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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29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꼬박 앉아서 가다 2

by 깜쌤 2011. 9. 5.

 

중국열차의 객차담당 승무원은 외판원 역할까지 겸하는 모양이다. 객차바닥 청소는 기본이고 온갖 허드레일까지 다 하는 것 같았다. 악세사리까지 들고와서 판촉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예전에 우리나라 열차안에서는 자그마한 수레에다가 물건을 담아 객차마다 건너다니며 물건을 파는 단체가 있었다. 강생회니 홍익회니 하는 식으로 명칭이 변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정주에서부터는 밖이 컴컴해져서 모두들 잠자는 모드로 급속히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도 자야했다. 그런데 딱딱한 의자여서 그런지 뒤로 기대봐도 그게 그거다. 잠을 잘 수 있는 자세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창가로 자리잡은 사람은 모서리라도 있으니 몸을 기댈수도 있지만 가운데와 통로쪽 자리는 뒷면 말고는 기댈 구석이 없어서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좌석이 없는 사람도 부지기수여서 어떤 사람은 의자 밑에 기어들어가기도 했고 그냥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래도 인정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세사람이 앉는 자리지만 한사람이 더 끼어들어 네사람이 잠을 청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교대로 앉아가며 쪽잠을 자기도 했다. 우리 자리에는 외국인이라고 봐주는것인지 그런 사람은 나타타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최고의 스타는 소수민족 아이라고 생각되는 이 꼬마였다. 녀석은 정말 놀랍도록 비위가 좋은 아이였는데 어느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줄 아는 뛰어난 사교성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잘되면 크게 될 인물이지만 되게 안풀릴 경우에는 - 아이에게 차마 할 소리는 아니지만 - 조폭 두목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데리고 목적지까지 가는 모양이었는데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할머니가 간단하나마 히잡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영하회족출신이 아닐까 싶다.

 

 

녀석은 잠도 없었다. 밤새도록 남의 자리로 다니며 떠들고 까불고 얻어먹고 하더니만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기 시작했다. 녀석이 조용해지니까 온 기차안이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녀석은 별스럽게도 신문지를 깐 기차바닥에서 그냥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떴더니 삼문협이라는 도시를 지나고 있었다. 지도를 가지고 찾아보니 낙양과 서안 사이의 도시였다. 역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함곡관이라는 유명한 요새는 이부근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삼국지나 초한지를 읽은 분이라면 함곡관정도는 알지 싶다.

 

 

조금 더 가면 중국고대사에서 장안(長安)으로 알려졌던 서안(西安 시안)이 등장할 것이다. 곧 도착할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삼문협을 지난뒤 서안에 도착하기까지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함곡관은 고대 세계에서 유명했던 요새가운데 하나다. 삼국지나 초한지에 자주 등장한다. 함곡관 안쪽의 서쪽, 그러니까 오늘날의 섬서성과 감숙성의 너른 땅을  관서(진나라 입장에서는 관중)라고 불렀다. 거기에 터를 잡은 나라가 바로 (秦)이라는 나라다.

 

 

함곡관 안쪽의 너른 땅에서 나는 풍요로운 산물과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를 만들어낸 사람은 진시황 정(政)이라는 인물이고..... 무료해진 우리들은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중국 컵라면들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컵라면보다 월등하게 크다.

 

뜨거운 물을 어디에서 구하느냐고 지레 겁을 먹지 않아도 된다. 중국 기차속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이 반드시 있다. 먹는 음식과 돈과 마시는 차에 목숨을 거는 것이 중국인들이니만큼 차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젓가락이나 포크 걱정도 안해도 된다. 컵라면 속에 거의 예외없이 포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기차는 서안역에 도착했다. 서안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덕분에 기차안에서 승객들이 확보할 수 있는 공간에 제법 숨통이 트였다. 이미 한낮이다. 기차는 줄기차게 서쪽으로 달렸다. 서안에서 난주까지 또 여섯시간 이상을 가야하니 정말 지겹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기차안에서 하루를 보냈다.   

