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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옥수는 폐허였다 1

by 깜쌤 2011. 9. 28.

 

어느 순간부터인가 갑자기 무너진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가로 파란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로 양쪽으로 천막들이 늘어섰다.

 

버스는 그런 길을 십여분 이상 달리는 것 같았다. 이제 옥수에 다왔구나 싶었지만 지진이 발생하고난뒤 2년이나 지났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폐허도 이런 폐허가 없었다.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버스는 폐허로 변한 도시 한모퉁이에다가 우리를 내려놓았다. 버스정류장도 보이지 않았고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가 공사를 진행중인 큰 건물 하나만 보이는듯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너진 건물 잔해위에 세워놓은 파란 천막들 뿐이었다.   

 

 

나는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론리플래닛에서 그렇게 극찬했던 옥수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옥수라는 티벳 양식의 예전 도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다. 마음이 아려왔다. 고산병에 시달리며 17시간씩이나 달려서 찾아온 곳이 폐허라면 너무 허탈하지 않은가? 

 

북경(北京 베이징) 부근에 당산(唐山)이라는 도시가 있었다. 1976년에 대지진이 일어나서 인구 100만명을 자랑하던 도시가 일순간에 폐허로 변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 정부에서는 희생자의 수를 24만명 정도였다고 발표를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희생자수가 80만 명이 넘었다고 전해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지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발표와 다른 이야기가 떠도는 이유는 당시 중국정부의 비밀주의때문이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희생자 숫자까지도 국가기밀로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피해자 수를 축소해서 발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2008년에는 사천성 서부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1년뒤 중국정부는 그 지진으로 인해 사망자 6만8712명, 실종자 1만7921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공식 집계해 발표했다. 사천성 내 181개 현 가운데 사망자나 실종자가 발생한 현은 모두 98개에 이르렀다니 그 피해규모가 어마어마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로부터 일년 뒤 사천성과 가까운 청해성의 옥수에서 대지진이 있었다. 널리 보면 사천성 지진이나 청해성 옥수의 지진은 비슷한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다음해인 2010년에도 다시 옥수에 지진이 있었다니 어쩌다가 이런 비극이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중심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도로 옆을 살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형편 속에서 우리가 묵을 만한 호텔을 찾을 수 있을지 그게 의심스러웠다. 번듯하게 서있는 건물이 거의 없었다. 옥수 시내로 들어오기 전에 언뜻본 천막 호텔이 떠올랐다. 정 잠잘데가 없으면 그런 곳이라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호텔 자체가 다 무너지고 없으니 찾을 길이 없다. 우리는 중심도로 끝까지 가보았다. 일단 배낭을 내려놓고 론리 플래닛에서 추천한 호텔을 찾아 게사르 왕의 동상부근으로 가보았다. 

 

거기도 상황은 처참했다. 모조리 다 무너지고 남아있는게 없었다. 파란색 구호천막들만이 우리를 환영해주는듯 했다. 그렇다. 모두 다 무너지고 남아있는게 없었던 것이다.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말이다, 확실히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았다.  

 

  

도로 끝머리 우리가 서있는 맞은편에 빈관이라는 이름이 보였던 것이다. 이 사진 속에서는 제일 왼쪽 끝머리에 남아있는 건물이다.

 

청장대주점(靑藏大酒店)이라 이름붙은 건물이다. 주점이라고 해서 술집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중국에서는 여관이나 호텔을 의미하기도 한다. 2층은 식당이었다. 찬청(餐廳)이라고 쓰여진 곳이다. 1층으로 들어가보았더니 시커먼 몰골을 한 접수대의 종업원이 우리를 맞이해주면서 방을 보여주는데 속된 말로 하자면 형편무인지경이었다.

 

 

벽지는 위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있었고 전기포트 속에는 찌꺼기가 눌어서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온수 샤워는 태양열로 물을 데워 밤에만 잠시 가능하고 전기도 밤에만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묵어야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자부족으로 인해 관리가 형편없는 호텔이었지만 하루에 200원을 요구했다. 일인당 100원이다. 이 와중에 되게 비싸게도 부른다. 천만다행으로 아침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라고 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배가 고파왔다. 벌써 점심때다. 식당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아무리 지진때문에 폐허가 된 곳이라고 해도 중국은 중국이다. 먹거리 천국인 중국에서 먹을 곳을 찾지 못한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한 것이리라. 우리는 중심가 양쪽으로 세워진 천막식당을 찾아갔다.

