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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운문사 2

by 깜쌤 2011. 4. 16.

 

 목련 한그루가 담너머까지 환한 빛을 날리고 있었다. 여긴 아직도 목련이 한창인가 보다.

 

 

이제 종루밑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운문사 경내에 들어섰다. 서기 560년 부근에 창건되었다고 하니 역사가 꽤나 오래된 절이다.

 

 

스님 한분이 불사(佛事)를 위한 시주를 접수하고 있었다.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본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오래된 반송 한그루가 나그네를 맞아준다. 어떤 분은 반송이 아니라 쳐진 소나무라고 주장하기도 한단다. 아무리 봐도 명물같다. 사방으로 나즈막하게 가지를 뻗어나간 품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대강당이 보였다. 법회를 하거나 설법을 베풀때 사용했던 장소가 아닐까 싶다.

 

 

건물 이름이 만세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법고가 제법 컸다. 

 

 

대웅보전과 마주보고 있다.

 

 

우리는 저기 목련이 피어있는 곳 부근에서부터 들어온 것이다.

 

 

반송 가까이 가서 찍어보았다. 가지가 밑으로 쳐지는 아주 독특한 모양의 소나무다.

 

 

대웅보전의 위용이 대단했다.

 

 

휠체어를 탄 분이 앞마당을 지키고 계셨다.

 

 

무슨 사연이라도 품고있는 것일까?

 

 

강당 기둥사이로 많은 건물들이 보였다.

 

 

 

기도를 드리는 중일까?

 

 

가람의 배치가 제법 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륜이 보였다.

 

 

대웅보전과 만세루, 그리고 법륜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람의 배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물길 건너편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암자로 가는 길일까?

 

 

나는 다시 삼층석탑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쌍탑이다.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한기씩 배치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도 이 절에 머물렀었다고 한다. 경북 군위군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인각사에서 집필했다고 하며 삼국유사의 고장이라는 타이틀로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던데.....

 

 

하기사 일연이 한 절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책을 썼으리라는 추측을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불이문 안쪽은 승가대학인 모양이다. 한번 들어가면 물릴 수 없다는 뜻일까?

 

 

공부하는 여승들의 수가 약 260여명 정도 된다고 한다.

 

 

출가를 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일게다.

 

 

작압이라.....  까지 작(鵲)에다가 오리 압(鴨)일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작압전(鵲鴨殿)은 석조여래좌상(보물 317호)과 돌에 새긴 사천왕 석주 4개(보물 318호)를 모신 곳이라고 한다.

 

화랑오계를 지은 원광국사가 608년에 첫 번째 중창을 한 뒤인 930년에 보양국사가 두 번째 중창을 할 때 작압전이 유래한다. 창건 당시 작갑사(鵲岬寺)였던 운문사는 보양국사가 작갑사의 옛터를 찾아 절을 지을 때 까치떼의 도움으로 옛 절터를 확인하고 거기서 나온 벽돌로 탑을 세운 뒤 까치떼를 기념하기 위해 ‘까치 작(鵲)’에‘오리 압(鴨)’을 쓴 작압전을 지었다. 보물로 지정된 사천왕 석주는 당시 작압전의 돌로 된 1층 문설주에 사천왕을 새긴 것이 남아 있는 것이라 한다.

파란색으로 된 문장의 출처는 http://sinnanda.com/tt/board/ttboard.cgi?act=read&db=revolkoo004&idx=132
 이다. 참고로 하기 바란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승가대학쪽의 담장이 특별히 아름다웠다.

 

 

나는 다시 범종루쪽으로 돌아가보았다.

 

 

안마당에는 이동중인 여승들이 보였다.

 

 

무슨 번민이 그리도 많았을까? 털어내어야 할 번민이 가득했기에 출가를 결심했으리라.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나는 젊었던 날의 내모습을 떠올렸다.

 

  

감로수(甘露水)다. 나는 거듭 거듭 상선약수라는 말을 되뇌이며 절을 나섰다.

 

 

 

어리

버리