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주특기를 가지고 즐기면서 먹고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by 깜쌤 2011. 6. 12.

 

좁은 동네에서 살다보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얼추 다 알아지게 마련이다. 경주가 그렇다.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약 7,8만 정도라고 하니 한다리만 건너면 모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살면서 느낀 것인데 절대로 남의 흉을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작고 좁은 도시에 살면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큰일나는 수가 생긴다.

 

 

어지간하면 혈연이나 학연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순식간에 내가 지껄인 말이 상대방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중소도시에 살 경우에는 그저 남에게 덕담을 해드리는 것이 최고다. 립서비스만을 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다. 덕담을 하며 산다는 그 자체가 벌써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멋진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칭찬과 격려라면 더 좋은 일이고......

 

 

 장선생님께서 초청장을 대신하는 음악회 프로그램을 집으로 보내주셨다. 그 분도 우리들이 하는 음악회에 자주 오시는 분이니 안갈 수가 없는 일이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나는 그분을 존경한다. 인품과 실력과 열정이 뛰어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사를 제쳐놓고 가야했다.

 

 

경주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개인 독창회를 하신다고 했다. 성악가로, 존경받는 교사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이런 멋진 장소에서 공연을 한다니 축하를 안해주고는 못배길 일이다. 장선생님은 멋진 바리톤의 음성을 가지고 계신다. 그날따라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다. 예술의 전당 지붕 위로 노을이 살짝 묻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경주 예술의 전당까지는 걸어서가면 한 이십여분 걸린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자전거를 타고 예술을 즐기러 갈 수 있는 나는 이 순간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된다. 벤츠 E클래스를 타고 질펀한 음악이 흐르는 노래방에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어찌보면 이것도 못가진 자의 자기위안이겠다. 

 

 

청중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칼같이 시간을 지켜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애호가다. 강의를 가도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가 정시가 되면 시작을 해버린다. 강의후 시험을 쳐야할 경우에는 더 그렇게 한다. 정확한 시간이 되어 시작하자마자 문제에 관한 중요한 힌트나 정보를 제공해준다.

 

 

한번만 그렇게 수강생들이 당하고나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물론 안그런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BJR 정신에 투철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별 일이 없는 이상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경주라는 도시가 작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음악회를 해보면 신기하게도 십여분만에 빈자리가 꽉 차기도 한다. 그게 경주의 불가사의한 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장선생님은 영남 오페라단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오페라에 출연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관람한 작품은 없지만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분이다.

 

 

첫번째 무대는 독일가곡으로 열어나갔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에서 두곡을 고르셨다. 보리수송어는 누구나 다 아는 곡이다. 아무리 멋진 곡이라도 청중이 모르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베토벤의 '그대를 사랑해'도 멋지다.

 

  

두번째 무대는 바흐의 칸타타였다. 바흐라면 내가 좋아못사는 음악가이다. 나는 그의 고결한 음악이 좋았다.

 

 

그 다음은 이탈리아 가곡이다. 토스티의 곡으로 두곡을 골랐다. 이탈리아 가곡의 매력을 어찌 말로 다 이야기할 수 있으랴? 

 

 

그 다음은 첼로독주다. 인간의 소리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첼로인 것이다. 몇번 이야기한 사실이 있지만 나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같은 현악기 소리에는 깜빡 죽는 사람이다. 내 블로그의 음악도 잘 들어보면 그런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상스의 '백조'다. 집에서도 혼자서 가끔 듣는 곡이다. 피아노와 첼로의 환상적인 조합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감미로웠다. 첼로연주는 조혜리님이 하셨다.

 

 

그 다음은 무소르그스키의 '벼룩'이라는 곡과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아리아를 들려주셨다. 장선생님의 묵직한 남저음으로 부르는 '벼룩'은 일품이다. 한 열흘전에도 들은 곡이다.

 

 

다음에 들려주신 곡은 우리나라 가곡이었다. 정지용님이 시를 쓰시고 채동선님이 곡을 붙인 '고향'과 이흥렬님의 '바우고개'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는 바우고개를 들으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의 고개마루가 자꾸 떠올랐다. 얼마 안있으면 물에 잠길 곳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가사는 '고향'이 더 매력적이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마지막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중에서 고른 아리아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정말 좋아한다. 그가 테어나고 자란 잘츠부르크를 가본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가운데 하나라고 여겼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감흥을 안고 연주회장을 나섰다. 그냥 조용히 돌아오는게 마냥 행복한 일이다.

 

 

사방에 고요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모든 만물이 다 쉴 시간인 것이다. 나도 이젠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다. 정지용이 그리던 고향같은 내집으로 가서 말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