 

 

 

서안을 지나고나서부터는 날씨가 변하더니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보계를 지나면 곧 이어서 산악지대로 들어서기 시작할 것이다. 차안의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난 여파여서 그런지 다시 슬슬 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내가 꼭 봐두어야 할  경치와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축척은 지도 왼쪽 하단에 나타나 있으니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지도가 너무 작아서 보기가 힘들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컨트롤 키를 누른 상태로 마우스의 둥근 부분(스크롤이라고 하던가? 가운데 버튼이라고 하던가?)을 돌려보시기 바란다. 화면이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될것이다.

 

1번 지점이 보계다. 성도곤명으로 가는 기차는 여기에서 방향을 틀게 된다. 2번 지점은 분홍색으로 점을 찍어두었다. 그 부근에 오장원이 있다. 오장원이 뭐하는 곳이냐고 묻고 싶은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장소다. 그 유명한 제갈공명이 병사한 곳이다.

 

3번은 미현이라는 곳이다. 오장원을 방문하기 위해서라면 꼭 기억해두어야 할 도시다. 4번은 주실이라는 곳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할것 같다. 혹시 중국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나라와 관련이 있는 마을인지도 모른다.

 

주나라의 권위가 무너지고나자 중국대륙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5번이 서안이다. 서안은 장안이라고 불려왔던 곳이다. 삼국지에서 굉장히 중요한 도시로 등장한다.

 

 

 

내가 목을 빼고 기다렸지만 창밖에 비가오는데다가 기차 유리창도 더럽기 짝이 없으니 사진이 바로 나올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사진찍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어쩌다 한두번 지나치는 나그네 주제에 오장원같은 마을을 정확하게 찾아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뭐든지 일을 하려면 날씨가 도와주어야 한다.

 

 

보계를 지나면 지형이 급속하게 험해지기 시작한다. 기차는 험한 골짜기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그럴까? 골짜기를 흐르는 강물이 황토색으로 변해있었다. 지도를 보면 이 부근을 흐르는 강은 위수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위수는 황하의 지류이다.

 

 

보계(寶鷄 바오지)와 천수(天水 텐수이)사이의 경치가 제법 장관이다. 제갈량은 오늘날의 성도에서 출발해서 보계쪽으로 나온뒤 서안쪽으로 접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제갈량의 맞수였던 사마중달은 그런 노림수를 저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고..... 

 

처음 한나라의 수도는 오늘날의 서안인 장안(長安)이었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전한(前漢)의 수도는 장안이었고 후한(後漢)의 수도는 낙양이었다 사실을..... 후한 말기 헌제가 잠시 장안으로 천도를 시도했을 정도로 장안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는 굉장했던 것이다. 진시황 정(政)이 세운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은 서안(장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장안을 지나서 동진(東進)하면 이 글 저 위에서 언급한 함곡관을 넘게 되어있다. 함곡관을 넘어 동쪽으로 나가면 곧이어 낙양이 되고 다시 더 동쪽으로 가면 조조의 심장부가 되는 허창(=허도, 오늘날의 정주와 개봉 부근)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 지도에서 오른쪽 노란색 끝점이 서안(한나라 시대의 장안)이고 오른쪽 끝 붉은 점이 정주이다. 녹색점으로 이어진 선이 우리가 지금 이동하려고 하는 경로를 나타낸다. 제일 아래쪽의 연한 파란색 점은 유비와 제갈량이 근거지로 삼았던 의 중심지인 성도이다. 보라색점은 삼국지에 많이 등장하는 한중(漢中)이라는 곳을 나타낸다.

 

제일 왼쪽의 빨간색점이 찍혀있는 곳이 옥수라는 곳인데 이번 여행의 최종목적지이다. 거기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청해성이지만 실제로는 티벳이나 마찬가지다. 원래는 티벳에 속한 곳이지만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청해성으로 옮겼다. 먼 미래의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티벳을 반환할 일이 있더라도 -중국 정부에서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지만 - 티벳의 범위를 최대한 축소시키겠다는 지극히 얄팍한 수작을 부린 결과인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