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이 밝았다. 옥수를 향해 가기로 거의 마음을 굳혔으므로 차시간을 알아봐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옥수까지의 거리와 걸리는 시간때문에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다. 국제신사 친구가 아침에 내방에 와서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어차피 옥수로 갈 것이라면 이참에 버스터미널 부근으로 호텔을 옮기면 어떨까?"
그렇다. 옥수로 못갈것 같은 형편이 된다면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에 편한 터미널 부근에 머무르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결국 다시 한번 더 장도기차점(=버스터미널)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부근에는 나무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니 아침에는 기분이 더더욱 상쾌했다.
우리는 신녕광장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장도기차점에 와서 알아보니 옥수로 가는 버스는 제법 자주 있었다. 대합실에서 백인청년 둘을 만나서 물어보았다.
"어디서 왔소?"
"동인(同仁 퉁런)에서 오는 길입니다."
"국적은 어디시오? 우리는 한국인들입니다만....."
"프랑스입니다."
"어디어디를 여행하셨소?"
"감숙성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고 이제 서녕에 온 길입니다."
"옥수는 가보셨소?"
"아니오. 거기는 못갔습니다."
"어디 특별히 좋은 곳이 있었소?"
"아, 동인이 좋았습니다. 티벳의 전문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주는 멋진 학교가 있는데 그게 아주 좋았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난 뒤 대합실에 들어가서 안내표를 찾아보았다. 노선도를 보았는데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서녕에서 옥수까지 800킬로미터가 넘는다는게 진실임을 알아냈던 것이다.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도시라고 표현했지만 어찌보면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삐끼가 다가오더니 청해호 관광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서녕 부근에 자리잡은 유적지와 관광지를 확인해두자는 뜻으로 그가 보여준 팜플렛 사진을 찍어두었다. 옥수행이 좌절될 경우 청해호 부근의 마을이라도 돌아다녀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면 청해호 부근에만 해도 제법 많은 도시가 있었다. 문제는 그런 도시에 외국인이 머물수 있는 숙소가 얼마나 되느냐는것인데....... 우리는 아침을 먹기위해 터미널 건너편 시장쪽으로 가보았다. 몇군데를 둘러보다가 티벳인들이 모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가 카펫이 깔린 티벳식의 의자에 앉자 채보, 그러니까 메뉴판을 가져왔다. 위쪽으로 있는 이상한 모양의 글씨는 티벳의 주인인 장족들의 글씨다. 우리가 식당 선택에서 찍기는 정확하게 찍었다. 여기는 확실한 티베트 장족들의 식당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티벳 사람들은 모두 두눈을 크게 뜨고 주시했었다.
일단 우리가 한족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그래야 처신하기가 편하다. 무엇을 시켜야할지 몰라서 남들이 먹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핏보아서는 짬뽕처럼 보이길래 선택한 것인데 나중에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우리 좌석 건너편에 앉은 티벳사람들이 우리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의 허락을 얻어 사진을 찍었다.
이게 진짜 만두의 모습이다. 교자가 아닌 만두다. 속(앙꼬)이 없는 찐빵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가격확인을 해본 결과 한개 1원이었고 면은 10원이었다.
면에는 야크고기가 듬뿍 들어가있었다. 국물은 짬뽕국물처럼 얼큰한 편이었으며 면은 아주 쫄깃쫄깃했다. 아침치고는 제법 배부르게 먹은 편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음식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서부영화의 주인공같은 모습을 한 사나이가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메고 들어왔다. 나는 처음에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붙여본 결과 그는 한족 중국인이었고 티벳을 갔다가 사천성으로 나와서 이제 청해성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는 색달(色達 샤다 혹은 사다)을 거쳐 왔는데 그쪽 경치가 환상적이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에게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옥수쪽으로는 가볼만한 곳이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있는 아가씨에게 옥수를 갈경우 목적지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녀는 여러군데에 전화를 해보더니만 17시간 정도 걸린다고 알려주었다. 그래, 한번 가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면 안된다.
국수로 아침을 때운뒤 우리는 골목으로 나섰다. 티벳인들이 제법 많이 눈에 뜨였다. 그렇다. 여기는 그들의 땅인 것이다. 청해성의 대부분은 원래 그들의 땅이었지만 한족들에게 빼앗긴 것이다.
중절모자를 쓴 사람이 티벳 사람이다. 일가족인 모양이다. 머리에 납닥하게 생긴 하얀 모자를 얹고 다니는 사람들은 회교도들이다.
길바닥에다 싸구려 지갑을 깔아놓고 파는 저 아이는 무슨 민족출신일까?
골목에는 장사치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주로 티벳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장사를 하는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버스터미널에 가서 오후 4시 10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샀다. 요금은 206원 20전이었다.
이제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만 했다.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한 뒤 호텔에 맡겨두고 북산사(北山寺 베이산스)에 갈 생각이었다. 버스를 탈때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신녕광장에는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낮이어서 그런지 출연자들은 햇살을 막기위해 중무장을 했다.
어찌보니 댄스공연을 위한 연습같기도 했는데.....
한족들이 이곳에서 활개를 치는 동안에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이런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화 이상화님의 시가 생각났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너무 착하고 순한 장족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도 만주족의 전철을 밟아갈 것이다. 만주족이 급속하게 사라져 간 것은 백년도 채 되지 않는다. 청나라가 망하면서 너무 급속히 쇠락하고 말았지 않은가?
만주족은 탄압에 의해 사라졌다기보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서 한족에 스스로 동화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업자득이라고나 해야할까?
우리는 체크아웃을 하면서 맡겨두었던 보증금을 찾았다. 보증금을 중국에서는 '야진'이라고 부른다. 보증금을 찾음과 동시에 호텔에 짐을 맡겨두었다. 호텔 이름자 가운데 제일 앞에 나오는 글자는 성(聖)자의 약자이다. 나는 처음에 경(經)자의 약자인 것으로 착각을 했었다.
호텔을 나온 우리는 택시를 잡아탔다. 북산사로 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택시는 서녕시 변두리로 살짝 빠지는듯 하더니 도시 북쪽을 흐르는 황수(湟水)를 건넜다.
그 다음에는 난주와 라싸를 이어주는 철도를 건넜다. 그런 뒤 쓰레기가 마구 넘치는 골목을 지나더니 서녕시 북쪽의 가파른 산비탈 밑에다가 우리를 데려다 주고는 먼지나는 길을 달려 사라지고 말았다.
작은 도랑같은 물길을 건너는데 여기도 황토물이었다. 맑은 물 구경하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 말인가?
북산사는 절벽 밑에 붙어있는 절이라고 보면 된다. 절이라고 하니까 불교사원을 상상하겠지만 여기는 도교사원이 주가 되는 곳이다. 도교가 중심이 되면서 유교적인 냄새가 나기도 하고 불교적인 냄새가 깊게 스며있기도 한 참으로 묘한 곳이다.
나그네를 처음 맞아주는 건물만보아도 제법 위용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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