 

중경사과교자점(重慶砂鍋交子店)이라..... 중경은 도시이름겸 행정구역이름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마지막에 정착한 곳이 중경 아니겠는가? 사과(砂鍋)는 사궈이니 이것은 틀림없이 뚝배기탕이다. 교자는 속이 든 만두이다.

 

 

벽을 천막으로 하고 출입문만 유리로 만든 어설픈 간이 음식점속으로 들어갔다. 장족청년들이 먹는 음식을 골라 시켰다. 사궈였다. 뚝배기에 담은 야크 고기탕이라고 보면 된다. 값은 18원인데 야크 고기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다 먹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음식맛은 약간 짭쪼름했는데 내입에는 잘 맞았다. 교자도 좋았고....

 

 

밥을 먹고난 뒤에 우리는 좀 쉬기로 했다. 친구의 몸 상황이 안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영국신사 친구는 고산병 증세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몸이 너무 고통스러웠던지 그는 오후에도 구경을 나가지 않고 쉬겠단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애를 써서 찾아온 이곳에서 빨리 빠져나가야 문제가 해결된다. 고산병이 나타나면 그게 제일 빠른 해결책이다. 해발고도가 낮은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해야 문제가 풀린다. 다시 이동을 해야한다면 갈곳은 우리가 출발했던 서녕밖에 없다.

 

서녕에 가서 청해호 주변을 보든지 아니면 우리의 처음 출발지인 산동성 청도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처음 계획은 서녕에서 만난 선교사님께 기차표를 부탁해놓고 우리는 사천성으로 넘어갔다가 감숙성을 거친뒤 청해성 서녕으로 가려고 했었다.

 

 

 

지금 우리는 파란색 점이 있는 옥수까지 와있다. 그곳에서 오른쪽 밑으로 내려가면 사천성이다. 그런 뒤 위로 북상해서 다시 서녕으로 갈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고산병 증세를 나타내는 사람이 한명만 있어도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결심을 해야했다. 여행도 좋지만 친구의 건강이 우선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돌아나가는 것 뿐이라는 말이 된다.

 

 

  

위 지도를 보자. 왼쪽의 빨간색 점은 역시 옥수다.오른쪽의 빨간점은 성도를 나타낸다. 지도 아래부분의 노란색 점은 운남성의 곤명이다. 옥수에서 분홍색 점선을 따라 성도를 가는 것도 좋고 여유가 된다면 옥색점을 따라 곤명까지 가는 것도 환상적인 여행이 된다.

 

그길 중간에는 샹그릴라라고 알려진 적경도 나오고 내가 보기에는 중국최고의 도시인 려강(리지앙)도 등장하며 대리석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대리를 거쳐 항상 봄같은 날씨를 자랑하는 곤명도 등장한다. 속된 말로 하자면 끝내주는 여행로다,

 

 

 

이번에 올린 위의 지도도 역시 비슷한 장소의 지도인데 붉은 색점이 찍힌 곳은 내가 가본 장소들을 의미한다. 옥수에서 성도나 곤명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정말 환상적인 여행이 되겠지만 형편이 이러니 다시 서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일주일 정도는 고산병에 시달리며 험한 산골짜기를 돌아다녀야 하는 여정인데 친구의 형편이 이러니 어쩔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산골짜기에서는 장거리 버스도 아침에 한번 출발하면 곧 끊어져버리고 만다. 내 마음대로 입맛대로 골라가며 여행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렵다. 

 

    

결국 나는 다시 버스표를 구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돌아나가야 한다. 대신 오늘은 여기에 머무르고 내일 오전에는 문성공주묘라도 둘러보고 난 뒤 내일 오후에 여기를 출발하여 서녕으로 돌아나가는 버스표를 구할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친구가 버텨주어주어야만 한다. 버스정류장을 찾아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는데 문제의 정류장이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이 폐허더미 속에서 버스 정류장은 또 어떻게 찾아야하는가?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