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서녕 시가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2층 가운데 자리여서 이쪽 저쪽의 먼경치를 보는데는 유리했지만 가까운 곳의 경치를 보는데는 불편함을 느꼈다. 축구 경기장의 잔디밭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설치해두고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는 서녕시에서 옥수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위의 지도 속에서 노란색점을 찍어둔 곳이 서녕이다. 빨간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이 우리의 목적지인 옥수인 것이다. 옥수는 원래 티벳에 속한 지방이었다. 티벳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지도에 등장하는 영역보다 더 광대한 곳이었다.
중국이 티벳의 영토를 분리시켜 청해성으로 편입시켜두고는 자기들 땅인것처럼 우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그들은 나중에 북한이 붕괴조짐을 보일 경우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북한땅을 강제점령하고는 원래부터 자기들 영토였던 곳이라고 충분히 우길 수 있는 작자들이다.
잘 알다시피 티벳지방은 외국인들에게 아무렇게나 개방하는 곳이 아니어서 방문을 하고자 할 경우 여러가지 제한이 가해진다. 공식적으로 방문하려면 허기증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비싼 돈을 지불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티벳 방문을 포기하는 대신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티벳과 바로 곁에 붙어있는 옥수를 택해 굳이 가보려고 하는 것이다.
시가지를 벗어난 침대버스차는 고속도로를 따라 황원(湟源)으로 가는 것 같았다. 그런 뒤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꿀 계획이리라. 나는 지도를 꺼내서 확인해보았다. 틀림없다.
멀리 앞쪽으로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고 있었다.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건조하기 그지없는 땅에서는 먼지들이 하늘로 마구 솟구쳐 올랐다. 황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작년에 파키스탄 국경 가까운 타쉬쿠르간을 갈때도 처음에는 이랬다.
먼지를 뚫고 조금 더 나가자 그런 사태가 진정되었다. 서녕에서 한시간 정도만 달려나와도 풍경은 일변한다. 초원냄새가 바람속에 섞여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옆으로 기찻길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 부근의 기찻길은 꺼얼무를 거쳐 티벳의 중심도시인 라사로 가는 선로밖에 없으므로 방향을 판단하기가 좋았다.
산에 자라는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기 시작하면서 풀밭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오르막을 오른다는 느낌이 강했다. 버스는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며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도를 보기로 하자. 우리는 분홍색점을 따라 이동하려는 것이다. 왼쪽 위로 보이는 호수가 청해호(靑海湖 칭하이후)이다. 청해호는 민물호수가 아니라 염호다.
황원(湟源)부근부터는 확실히 고원분위기로 바뀐다. 그러면서 티벳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다.
이젠 산봉우리의 정상쪽으로는 나무가 거의 사라지고 만다.
산봉우리 위에 거대한 탑이 나타났다. 영국신사 친구는 그저 감탄하기에 바빴다. 내가 초원을 처음으로 보았을때처럼 말이다. 내가 처음 초원을 본 것은 터키 동부의 아라랏산을 갔을때였다. 중국의 초원을 처음 본것은 중국 내몽골자치구의 호화호특에서였다.
초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점점 높아가면서 맑아지기 시작했고 곳곳에 유채밭이 나타났다.
도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었다.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에서 찾아본 초원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초원(草原) Glassland : 화본과 식물을 주로하는 초본식물로 덮인 곳. 강수량이 부족하거나 저온으로 수목이 자라기 어려운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초원의 종류는 여러가지다. 열대지방에 존재하는 사바나같은 열대초원, 스텝이나 프레리같은 온대초원, 툰드라같은 한대초원, 그리고 고산초원(高山草原)과 습원(濕原)같은 것이 있다.
지금 차창가로 펼쳐지는 초원은 고산초원이라 할 수 있겠다. 해발고도가 높아지면서 나무들이 자라기 어려워지고 강수량까지 적어진다면 당연히 고산초원지대가 형성될 것이다.
나중에 우리는 해발고도 4,000미터 이상을 달리게 된다. 그 정도가 되면 고산병 증세가 확실히 나타난다.
여긴 아직도 유채꽃이 핀다. 8월 초순에도 유채가 피고지는 현장을 직접 보면서도 그게 잘 믿어지지 않았다.
밀들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젠 산봉우리 전체가 풀밭이다. 본격적인 초원이 등장하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낮은 곳에는 밀밭과 유채밭이 섞여있었다.
도로는 계속해서 오르막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힘이 달리는지 한번씩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슬슬 쳐지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도 도로는 정말 잘 만들어두었다.
산그림자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는 뜻이리라.
한번씩 나타나는 마을들조차 이젠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집들의 벽도 점점 두터워져가기 시작했고.....
어쩌다 한번씩 나오는 도로옆 시설물들은 조악해보였다.
여름은 그나마 경치라도 좋다. 겨울이 되면 어떻게 변할까?
얼핏보면 천국의 일부처럼 보일지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혹독한 겨울은 인간과 동물로 하여금 월동하기조차 힘들게 만들 것이다.
몇년전 어떤 방송국에서는 '차마고도'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영했었다. 사천성이나 운남성에서 티벳으로 이어지는, 차와 소금같은 물자의 유통길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당번고도(唐蕃古道)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당번고도는 산서성으로부터 시작해서 감숙성과 청해성을 거친뒤 티베트(=티벳)로 이어지는 험난한 길이었다. 물론 티베트의 중심도시인 라싸에서 다시 네팔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唐)이라는 글자는 당연히 당나라를 의미한다. 번(蕃)은 티베트의 옛날 이름인 토번에서 왔다고 보면 된다.
당번고도를 이야기할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문성공주(文成公主)이다. 그녀의 정확한 혈통에 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그녀의 무덤을 소개할때 자세히 하기로 하자.
어쩌면 그녀는 지금 우리가 가는 이길을 따라 갔었으리라.
한번씩은 정말 멋진 경치를 선사해준다.
우리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도로가 갈라지는 곳을 지났다. 나는 갑자기 아스라한 그리움을 느꼈다.
산위로 여러개의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분들의 글과 사진을 가지고 자세히 비교해보았더니 일월산(日月山)의 일월산경구(日月山景區)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자전거를 타고 나와 비슷한 길을 여행하셨던 '정안군'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어떤 장면은 이 사진과 아주 흡사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참고로 정안군님이 이 부근을 찍으신 것으로 짐작되는 사진이 들어있는 블로그의 글주소를 소개한다.
(혹시 정안군님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블로그 글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그만 무례한 행동을 하게 되었네요) 그분의 여행기를 자세히 읽어보는 것도 당번고도상의 경치와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될 것이다.
http://blog.daum.net/chan75/15801315
그렇다면 이 부근에서 서쪽으로 가면 청해호가 나오게 되어 있다는 말이리라.
위에서 세번째 노란색 밑줄이 그어진 곳에서 도로가 갈라져 나간 곳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밑줄이 그어진 곳은 일월장족향이다. 청해호의 위치와 비교해보면 이 부근의 지형도와 여행로가 대강 짐작될 것이다.
비가 오면 초원에 존재하는 작은 골짜기로 물이 흘러내릴 것이다. 세월이 가면서 점점 깊게 파일 것이고 언젠가는 작은 협곡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젠 완전히 초원들만 나타난다.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해가 천천히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멋진 초원을 좀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내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남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하늘은 점점 높아만 갔다.
드디어 우리가 탄 버스는 숨을 헐떡이며 제법 큰 고개를 넘었다.
고개마루 능선에는 거대한 레이다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지역을 감시하는 레이다일까?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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