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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해야 역사전쟁에서 이긴다

by 깜쌤 2011. 5. 3.

 

피라밋(=피라미드)이라면 누구나 다 이집트에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피라밋은 다른 나라에도 있을 수 있다. 사각뿔 모양으로 생긴 구조물이라면 피라밋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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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자. 글의 출처는 위키백과이다.

 

"피라미드(pyramid)는 일반적으로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등 많은 문명권에서 피라미드 형태의 유적을 만들었다. 고구려태왕릉이나 장수왕릉등도 정사각뿔 형태이므로 피라미드의 일종이다.

 

 

                         

       <중국 서안인근의 함양도시 부근에서 발견되는 피라밋 흔적들 -  구글 위성사진으로 검색>

 

그중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적, MAk Did he 특히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대체로 국왕,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무덤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스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 80여 기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90킬로미터나일 강 서안 사막 연변에 점재해 있다.

 

 

수단나파타메로에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전자는 기원전 8~7세기나파타 왕국의 것으로 18 기, 후자는 기원전 3세기 이후의 것으로 약 50 기가 있다. 피라미드에 대해 남아있는 최고의 기록은 그리스 역사가헤로도토스의 《역사》2권에 있다. 거기에는 '기자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지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피라미드는 높이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문화재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글의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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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구글 어스를 사용해 중국의 대표적인 유적도시인 서안(西安 시안)부근의 도시인 함양 인근을 검색해본 것이다. 함양은 진시황으로 유명한 진(秦)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위에서만 본 모습을 가지고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무엇하므로 구글에 올라온 지표면 사진을 덧붙여본다.

 

 

 

붉은 숫자로 표시된 곳은 모두 다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들이다. 이 피라미드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론 부근에는 한(漢)나라 황제들의 무덤들도 상당히 존재하므로 중국 정부에서는 당연히 한(漢)이나 진(秦)왕조의 무덤들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진나라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문명의 흔적이라는 시각도 당연히 존재한다.   

 

 

 

위의 사진을 보자. 역시 구글에서 검색한 압록강 부근의 모습이다. 분홍색 점이 찍혀있는 곳이 그 유명한 중국의 국경도시 집안이다. 집안(集安 또는 輯安)이 유명한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건국한 고구려 역사에 빛나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광개토대왕비도 그 부근에 존재한다.

 

 

 

집안시를 좀 더 크게 잡은 것이다. 중국인들은 집안을 지안 정도로 발음을 하는 모양이다. 초록색 밑줄을 그어둔 곳이 집안 시가지이고 둥글게 그려놓은 곳은 교외인데 그 골짜기 안에 굉장한 숫자의 피라미드 모양 무덤들이 존재한다. 바로 아래 사진을 보면 된다.

 

 

 

여기에 이런 무덤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짐작해보면 누가봐도 고구려인들의 무덤임이 틀림없다고 여길 것이다. 중국인들이 여기에서 자기들 한족의 어떤 역사를 만들어나갔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피라밋과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교롭게도 형태는 제법 닮았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예전의 기억이나 추억을 되살린 것일까?  

 

 

 

바로 위의 사진도 역시 집안시 교외의 골짜기를 확대한 사진이다. 돌로 이런 무덤들을 만들려면 제법 괜찮은 수준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어야 한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한나라나 진나라 시대의 왕릉 축조기술을 고구려인들이 배워갔다는 식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주장한다면 중국인들의 무덤건축 기술은 이집트에서 배워갔다고 이집트 사람들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위 지도에서 1번으로 표시된 곳이 집안시 교외의 무덤군들이 있는 곳이다. 2번은 광개토대왕릉의 위치이고 3번이 장수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 자리다. 지도 중간에 그어져 있는 노란선은 북한과 중국을 구별짓는 국경선, 그러니까 압록강의 흐름을 의미한다.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 바로 건너편에 대규모 유적지가 존재하는 것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광개토대왕(=호태왕)의 흔적을 확대해 본 모습이다. 거대하다. 어쩌다가 우리 조상들의 유적지조차 잃어버린 등신같은 후손들이 되었는지......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저의를 우리가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하여튼 오늘날 우리가 처한 꼴이 참 불쌍하게 되었다. 중국인 입장에서는 자기들 땅에 존재하는 유적지이니만큼 발굴해서 나온 유물을 근거로 마음대로 역사를 왜곡할 수 있는 빌미를 우리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만이라도 중국에 유리한 자료가 나오기만 하면 역사를 왜곡하기란 식은 죽 먹기 아닌가? 앞서 이야기한 함양시 인근의 피라미드 유물발굴 작업중에 중국역사의 흔적이라고 볼 수 없는 유물이 출토되어 발굴을 중단하고 덮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떠돌아다닌다는 사실을 한번쯤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집안시 교외에 자리잡은 장수왕릉터이다. 역시 하늘에서 보면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 경제는 비참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설익은 애국심을 가진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만주로 여행가서는 관광버스 옆면에다가 '만주는 우리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이고 다녔던 사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설픈 애국심의 발로였다.

 

그런 경솔한 행동들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고구려 역사가 자기들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주장을 하도록 유도한 것은 아닐까? 진득하지 못한데서 오는 경솔함이 부메랑으로 변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중국의 국력이 쇠퇴해지는 그날은 언제쯤 다가올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지금이 국사를 학교에서 가르치느니 마느니, 수학능력 시험에 나오느니 나오지 않느니 하는 것으로 편을 갈라 한가하게 다툴 때인가? 자기 나라 역사도 모르는 사람들이 국민이라고? 나는 신비주의자도 아니며 지나칠 정도로 한쪽으로 기운 국수주의자도 아니지만 하는 꼴이 우습기만 하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