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물은 날로 맑아 갔다'로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원문을 꺼내들고 확인을 해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황순원님이 쓰신 단편소설 <소나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는 자꾸 그 귀절이 생각났다. 나날이 맑아지는 개울물을 볼때마다..... 나는 하루에 한두번씩은 경주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북천다리를 건너다닌다. 그럴때마다 오늘은 물이 어느 정도로 맑아졌을까하고 짐작해보는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소설의 뒷부분을 조금만 더 소개해보자.
이튿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들이옷으로 갈아입고 닭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다.그 말에도 대꾸도 없이, 아버지는 안고 있는 닭의 무게를 겨냥해 보면서,
"이만하면 될까?" 어머니가 망태기를 내주며, "벌써 며칠째 '걀걀'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데요.
크진 않아도 살은 쪘을 거여요."
소년이 이번에는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어디 가시느냐고 물어 보았다.
"저, 서당골 윤 초시 댁에 가신다. 제삿상에라도 놓으시라고… …."
"그럼, 큰 놈으로 하나 가져가지. 저 얼룩수탉으로…….
" 이 말에, 아버지는 허허 웃고 나서, "임마, 그래도 이게 실속이 있다."
소년은 공연히 열적어, 책보를 집어던지고는 외양간으로가, 쇠잔등을 한 번 철썩 갈겼다. 쇠파리라도 잡는 체.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 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 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曾孫)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확실히 올해 장마는 건들거리며 지나간게 틀림없다. 어제부터는 드디어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얼마나 뜨거울지 아무도 모른다. 여름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겨울은 갈수록 차가워져만 가는게 아닐까? 오염에 무심했던 우리들에게 드디어 대자연의 복수극이 시작되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어린 날의 어리석고 순수했던 소년이 되어서 다리 난간에 기대어 한참동안이나 아래를 살폈다. 되짚어보니 참 많이도 살았다. 소설 속의 아버지가 하는 말로 글을 맺고싶다.
"허, 참 세상일도……."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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