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첫발령지를 찾아가보았어

by 깜쌤 2011. 1. 22.

 

그날은 야생란을 찾아서 산을 헤매고 다녔다네. 난(蘭)을 채집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서식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네. 고귀한 품격을 자랑하는 야생 춘란(春蘭)이 우리 고장에서 멸종 상태로 접어든 것이 너무 마음 아팠기 때문이지.  

 

 

화곡으로 내려왔더니 고속철도가 골짜기 한복판을 질러가고 있더구먼. 자네들 삶의 터전 한가운데로 고속철도가 가로지를 줄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기차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쳐가버렸네. 마치 우리가 흘러보낸 세월처럼 말일세.

 

 

나는 도로를 따라 걸었네. 못보던 시설물들이 제법 많이 들어섰더구먼.

 

 

윗망성을 거쳐서 못안으로 넘어왔다네. 만약 시내버스를 탔으면 자네들의 배움터였던 장소를 그냥 지나칠뻔 했네. 버스가 안오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겠지?

 

 

망성리 고개를 넘었다네. 도로 포장이 깔끔하게 되어 있어서 좋았다네.

 

 

내가 자주 낚시를 하러다녔던 윗못은 얼음이 꽝꽝 얼어있더구먼. 낚시 미끼를 구해주기도 했던 몇몇 얼굴들이 정말이지 너무 그리워졌다네.

 

 

이젠 누가 저수지를 빌려서 유료 낚시터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던데.....

 

 

자네들이 공부했던 본관 건물은 이제 다 뜯겨나가서 사라지고 없어졌다네. 나는 마음이 아려왔다네.

 

 

천만다행으로 북쪽 교실이 조금 남아 있어서 조금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지만 마음이 싸아해서 차마 안으로 가볼 수가 없었네. 자네들이 뛰어놀았고 육년 긴세월을 아침저녁으로 드나들었으며 내가 처음 근무했던 학교가 사라져버렸으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모두들 잘 지내시는가? 정말 보고 싶다네. 이젠 자네들도 모두 사십대중반이 되었지 싶은데.....  우리가 벌써 이렇게 많은 세월을 살아왔던가 싶네.

 

 

어리버리하고 어설프기만 했던 내가 첫 발령지로 선생 생활을 했던 곳이니 자네들만큼 나에게도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네.

 

 

모두들 알다시피 나는 실력도 부족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선생이어서 잘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아직도 부끄럽게 여기며 산다네. 그런 모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서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한심한 모습이네그려.

 

 

모두들 어디에 터잡고 사는가? 어쩌다가 한둘씩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내 처지가 변변치 못한지라 잘 대접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기만 하네.

 

 

어쩌다가 자네들의 아들딸을 가르치는 일을 당할땐 겹겹이 쳐진 우리들 사이의 질긴 인연의 끈을 확인해보기도 했다네. 벌써 그런 경우를 서너번은 만났었다네.

 

 

학교 옆에는 참한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더구먼. 누구누구네 과수원이 있던 자리가 아니던가?

 

 

율동이나 두대, 도초, 선두마을, 당미기와 매바위 마을에 살았던 친구들은 줄기차게 이런 경치를 보며 다녔겠지?

 

 

율동마을에는 크고 반듯한 교회가 만들어졌네. 자네들도 알다시피 어쩌다가 어리버리하기만한 내가 어쩌다가 경주에서 제일 크다는 어떤 교회의 장로가 되어있다네. 술마시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했던 나였던지라 내가 이렇게 될줄은 정말 상상도 못하였다네.

 

 

홍성부화장은 요즘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겠네. 부화장 주위를 감싸고 돌던 그 시끄럽던 닭울음소리조차 이제는 그리워지기만 한다네.

 

 

내가 하숙을 했던 집도 보였네. 내 차림새와 몰골이 사나워서 들어가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네. 처신하는 모습이 이러니 어찌 인간구실을 바로 하겠는가 말일세.

 

 

나는 얼마전에 공들여 가르쳤던 어떤 제자에게 금전적으로 멋있게 속은 일이 있었다네. 하지만 다 용서하고 산다네. 그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처지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고 깊이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뜻대로 안될때도 있더구먼.

 

 

사람살이에 별일이 다 있다고는 하지만 그럴땐 너무 허탈해진다네.

 

 

율동 마을 입구에는 낯선 시설물이 들어섰더구먼. 그게 뭐하는 용도로 지은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도초마을에는 한 열흘전에 다녀왔다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누구누구네 집에 다녀왔었네. 모두들 다 잘있는지 궁금하다네.

 

 

나는 천천히 걸어서 경부고속도로 나들목부근을 지났네. 효현까지 걸어가려다가 매바위 정도에서 시내버스를 타려고 마음 먹었다네.

 

 

이제는 이름과 얼굴까지 가뭇가뭇해진 그대들이 너무 그리워진다네. 날려버린 내 젊음까지도 말일세.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리 바라네. 아프지들 말고 그저 건강하게 지내시게나. 이제 우리 나이에는 안아프고 사는게 최고일세. 아직까지 자네들은 나보다는 훨씬 젊으니 세월을 아껴쓰고 뜻하는 바를 다 이루시기 바라네. 

 

 

그럼 이만.....

 

 

 

깜쌤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