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다닐때 자전거 타기를 배워서 라이딩의 첫걸을을 뗀 이래로 나는 그동안 자전거 타기를 꾸준히 즐겨왔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자동차를 형편이 안되니 자전거를 탄다는 표현이 옳지 싶습니다. 지금은 경주시내의 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오릉 앞을 지나는 중입니다.
초가을의 향기를 담아 나르는 산들바람이 뺨을 스쳐지나갑니다. 보드랍기 그지없는 비단천을 볼에 대고 살살 문지르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너른 주차장에는 승용차 몇대와 대형트럭 두서너대가 자기네 터를 굳게 잡고 서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고속도로 요금소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취수장에 가서 책임자로 있는 친구 장로를 잠시 만나본 뒤 가던 길을 마저 가려고 합니다.
경주시내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곳입니다.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만 아는 분이 있어서 입구까지만 살짝 들어가봅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뒤 곧 헤어져 나왔습니다.
나는 형산강 다리를 지나갑니다. 다리위에서 본 강물은 가을 하늘을 담은채로 그지없이 맑게 보였습니다.
나는 고속도로 진입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는 논벌 사이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갔습니다.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쭉정이들은 고개를 숙일줄 모릅니다. 쭉정이들일수록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잘난척 하지만 추수할 계절이 되어보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인생을 살면서 참교육자인척하는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보았습니다.
말만 했다하면 교육을 부르짖던 사람이 정년이 되어 물러갈때 돈에 관해서는 흡혈귀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을땐 정말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남 앞에 서서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선생들이 예의와 염치와 신의를 잃어버리면 인생 전체를 다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과 다른 행동을 하는 교육자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적이 없습니다.
수도권의 교육을 책임진 어떤 양반이 하는 처세를 보면 나는 헛구역질을 할 정도입니다. 그 분이 추진하는 정책의 잘잘못을 떠나 돈문제로 인해 남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만으로 이미 그의 존재가치는 한없이 떨어지고 만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천천히 페달을 밟아갑니다. 젊었던 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3년동안이나 줄기차게 이 길을 다녔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싸구려 삼류 선생의 표본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합니다. 좀 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동료들과 직장 상사와 선배선생님들께는 더 신중하게 처신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지 못했으니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습니다.
억새풀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 2,3주일 뒤가 되면 하얀 꽃을 피우지 싶습니다. 나는 그동안 어떤 꽃을 피울 준비를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탈색되고 변색되고 이상하게 찌그러진 엉터리 꽃을 피웠을까싶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사실 곧이 곧대로 말하자면 이미 그런 꽃을 피웠다가 이제는 시들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저수지 둑에 올랐더니 하늘 한조각이 떨어져 물속에 잠겨있었습니다. 나는 한없이 부드럽고 둥근 모습을 한 저 산봉우리를 보면서 깨달은게 많았습니다. 망성산 혹은 망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저 산봉우리가 나에게는 '큰바위 얼굴'같은 존재로 다가왔었습니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때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하는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큰바위 얼굴>을 최근들어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나는 주인공인 어니스트같은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살지 못한 정도를 넘어 흉내조차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 인생의 전반기는 추함과 얼룩짐과 더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좀더 깨끗하게 아름답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하지를 못했길래 후회스러움이 가득합니다.
나는 저수지 둑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젊었던 날에 낚시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물속에 평안하게 잘 사는 대물 붕어를 건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지나간 날을 되돌아보면 인생이라는게 괜한 욕심을 내어 넘봐서는 안될 숱한 것을 끌어내려고 발버둥치던 과정이었던 같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 얼굴과 마음 속에는 추한 주름살들이 늘어만갔던 것이죠.
이제 나는 다시 물가에 섰습니다. 내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게되면 삶의 과정을 비추는 거울이 있을 경우 과연 무엇이 비추어질지 겁이 납니다. 그런 거울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와 인연을 맺었던 소중한 아이들은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소중한 얼굴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어떤 얼굴들은 거울처럼 맑은 물속에 선명하게 비쳐지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선생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나는 내 부족함과 잘못을 떠올리며 자주 반성을 하고 뉘우칩니다.
내가 헛되어 흘려보낸 시간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모여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사라져서 없어져 버렸는지 아니면 어디엔가 차곡차곡 저축되어 다음에 올 다른 사람들에게 거름으로라도 쓰여질 것인지 말입니다.
구름 몇조각이 물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물속에 빠져든 구름조각들 하나하나까지도 건져내서 다시 하늘로 올려주고 싶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헛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른 붕어를 노리고 물가에 찾아가 명당이라고 알려진 포인트를 찾아헤매는 욕심많은 낚시꾼이 될까 싶어 은근히 겁이 납니다.
나는 내 더러운 과거지사를 갈대와 붕어들 그리고 마름들에게조차 들킬까 싶어 서둘러 물가를 벗어났습니다. 황급하게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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