해야했다.
처음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는 부상자를 이송하고 사망자를 매장하는게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피해자들의 이주계획을 세우고 도시 외곽에 임시로 거처할 주택단지를 만드는게 우선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외부에서의 물자공급과 지원이 이루어져야하니 옥수로 긴급구호물자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을 것이다. 옥수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는 대형도시는 사천성의 성도와 청해성의 서녕 정도 뿐이다. 대형트럭들이 밀려들면서 도로파손도 잦았으리라.
무지막지하게 쌓여진 건물 잔해는 어디에다가 치워야할까?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어서 말을 꺼내기도 싫지만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대지진이 발생할 경우 엄청나게 쏟아질 시멘트 잔해는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나는 건물 잔해 속에서 장족들의 슬픔과 비애를 약간이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란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만든 영화제목처럼 말이다.
공예품을 팔러 나왔던가 보다. 물건을 수납하는데 쓰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호텔에 다시 돌아온 나는 친구에게 외출할 것을 권해보았다. 하지만 신사친구는 어지럽고 힘이 없어 움직일 여력이 없단다. 이대로 호텔에 가만히 있으면 맥이 더 빠질지도 모른다. 결국 친구를 남겨두고 나는 다른 멤버들과 함께 저건너편 산봉우리에 자리잡은 절에 가보기로 했다.
아무리 이 지역 형편이 이렇더라도 여기까지 온 이상 적어도 한가지 이상은 보고 가야했다. 그냥 돌아서서 나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가 아니었던가?
시가지 동쪽에 자리잡은 결고사(結古寺)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절에서 옥수 시가지를 보는 경치가 환상적이었다는데 시가지가 다 무너진 지금에야 전혀 그렇지도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영국신사 친구를 방에 남겨두고는 다시 호텔을 나왔다. 온 사방이 공사중이었다.
이 도로 끝에 보이는 골짜기로 가면 티벳의 중심도시인 라사로 가게 된다. 라사에는 언제쯤 가보게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초롱초롱하고 예쁜 눈망울을 갖고 있는 이 장족 아이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옷가지를 진열해놓은 좌판은 혹시 침대틀이 아닐까?
저 골짜기 안쪽에 비행장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반대쪽, 그러니까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라사로 가는 길과는 반대쪽인 셈이다. 라마승 셋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원래 작은 개울이 있었던 자리같은데 물이 고여있었다. 그저 온 사방이 폐허였다.
그나마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게사르 왕의 동상 정도였다. 티벳인들에게 그는 군신정도로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여기가 옥수의 중심부였던것 같다. 대지진의 와중에도 장족들의 정신적인 지주격인 게사르왕(格薩爾王)의 동상정도는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사르왕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했었지만 솜씨 부족으로 인해 결정적인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다. 티벳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엄청난 서사시 속에 그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단다.
그의 동상이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장족들에게는 힘이 되었으리라.
나중에 문성공주 이야기를 할때 자연스럽게 또 다른 한사람의 티벳 영웅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게사르 왕의 동상이 있는 이 광장을 둘러싸고 아주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동상을 벗어나 개울을 따라 걷는데 장오가 보였다. 다행하게도 묶여져 있었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녀석, 되게 사납게도 생겼다. 눈위에 있는 두개의 점이 특징인가 보다. 온몸의 털이 황금색으로 덮혀있는 장오는 가격도 비싸다고 한다. 황금색 개는 틀림없이 숫사자처럼 보일게다.
이럴땐 확실히 용맹스러워 보인다.
장오의 용맹성은 워낙 널리 알려져 있는지라 가까이 다가가려니 겁부터 났다.
조금 더 내려가자 상류쪽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물줄기를 만났다. 수량이 제법 많았다. 아래지도에서는 밑에서부터 위로 흘러오는 물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이 지도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쵤영한 것 같다. 물론 구글 위성지도다. 노란색 점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의 위치다. 초록색자잘한 점으로 된 선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나타낸다.
빨간색 점 : 게사르왕의 동상이 있는 광장
분홍색 점 : 두개의 개울이 만나는 다리
파란색 점 : 결고사의 위치
우리나라 같으면 래프팅 명소로 자리잡았겠다.
개울가에도 천막들이 즐비했다.
이제 결고사로 올라가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자동차가 한번씩 지나갈때마다 엄청난 먼지가 솟아 올랐다.
옥수 시가지 변두리에서 두개의 물줄기가 합쳐진다. 시가지를 스쳐지나가는 물은 한없이 맑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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