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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피서지 서녕의 매력 1

by 깜쌤 2011. 9. 15.

 

황하의 물은 유장하게 흘러갔다. 상류에서의 물 흐름이 저정도라면 얼마나 엄청난 강이 될지는 상상이 안간다. 그런 황하도 하류가 완전히 바짝 바른 적이 있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1997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건너편의 백탑산 공원도 제법 정성들여 가꾸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밑에 보이는 사람들은 황하의 물에 손발을 한번 담궈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일까?

 

 

철교의 역사를 담은 가념비일까?

 

 

황하철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황하를 건너기 위해 만들어세웠던 다리를 지탱했던 쇠기둥같다.

 

 

쇠기둥의 유래를 알아두고 싶어서 일단 사진부터 찍어두고 집에 돌아와서 자세히 읽어보려고 했건만 내용을 알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확대하여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아도 한자 실력이 짧은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다. 명나라 시대 초기에 중감진(重監鎭)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 시대에 여기에 만들어 두었던 예전 다리의 유물인 모양이다.

 

 

체크아웃 시간전에는 호텔에 도착해야만 했기에 마음이 급했다. 황하를 따라 만들어둔 작은 공원길을 걷다가 길을 건넌 뒤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공원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공원에는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확실히 평화로운 모습이다.

 

 

다리 사이로 백탑사의 탑을 보았다.

 

 

탑모양으로만 본다면 어딘지 모르게 티벳 냄새가 풍겨난다.

 

 

강건너편 선착장에도 사람들이 끓는듯 했다.

 

 

확실히 요즘 중국인들에게는 관광붐이 불고 있는듯 했다.

 

 

중산교 위에는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저 철교가 청해성과 신강성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한다. 독일인들이 만들었단다. 

 

  

우리는 도로를 건너가서 택시를 잡아타려고 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네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팀이므로 택시를 타도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때가 많았다. 결국 우리는 시내버스를 탔다. 327번으로 기억한다.  

 

 

시내로 돌아오면서 보니까 삼성전자의 휴대폰 가게가 제법 보였다. 여기는 가게가 두개나 한꺼번에 모여 있었다.

 

 

11시 반경에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짐을 정리해서 나갈 차례다. 기차역은 바로 앞에 있으니 그리 서두를게 없지만 점심을 먹어야 했다. 모두들 국수를 먹을 뜻이 없는 것 같아서 과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난주역 건물의 크기를 보라.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건너편 고란산 위에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난주역 맞은편 산자락에 자리잡은 오천산 공원에는 한나라 시대때 흉노를 토벌하러 나섰던 곽거병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난주역앞에 자리잡은 화련빈관은 묵을만하다. 가격싸고 친절하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차를 탔다. 출발지여서 그런지 좌석이 많았다. 난주에서 서녕까지는 세시간 정도 걸린다. 친구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던 요 꼬마숙녀들은 자기 자리가 없어서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우리 앞에는 경찰로 생각되는 부부가 앉았다. 부인은 영어단어를 조금 알았다. 그들과 필담을 나누느라고 세시간은 순식간에 흘러버리고 말았다. 차창가의 경치는 황량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사진을 찍어두지 못했다. 철길을 따라오던 강물은 탁하기 그지 없었다. 서녕부근을 흐르는 강은 황하의 지류인 황수(湟水)이다. 

 

 

서녕! 서녕이 가까워지면서 창밖의 경치를 유심히 살폈는데..... 어랍쇼? 기차는 목적지의 기차역을 통과해서 계속해서 서쪽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차표에 서녕서(西寧西)역이라고 표시한 것을 보면 기차역을 새로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 서녕역을 통과하고난 뒤에 한 5분 정도는 더 달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우리는 목적지인 서녕서역에 도착했다.

 

 

기차역밖으로 나오니 푸른 하늘과 따가운 햇살이 우리를 제일 먼저 맞아주었다. 서녕시의 평균해발고도는 2261미터 정도란다. 청장고원 동부에 자리잡은 고원도시이다. 한라산 정상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잡은 도시여서 그런지 여름철 평균기온이 12도에서 17도란다. 더위에 약한 도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살판난 곳이나 마찬가지다.

 

하늘이 너무 푸르러서 선글래스를 꼈다. 그렇다.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하늘이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덕분에 살맛이 확 돌았다. 그런데 말이다,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역앞에는 큰 도로가 지나가는 것 이외에는 도시가 갖추고 있어야 할 시설이 전혀없다는 것이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같은 건물 외에는 기반시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몇년 지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겠지만 우리가 도착했던 시점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보기로는 역건물도 가건물이었다. 부근에 호텔이 없으니 구시가지까지 가야만한다. 아까 기차로 오면서 보았는데 제법 멀리온게 틀림없다. 문제는 서녕서역 부근에 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론리플래닛에도 서녕서역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제갈길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신기한 것은 모두들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동쪽에 무엇인가 있다는 말이다.

 

터미널이 있든지 승강장이 있든지 하여튼 뭐가 있어도 있다는 말이 된다. 우왕좌왕하다보면 사진조차 못찍는 수가 생기므로 나는 배낭을 맨채로 사진부터 찍어두었다. 우리 일정은 유동적이어서 서녕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수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남의 일에 간섭을 안하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꼭 정보수집을 하는게 급선무이다. 일단 시내로 들어가야만 했다. 구시가지에 관한 정보는 배낭여행안내서에 조금 나와있으니 참고로 하면 된다.

 

 

구시가지까지 정확한 거리를 모르므로 무작정 택시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보없이 택시를 타는 것은 바가지 쓰기에 딱 맞는 일이므로 이런 때는 자제하는게 현명한 길이다.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았더니 시내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나왔다.

 

우리가 부딪힌 또다른 문제는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번호를 모른다는 것이다. 경찰에게 묻는 것이 최고다. 마침 길가에 세워진 경찰차를 찾아서 물어보았다. 영어가 되지 않았기에 한자를 써서 물었다. 3,4,5번이 시내로 간단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 알고보니 삐끼였다. 그의 직업이 삐끼든 아니든간에 수많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사실 그가 우리를 찾았다고 하는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어디에 묵을 예정이냐고 물어왔다. 론리 플래닛에 올라와 있는 호텔을 찍어주었더니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서녕은 피서를 온 관광객들로 초만원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호텔이 만원상태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를 통해 알게된 시내 버스 번호도 경찰이 알려준 번호와 같았다. 으흠......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최악의 상황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걱정하지마. 나는 무슨 일을 해도 잘되는 사람이야. 우리가 묵을 호텔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꼭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