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고사에서 내려온 우리들은 옥수시내 뒷동산격의 산에 펄럭이는 많은 깃발을 보러가기로 했다. 결고사에 올랐으니 일단 내려와야했다. 결고사 아래 동네의 지진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모양새로 보아 이집도 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너지고 만 것이리라.
우리는 먼지가 엄청 날리는 골목을 걸어내려와 호텔로 향했다. 뒷편 하늘이 컴컴해져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게사르왕의 동상부근까지 내려왔을때 뒤로부터 굉장한 먼지바람과 빗방울이 덮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가지를 덮친 먼지바람은 사방을 캄캄하게 반들었다. 장사꾼들이 펼쳐놓은 깔깨를 들어올려 난장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고 대형 햇빛가리개를 넘어뜨리기도 했으며 하늘로 먼지와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말아올리기도 했다.
뒤를 이어서 무섭게 몰아치는 굵은 빗줄기가 대번에 사방을 물구덩이로 만들어나갔다. 참 심술궂은 날씨다. 천만다행으로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의 공세를 피한 우리들은 호텔방안에서 창문으로 바깥에 벌어지는 일들을 살필 수 있었다.
그렇게 미친듯이 불어닥치던 비바람이 잠시후에는 거짓말처럼 물러가면서 일시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우리는 다시 호텔을 나와서 뒷동산에 올라보기로 했다. 골목을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사방이 모두 다 공사장이다. 좋은 일이다. 빨리 복구를 한다는 것은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일이 아니던가?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나간 골목에는 그사이에 물기가 촉촉이 배인 흙탕길로 변하고 말았다. 도로 끝머리에 보이는 작은 언덕이 결고사터다.
무너진 주택지에 새로운 집들이 조금씩 들어서고 있었다.
도로를 지나가는 어떤 트럭위에는 침대가 실려있었다.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1960년대의 우리나라 시골마을을 보는듯 하다.
재건을 서두르는 곳마다 중국깃발은 왜 그리 휘날려야만 했는지 모르겠다.
당에서 여러분들을 이렇게 지원하고 있으니 그대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라도 내걸어서 고맙다는 뜻을 나타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지시라도 있었을까?
이번에는 견고하게 지어서 어떤 지진에도 견뎌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초를 만들기 위해 판 모습이다.
기계힘이 무섭긴 무섭다. 인간이 이렇게 파려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할까?
벽돌장사치가 아무래도 제일 많은 돈을 벌것 같다.
마을을 이루는 골목길은 진흙구덩이였다. 우리는 발이 진흙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뒷산으로 올라갔다.
마을을 벗어나자 산으로 가는 길이 제법 널찍해졌다.
천연목장에는 야크가 풀을 뜯고 있었다.
돌아다보았더니 시가지가 점점 그 전체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아까 저 반대편에 보이는 결고사터에 올라갔었다.
곳곳에 무덤임을 나타내는 표지석이 보였다.
지금 우리가 올라가보려는 곳은 아마도 무덤터같다.
어떤 곳에는 조화(弔花)가 보이기도 했다.
야크는 무엇을 찾아다니는 것일까?
여기에서 무슨 일어 벌어졌던 것일까? 이 깃털은 독수리의 날개에서 빠져나온 깃이 아닐까?
어쩌면 여기는 조장(鳥葬)이 이루어지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조장(鳥葬)이란 인간의 시체를 새들에게 주어 조류(鳥類)의 밥이 되게 하는 장례방법인데 티벳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장례식 방법이기도 하다.
주검의 처리 방법가운데 무엇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민족마다 다를 것이다. 인간의 시신을 짐승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과연 인간적인가 비인간적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다.
인간들은 주로 토장(매장)을 했다. 시신을 땅에 묻는 방법이다. 그게 가장 일반적으로 행했던 방법이었다. 시신이 훼손당하는 것은 죽은자에 대한 모독이라 여겼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는 매장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유대인들은 시신이 훼손당하는 것을 징벌로 여겼다. 그러길래 성경속에는 이런 구절이 존재하기도 한다.
[신28:26]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 줄 자가 없을 것이며
[잠30:17]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렘34:20]내가 너희 원수의 손과 너희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붙이리니 너희 시체가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식물이 될 것이며
라마탑 비슷한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까이 가보려다가 참았다.
환한 대낮이었지만 괜히 으시시해져서 우리는 돌아서기로 했다.
한쪽에서는 티벳인들이 모여서 어떤 종류의 의식인가를 하는듯 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더 알고 싶지 않았다. 살고 죽는 것은 어디에나 다 존재하는 법이다.
어떤 사람들의 글을 보니 티벳쪽은 고도가 높아서 산소가 희박하기에 시신이 잘 부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일까? 매장을 해도 과연 그럴까?
인도와 티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무엇인가를 더 알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는 거기에 대해 아주 명쾌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길래 내 블로그의 첫화면속에 등장하는 프로필에 명확하게 밝혀두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다툴 필요가 없지 싶다. 결과를 모르는 일에 대해 말로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어리버리한 나는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미리 밝혀두었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번고도를 따라 문성공주를 찾아가다 1 (0) | 2011.10.09 |
---|---|
파헤쳐지는 초원 (0) | 2011.10.07 |
폐허 속에 솟아난 꽃 - 결고사 2 (0) | 2011.10.04 |
폐허 속에 솟아난 꽃 - 결고사 1 (0) | 2011.09.30 |
옥수는 폐허였다 1 (0) | 2011.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